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대부분 이탈리아라는 한정된 지역을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만을 다루고 있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부터 근현대까지의 미술 이야기가 부족하나마 담길 수 있도록 노력했다. 로마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과 함께 르네상스와 바로크양식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하였고, 피렌체에서는 르네상스 회화, 조각과 함께 피렌체를 르네상스 도시로 만든 메디치 가문과 관련된 건축물을 함께 다루었다. 밀라노에서는 여러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들과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작품들과 1900년대 초반에 활동한 근현대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였고, 베네치아에서는 베네치아만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탄생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 「들어가며」 중에서
화려한 그리스 문명을 사랑하던 로마인들은 주거지를 장식하기 위해 그리스에서 무거운 조각 작품을 옮겨 오기도 했고 따라 만들기도 했다. 로마의 황제들 역시 그리스 석공이 만든 기둥이나 주두 장식을 수도인 로마까지 옮겨 건물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 박물관에는 로마 멸망 수백 년 후 발굴된 그리스 조각부터 이를 응용하고 재창조한 로마 조각, 그리고 고대 주거지를 화려하게 꾸미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까지 수천 년 전 장인의 손길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무런 가림막 없이 이 오래된 유적들을 눈앞에서 마음껏 보고 느낄 수 있어 놀랍다.
--- 「로마 국립박물관의 팔라초 마시모(Palazzo Massimo): 이탈리아 문화의 시작과 고대 로마의 예술」 중에서
밀라노에서 훈련받던 화가 카라바조가 로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595년에 그린 〈행운〉에서도 젊은 카라바조가 창작열을 불태우던 그때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다. “행운을 빕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는 작품 〈행운〉은 로마 방문의 행운을 가진 여행자에게 뒤따를지 모를 불운을 경계하도록 한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에게 성공운을 열어 주었다. 작품 완성 후 머지않아 동일한 제목으로 또 다른 주문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대 많은 작가들이 행운과 불운이 공존하는 이 그림을 각색하여 그리며 동참하고자 했다, 115×150센티미터의 캔버스는 관람객을 여전한 흥분과 긴장, 감정 이입으로 이끈다. 한 소녀와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어른 옷을 입고 긴 칼을 찬 다소 허세스러운 소년이 보인다. 소년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본 듯한 어린 집시 소녀의 달콤한 미소는 머지않아 불운으로 끝날 짧은 인연을 암시한다.
--- 「카피톨리니 박물관(Musei Capitolini): 로마 제국의 정체성을 확인하다」 중에서
가장 친숙하게 알려진 그림은 〈아담의 창조〉일 것이다. 해부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특징 때문인지 ‘신이 인간에게 지식을 주는 것’이라는 추측을 낳기도 한다. 조물주의 붉은빛 망토가 마치 인간 뇌의 단면을 형상하는 듯해서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에서 인간만이 가진 특징, 즉 ‘정신’과 ‘지혜’ 등을 표현하기 위해 다소 커진 머리와 부릅뜬 눈, 큰 손 등을 등장시킨 것과 연결되는 듯하다.
천사들이 받치고 있는 붉은 망토 안의 창조주는 아담을 향해 나아간다. 시스티나 성당 서쪽 벽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처럼 천사의 날개는 생략되었다.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절대적 미의 기준대로 만들어진 아담에게 아직 생명의 숨결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생명의 온기를 전달하는 두 손가락 사이의 작은 틈에 관객의 이목이 집중되며 앞으로 벌어질 인류의 역사를 숨죽여 기다리게 한다.
