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우주를 가로질러 도착한 엽서와 같다. 엽서를 받은 사람은 쓴 사람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엽서를 쓴 그날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엽서에 담긴 메시지가 수신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빛은 항상 과거의 사건을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달을 볼 수 없고, 달에서 빛이 떠난 시점인 1.3초 전의 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상호 작용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로부터 1m 떨어진 곳에 서 있으면, 그 사람의 지금 모습은 볼 수 없다. 대신 빛이 떠난 30억 분의 1초 전의 그 사람 얼굴을 볼 수 있다. 빛이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지금’이라는 개념을 일관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항상 과거만 볼 수 있을 뿐 ‘현재’는 절대 볼 수 없다.
--- p.44~45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전혀 다른 개념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공간에 있어서 우리는 상당히 자유롭다. 예를 들어 한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멈추고 왔던 길로 돌아가는 등 방향을 바꿀 수도 있고, 이동 속도를 변경할 수도 있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걷고 달리기도 하고, 자동차나 비행기나 로켓으로 여행하기도 한다. 반면, 시간은 그와는 달라 보인다.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로, 변하지 않는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고 있다. 에딩턴이 말한 시간의 화살을 따라, 오직 한 방향으로,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자연스럽게 시간과 공간을 단절된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민코프스키는 시간과 공간이 연속적인 직물로 밀접하게 짜인 것처럼 우주 전체에 퍼져 있으며, 우주의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무대라고 생각했다. 그는 두 단어를 조합해 이를 ‘시공간’이라고 불렀다.
--- p.71
우리가 시공간이 구부러지고, 형성되고, 왜곡될 수 있음에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최근 발견된 이러한 눈부신 증거 덕분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온갖 시험을 거침없이 통과했다. 공간과 시간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쪽에 영향을 미치면 다른 쪽에도 영향을 준다. 공간이 구부러질 수 있다면 시간도 구부러질 수 있다.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리게 된다.
--- p.78~79
더 빠른 속력으로 여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이 뮤온보다 빠른 광속의 99.9999%로 10년 동안 거대한 타원을 그리며 은하계를 여행하여 한 바퀴를 돌아 지구로 돌아온다고 가정해보자. 지구로 돌아온 당신에겐 10년이 지났겠지만, 지구를 떠나 있는 동안 지구에서는 7,000년의 시간이 지나 있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21세기였지만, 돌아온 지구는 91세기가 되어 있다. 당신은 자신의 일생을 훨씬 초월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궁금해하는 시간여행은 이런 유형이고, 물리학에 이를 금하는 법칙은 없다. 단지 파달카보다 더 빠르게, 더 오래 여행하는 방법을 알아내기만 하면 된다.
--- p.91
이게 실제로도 가능할까? 우리은하의 중심에는 ‘궁수자리 A*(A-star라고 읽음)’라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있다. 〈인터스텔라〉의 가르강튀아보다 약 25배 덜 무겁지만, 지구보다는 거의 3조 배 더 무겁다. 아주 깊은 중력 우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랙홀의 가장자리에서 10km 떨어진 곳에서 6년 반을 보낸다면 지구에서는 7,000년이 흐르게 될 것이다. 지난 장에서 10년 동안 빛의 99.9999%의 속력으로 우주를 빙빙 돌면 미래로 여행할 수 있다고 했던 것과 같다. 문제는 블랙홀의 중력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려면 빛의 속도에 매우 가깝게 여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02
길게 뻗은 길을 따라 운전할 때를 생각해보자. 당신이 차를 몰고 접근한다고 해서 갑자기 그 순간에 도로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당신이 차를 몰고 지나가자마자 지나온 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공간과 달라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인슈타인도 시간과 공간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추론하다 보면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존재해야 한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다. 오직 ‘현재’만이 실재한다는 우리의 확고한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우주에는 이미 일어난 모든 것과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태어나고 어딘가에서 죽어가고 있다.
--- p.137
만약 휠러-드위트 방정식이 정확하다면(‘만약’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공간과 시간은 우리가 큰 규모에서만 경험할 수 있고, 더 깊은 수준에서는 실제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창발적 효과가 될 수 있다. 외부에서 우주를 볼 수 있는 신과 같은 관찰자는 정적이고 불변하며 시간을 초월한 우주를 보게 될 것이다. 외부의 관찰자가 보기에 시간이란 우주 안에 갇힌 우리들의 이해를 위한 단순한 환상이라고 할 것이다. 시간이란 그저 우리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건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p.144~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