신선한 밤공기 속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그녀는 자신이 이 일―남편이 마일스 부인이 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핑계 삼아 즉시 자신을 따라나서지 않은 일―로 상처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처받았다는 것 때문에 점점 더 화가 난 그녀는 가이드에게 호텔로 돌아가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20분 후에 밖으로 나온 넬슨은 그녀가 가버렸다는 것을 알고 불안해졌고, 화가 났다. 화가 난 데에는 그녀를 혼자 내버려두었다는 죄책감을 숨기고자 하는 심리도 작용했다. 그들 자신도 믿기지 않았지만, 다시 만난 그들은 갑자기 언쟁을 벌였다. 한참 후, 모든 소리가 사라진 보사다 마을에 정적이 내려앉고 시장의 유목 상인들도 후드 달린 외투를 입은 채 웅크린 자세로 꼼짝 않고 자고 있을 때, 그녀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인생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뭔가가 손상되었고, 둘 사이에도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는 선례가 생겼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었고, 웬만한 것은 다 이겨낼 수 있었다. 그녀와 넬슨은 외로운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들은 이제 생생히 살아 있는 세계의 맛과 냄새를 원했다. 지금은 서로에게서 그것을 찾고 있었다.
---「이국의 여행자」중에서
어느 음울한 일요일 밤, 빌은 특유의 거칠지만 너그러운 정의감을 발휘하여 모든 일을 매듭지었다. 처음에는 그녀로 하여금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게 했으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크게 성공하여 자만에 빠져 있을 때도 언제나 그를 참고 봐줄 만한 사람으로 있게 해준 바로 그 정의감이었다. “여보, 이 일은 내 문제야.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건 내가 자제심을 잃었기 때문이야. 우리 집에선 자제심이 죄다 당신한테 몰려 있는 것 같아. 이제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어. 당신은 지난 3년 동안 바라던 것을 정말 열심히 해왔으니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어. 만약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당신은 평생 나를 원망하게 될 거야.” 그가 소리 없이 활짝 웃었다. “난 그걸 견딜 수 없을 거야. 아이한테도 좋지 않을 테고.” 결국 그녀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들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빌 없이 존재하는 그녀 자신의 작품 세계가 빌과 함께하는 세계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안도할 수 있는 공간이 후회와 안타까움이 넘치는 다른 공간에 비해 한결 더 넓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중에서
의사는 마을을 향해 차를 몰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의사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날씨 탓이야.’ 그는 생각했다. ‘이것은 지난 토요일에 대기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느낌이야.’ 최근 한 달 동안 의사는 영원히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한때 이 시골은 그에게 평화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피곤하고 무기력한 정체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끌어올려준 자극이 소진되었을 때 그는 쉬기 위해, 땅이 발하는 기운을 지켜보기 위해, 그리고 이웃들과 단순하고 즐거운 관계를 맺으며 살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왔다. 평화라니! 그는 가족 간의 다툼은 절대 해소되지 않을 것이고, 예전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쓰라리고 격한 감정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평온한 시골이 죽음을 애도하는 땅으로 변해버린 과정을 목격했다. 여기에 평화는 없다. 그래, 떠나자!
---「바람 속의 가족」중에서
첫 단편소설이 채택되었을 때조차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나와 더치 마운트는 전철 안 광고 문안을 만드는 광고 회사의 마주보는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작품이 채택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같은 잡지사의 동일한 우편물이 우리 두 사람에게 각각 도착했다. 친숙한 『스마트 세트』라는 잡지였다.
“나에게 온 수표는 30달러야. 네 것은 얼마야?”
“35달러.”
그러나 진짜 암담한 것은 채택된 단편이 2년 전 대학생 때 쓴 작품이고, 그 이후에 쓴 10여 편의 새 작품은 편집자의 개인적인 편지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스물두살의 나이에 이미 퇴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30달러는 앨라배마에 있는 애인에게 줄 자홍색 깃털 부채를 사는 데 썼다. 사랑에 빠지지 않았거나 ‘현명한’ 여성과의 중매를 기다리는 내 친구들은 참을성 있게 장기전에 대비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회오리바람과 사랑에 빠졌고, 그 바람을 잡아서 머리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열심히 커다란 그물을 짜야 했다. 내 머리는 짤랑거리며 떨어지는 5센트 동전과 10센트 동전이 가득한, 형편없는 음악이 끊임없이 흐르는 주크박스 같았다. 그런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나를 버렸을 때 나는 귀향하여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게 바뀌었다. 이 글은 그 성공의 첫 번째 거친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 온 달콤한 안개에 관한 글이다. 그 시절은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몇 주 후, 또는 몇 달 후에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리는 최고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성공」중에서
장편소설 『라스트 타이쿤』이 완성되지 못한 것은 피츠제럴드 팬에게는 너무나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가 인생의 마지막에 드디어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지점을 향해 나름 힘껏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알고 독자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그동안 그는 몸을 지나치게 혹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른 죽음―그러나 그것이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의 정해진 운명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나는 마흔네 살이 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구나. 딱 이 나이에 피츠제럴드는 죽었구나.’ 나는 그때 프린스턴 대학에 다니며(피츠제럴드의 모교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라는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통감했다. ‘이 작품을 마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틀림없이 분하겠다.’ 이 책을 위해 내가 고르고 옮긴 작품은 주로 그가 말 그대로 ‘자기 몸을 축내며’ 살았던 암울한 시대에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그리고 어떻게든 희미한 광명을 움켜쥐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줄곧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의 작가로서의 강인한 본능일 것이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능가하는 힘을 지닌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엮은이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