--- 「바티칸 미술관(Musei Vaticani): 모든 시대의 모든 미술을 볼 수 있는 전 세계의 유일한 곳」 중에서
이탈리아를 방문해 보면 각 도시의 대표 미술관들은 역사적으로 함께한 가문이나 단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백 년 지난 지금까지 계속 언급되는 이유가 당대에 가졌던 강한 군사력이나 자금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이 후원했던 예술가와 수집한 예술품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밀라노의 암브로시아나 교단, 베네치아의 몇몇 스쿠올라 그란데(Scuola Grande)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표적인 가문 중 하나가 바로 보르게세이다. 로마를 방문할 때 잊지 않고 가야 한다고 손꼽히는 이 미술관은 보르게세 가문이 수세기에 걸쳐 수집한 작품들의 전시장이다. 시에나 출신이면서도 점차 로마 귀족 사이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교황을 배출하면서부터이다. 카밀로 보르게세(Camillo Borghese) 추기경이 1605년 교황으로 선출되고 바오로 5세라는 교황명을 받았다. 교황의 가문 역시 자연스럽게 로마에서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 「보르게세 미술관(Galleria Borghese): 바로크 예술의 진면목」 중에서
가끔은 원본보다 오히려 복제품이 더 큰 유명세와 인기를 얻는 경우가 있다. 우피치 미술관의 코리도이오 디 포넨테(Corridoio di Ponente)에 있는 〈멧돼지〉 조각상이 대표적이다. 피렌체 시내에 가죽 제품 노점상들이 모여 있는 로지아 델메르카토 누오보(Loggia del Mercato Nuovo) 입구에는 〈작은 돼지의 분수〉라는 명소가 있다. 전 세계의 여행객들이 청동으로 복제된 멧돼지 조각상을 만지며 사진 찍는 데 여념이 없다.
〈작은 돼지의 분수〉의 실제 주인공인 〈멧돼지〉는 지금은 사라진 기원전 3 세기의 고대 그리스 청동 조각상을 바탕으로 기원전 1-2세기에 대리석으로 복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냥감이 되어 잔뜩 겁에 질린 멧돼지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사냥과 관련된 다른 조각과 함께 설치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피렌체 르네상스 회화의 모든 것」 중에서
갈레리아 데이 프리지오니에 놓인 미켈란젤로 작품을 하나하나 지나면 저 멀리 보이던 다비드가 점점 가까워진다. 성경에 소년으로 묘사된 그 모습이 점점 거대해지고 바라보던 고개가 점차 가파르게 꺾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웅성웅성하는 무리 속 하나의 점이 될 무렵 트리부나 델 다비드(Tribuna del David)의 중심에 선 〈다비드〉 앞에 도착하게 된다.
〈다비드〉는 생각보다 크다.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방문하기에 앞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베키오 궁전 앞에 있는 복제 작품을 이미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수평성을 가진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과 위압적인 수직성을 가진 베키오 궁전 앞에 선 〈다비드〉는 상대적인 왜소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비드〉는 좌대를 포함해 5미터가 넘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a dell’Accademia di Firenze): 미켈란젤로의 원본 〈다비드〉가 있는 곳」 중에서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 출신 교황 레오 10세의 주문으로 1520년 처음 이곳을 계획한다. 신 제의실은 현재 있는 조각 작품들 이외에도 벽면에 강, 땅, 하늘 등을 상징하는 인물상들이 채워져 더욱 다채롭게 단장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피렌체뿐만 아니라 유럽사에도 기록될 만큼 많은 사건들이 벌어진 혼란의 시기를 마주하며 공사는 수차례 멈춤과 지속을 반복했다. 미켈란젤로는 1534년 자신을 지원하던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7세마저 세상을 떠나자 신 제의실 작업뿐 아니라 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교황 율리오 2세의 묘지를 위한 노예상들(1525-1530) 등 피렌체에서 진행하던 작업들을 모두 놔둔 채 로마로 떠난다. 1534년 로마로 떠난 미켈란젤로의 빈자리는 1550 년대 말까지 조르조 바사리 등의 예술가들이 채우게 되며 지금의 모습으로 남겨졌다.
--- 「메디체오 라우렌치아노 단지(Complesso Mediceo Laurenziano): 예술로 남겨진 메디치 가문의 영광」 중에서
프란체스코 아예츠의 대표작 〈입맞춤(Il bacio)〉은 표면적으로는 조만간 헤어져야 하는 남녀 사이의 아쉬움 표현한 작품처럼 보인다. 무표정한 중세적인 공간에서 눈을 감고 짧디짧은 지금 순간에 충실한 남자와 떠나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려는 듯 가늘게 눈뜬 여성이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구조인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으로 상상의 자유를 준다. 또한 뒤편으로 보이는 누군가의 그림자는 둘 사이로 등장할 또 다른 존재를 예고하며 새로운 상상을 덧붙인다.
