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라는 쪽지 한 장으로 시작된 대화. 처음에는 단어만으로 된 애매한 대화였다.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길래 내가 대답하고, 거기에 세토야마가 또 답장을 보냈다. 종이에 이어지도록 쓰인 글을 순서대로 바라보니 세토야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감정이 싹트는 걸 깨달았다.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그런 감정 말이다. 처음에는 마음이 복잡하기만 했는데 신기하다.
--- p.58
이럴 줄 알았으면 편지를 무시할 걸 그랬다. 처음 받은 러브레터라서 약간 들떴나 보다. 세토야마의 그 표정과 태도가 나를 향한 거라고 생각하니 속으로는 기뻤다. 실제로 지금, 오해했다는 사실과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고민되지만, 한편으로는 실망하고야 말았다.
--- p.90~91
“이런 거짓말, 오래가지 못할 거 잘 알면서….” 세토야마의 신발장을 탁, 닫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계속될 리가 없어. 언젠가는 들통나고 말 거야. 그렇지만 알면서도 이미 거짓말을 하고 만 이상, 뒤로 물러설 수는 없다. 기왕 거짓말하기로 마음먹은 바에야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p.98
하지만 설마 세토야마가 데스메탈을 좋아할 줄이야. 게다가 전에 내가 틀었던 곡은, 일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니아들이나 좋아할 법한 그룹의 연주다. 데스메탈을 좋아하는 데다 예의 그 곡을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너무나 기뻤다. 분명 세토야마도 같은 감정이겠지. 글을 보기만 해도 세토야마의 웃는 얼굴이 눈에 선하다. 세토야마도 틀림없이 기뻐하는 듯하다. 나와 같은 이유로, 똑같이.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일이 이렇게도 즐거운 일인 줄 몰랐다.
--- p.109
“나, 장소도 가리지 않고 생각한 걸 바로 말하거든. 그러고 나서 너, 나한테 웃었잖아. 그제야 정신이 들었달까. 그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니었는데, 나 참 형편없다 싶었어.”
그러고 나서 세토야마는 얼굴을 들더니 내가 멈춰 서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미안해.”
또 처음 보는 새로운 표정이다. 사람을 정면에서 똑바로 바라보는 진지한 눈동자. 지금까지 본 귀여움이나 두려움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 p.131
“또, 하면 돼. 지금은 무리여도 다시 시작하는 건, 가능하잖아. 그렇게 언젠가 계속할 수 있다면, 전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 p.147
“너는 뭐든지 좋은 거잖아.”
“응?”
“뭐든지 좋다고 했으니 뭐든지 괜찮은 거잖아. 그러니까 불평하지도 않고 그걸 마시는 거고. 그걸로 된 거 아냐?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까. 그것도 자기 의견이지.”
내 쪽을 가리키면서 “그렇지?” 물으며 웃었다. 세토야마, 지금 나를 위로해 준 건가? 아까 한 말을 듣고 ‘그래도 괜찮다.’라고.
--- p.180~181
이 노트에서 나눈 대화가 현실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가 없다. 데스메탈을 좋아한다며 열을 올리기도 하고 영화 이야기도 했다. 학교와 가족 이야기도. “너무 즐거워….” 알고 있다. 지금 나는 세토야마와 나누는 대화를 즐긴다는 걸. 헛된 일이라고 수도 없이 나 자신에게 이르는데도 질질 끌면서 계속하는 중이다. ‘학생회 일도 꽤 힘들어.’ 같은 거짓말을 쓰고는 ‘데스메탈은 이런 점이 좋아.’ 솔직한 말도 전한다.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말인지, 나도 헷갈린다.
--- p.188~189
단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기대 같은 거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좋아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 다정한 모습도,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까닭도, 집에 데려오는 것도 ‘나’라서가 아닐까 뿌듯해하게 된다.
--- p.258~259
사실은 교환 일기 같은 거 아무래도 상관없다. 계속해도 좋고 그만둬도 좋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세토야마에게 미움만은 받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와 똑같이 대해주면 좋겠다.
--- p.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