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 자연을 완성한다. 하느님께서는 두 나라를 뗄수 없이 동시에 바라셨고 세우셨다.
--- p.44, 「1장 우주론적 환원」 중에서
그리스도가 천 번이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 해도
네 안에서가 아니라면,
너는 영원히 잃어버린 채로 남으리니……
골고타 십자가가 너를 악에서 구할 수 없으리라,
네 안에서 그 십자가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 p.68, 「2장 인간학적 환원」 중에서
사랑받는 것은, 깊이 사랑받든 겉으로만 사랑받든, 언제나 찬란하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찬란하게 의식된 것은 바라보는 주체 안으로 침투하지 못한다. 물론 깊이 체험된 에로스든 겉으로 체험된 에로스든, 에로스의 확실성 안에서는 예외다. 하나로 이어진 양극단은 계시의 영역 안에서 초월된다. 여기서는 낮추고 비우는 가운데 하강하는 하느님의 로고스가 스스로 사랑, 곧 아가페로, 그럼으로써 찬란한 영광으로 자신을 해석한다.
--- p.87~88, 「3장 사랑의 제3의 길」 중에서
‘왜 한 여자만을 사랑해야 하지? 수많은 여자들이 사랑받을 수 있는데?’라고 돈 후안이 묻는다. 그는 어쩌면 파우스트와 같이 근원적으로 타당한 의도를 갖고 한계성의 빗장들을 향해 돌진할지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여자 안에서 돈 후안에게 사랑 자체의 의미가 비켜난다면, 파우스트에게서는 수많은 순간에 애원했던 영원이 비켜 간다.
--- p.103~104, 「4장 사랑의 실패」 중에서
한 인간이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또 다른 만남, 근원적이고 원형적인 만남이 요구된다. 이 만남은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들 가운데 하나이며,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이 일방적 사랑의 움직임이 그 만남 안에서 그 자체로 이해되는, 다시 말해 그 사랑에 상응하는 수용과 응답이 이루어지는 만남이다. 이 응답이 하느님의 사랑에 상응하지 못한다면, 결코 사랑이 계시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 p.125~126, 「5장 감지될 수 있는 사랑」 중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만,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믿고 희망한다. 흔들리는 가운데도 믿음과 희망, 이 둘이 우리를 붙잡아 주니, 흔들림으로써 그리스도인은 날개가 자란다. 흔들리는 체험을 통해 아래의 심연 역시 함께 감지된다. 물론 그것은 매번 나 자신의 날아오름 안에서 감지될 뿐이다.
--- p.158, 「6장 계시로서의 사랑」 중에서
아무도 메마른 개념들로 이 신비를 해체하지 못하리라. 어떻게 하느님께서 더 이상 내 안에서 나의 죄를 보지 않으시고 그 죄를 짊어지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보시는지를, 어떻게 하느님께서 그 죄를 수난의 사랑 가운데 변모하게 하시고, 찾아내시고, 내가 당신 아드님이 아프게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남김없이 설명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사랑하시는 이로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그대로가 우리가 존재하는 그대로다.
--- p.173~174, 「7장 의화이자 믿음으로서의 사랑」 중에서
이것이 그리스도교적 정언 명령이다. 이 명령의 힘으로 절대적 사랑이 ‘의무’로서 모든 개인적 ‘경향’을 넘어서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냉혹함과 함께, 그리스도 자신의 엄중함과 함께, 그분의 불꽃과 함께, 자신에게로 드높이 솟는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세상 역사를 관통하며 온통 당신 사랑으로 불을 놓으신다.
--- p.202, 「8장 행동으로서의 사랑」 중에서
계속 더듬거리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시도다. 하느님께 자신을 넘겨 드리는 이 근본적인 봉헌을 한 걸음 한 걸음씩 실현하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죄의 강제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로마 6,12-14 참조). 이를 통해 인간은 죽음의 적나라함 한가운데서, 자신의 새 형상인 세례의 옷을 하느님께 받기를 고대한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는 다 그리스도를 입었다.”(갈라 3,27 참조)
--- p.217, 「9장 형상으로서의 사랑」 중에서
세상은 죽기보다는 살려고 하고 부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죽기를 바란다. 죽음 너머로, 죽음 안에서, 하느님의 형태 안에서 부활하기 위해 죽으려 한다.
--- p.237, 「10장 세상의 빛으로서의 사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