옷 색깔로 숨은 의도를 해석하기도 하는데, 남성은 깃털 달린 갈색 모자 아래로 초록 안감을 가진 적갈색 망토와 붉은 바지를 입고 있고, 여인은 하얀 레이스가 보이는 푸른 드레스 차림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1800년대 전후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탈리아 국기의 녹색, 백색, 적색 조합과 프랑스 국기에 사용되는 청색, 백색, 적색 조합이 연상된다.
--- 「브레라 회화관(Pinacoteca di Brera): 역사가 숨 쉬는 현장에서 만나는 1400-1900년대」 중에서
1482년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에 도착한 다 빈치는 여러 인물화를 그렸다. 그리고 영혼의 움직임이라는 뜻을 가진 ‘모티 델아니마(moti dell’anima)’를 표현하고자 했다. 외모에서 영혼의 성질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한 그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당시 예수를 배신한 유다를 표현하기 위해 범죄자의 외형적 특징을 연구하기도 했다.
〈음악가의 초상〉에서도 차분하고 섬세한 성품이 드러나는 듯하다. 주인공은 밀라노 두오모 성가대의 마에스트로(지휘자)였던 음악가 프란키노 가포리오(Franchino Gaforio)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추측일 뿐 정확히 누구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저 30대 정도의 남성이 손에 든 악보를 통해 그가 음악가라는 것을 추측할 뿐이다.
아무런 답을 찾을 수 없는 아쉬운 마음에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그림이 그려진 목판의 갈라짐이나 흠이 보인다. 캔버스가 보편적으로 활용되기 전까지 회화에 쓰인 목판이 시간을 견디며 얻은 상처들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유리관에 꽁꽁 싸여져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 「암브로시아나 회화관(Pinacoteca Ambrosiana):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흔적을 간직한 밀라노의 보물」 중에서
시대를 대변하는 정련된 사유로 창작된 작품들 사이에 〈예술가의 똥〉을 놓은 이는 피에로 만초니이다. 1950-1960년대 밀라노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현대 미술 작가로서 전시장에 통조림 깡통을 남겨 두었다. 자신의 똥을 밀봉해서 말이다.
한껏 치장한 작품들 사이에서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의미를 알게 된다면 아름다운 색과 형태로 향기를 내는 여느 작품과는 또 다른 현대 미술만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세계적 작가로 만들어 준 〈예술가의 똥〉을 계획하며 만초니가 주목했던 것은 과시를 위한 소비 대상으로 전락한 미술계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유명한 예술가의 것이면 무엇이든 구매하려 드는 시대에 그는 과연 무엇까지 팔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고 그 결론이 결국 ‘예술가의 똥’이었던 것이다.
--- 「노베첸토 미술관(Museo del Novecento): 예술로 보는 1900년대 이후 이탈리아의 모습」 중에서
베네치아는 매너리즘 양식이 발전한 도시 중 하나이다. 베네치아 대표 화가 틴토레토는 작품에 매너리즘적인 양식과 함께 베네치아적인 화려한 색채를 섞어 관객으로 하여금 화면 속에 벌어지는 사건을 더욱 몰입하며 바라보게 한다. 세상을 이미 떠난 마르코 성인의 영혼이 등장하는 전설이나 성인의 유해를 기적적으로 베네치아로 옮겨 온 극적인 이야기는 틴토레토의 긴박감 넘치는 매너리즘 화풍에 훌륭하게 어울리는 소재가 된다. 공간에서 보이는 과장된 투시도법이나 그림 속 인물들의 재빠른 걸음 주변에 작가가 남긴 움직임의 물결과 같은 하얀색 붓 터치는 숨 가쁜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Le Gallerie dell’Accademia di Venezia): 베네치아 화가들의 특별함과 거대한 캔버스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