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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노래 현대의 노래

: 현대향가 제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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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135*224*20mm
ISBN13 9791161152240
ISBN10 116115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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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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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에 아린 꽃눈을 내밀어 본 곳
그 역에 내린 지 이십여 년 삼삼오오 앉아서
지나온 철길과 역들의 모래바람을 토해 내던 곳
태풍에 떠밀려서 뒷걸음칠 때에
빠르게 떠나가는 기적소리에 하루를 베이던 곳
무연憮然히 주저앉았다가 다시 행성들을 따라 항해하려던,
아으, 그 역이 지구에서 영영 사라지다니
한 량輛의 나의 정신은 어느 역까지 가야 하나요?
---「정복선, 그 역驛이 사라지다」중에서

흔들의자를 산다
세상이 나를 흔들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흔들기 위해
골목 칼바람이 내 자만심을 꺾기 전에
내가 먼저 내 자만심을 꺾어 버리고
해안 파도가 내 오만을 상처 내기 전에
내가 먼저 내 오만의 미소를 할퀸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아, 내가 먼저 내 꿈을 흔들어야 한다
밤을 밀치고 떠오르는 태양이 내 꿈을 흔들기 전에
---「이창수, 흔들리는 하루」중에서

내 세상이 극심한 불면증일 땐
운주사 큰 와불 곁에 가 눕고 싶다
그대로 잠들어 나도 바위가 되고 싶다
오랜 시간 함께 풍화되고 침식되면
와불도 나도 얼굴이 다 뭉그러져서
꼭 닮은 채로 나란히 누워 있겠지
미륵은 56억 7천만 년 후 깨어날 것이니
그때 나도 기지개를 켜며 한마디 하겠지
여보, 한숨 푹 자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소.
---「이용하, 운주사 자명종」중에서

수북이 쌓여 얼어붙은 눈 위에

한 짐승이

앞을 향해 걸어가며 발자국을 찍어 놓았다

갑작스레 길이 막히고

어지럽게 사방으로 찍힌 발자국들

밥 끼니 때우려고

갈팡질팡 애달픈 흔적을

송곳으로 이름 새기듯이 남겨 놓았다.

쪽방, 그 사람이

떠나간 것처럼.
---「이영신, 산골짜기 고시원」중에서

클났다,
하늘을 날아온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정교회 앞뜰
장미정원을 향하여 날아온다
오른쪽 가슴에서 왼쪽 가슴으로 여미는
정교회 방식의 십자 성호를 긋던 성모님 손이
눈 깜짝할 사이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휘이익, 떨어지는 미사일을 두 손으로 잡아
촛불 봉헌함 옆에 얌전하게 내려놓았다
---「윤정구, 기적」중에서

위아래로 떠다니며
상승했다 하강하는 음형音形 
숲은 여기서 흔들리고
물보라를 튀기며 푸른 시냇물은 흐르네
그렇게, 불가능함을 애도하며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다가가다 
더 길어지고 짙어지는 그림자
갈라진 틈 사이로 거룩한 ‘은자’들이 보인다
오소서, 오소서, 환희의 불길이여
연주하라, 기뻐 외칩시다! 우리는 성공했습니다.
---「유소정, 불꽃을 향하여」중에서

대낮에 천문대를 찾아

태양의 타는 가슴속을 들여다본다

해의 둥근 가슴에 거무스름한 흉터

저 거대한 태양도 아플 때가 있었구나

그렇구나, 해도 달도 별들도 살아가면서 아프구나

이글이글 타는 불길 속에

뚝 뚝 흘러내린 눈물자국

해의 거대한 심장도 때로는 아프구나
---「김현지, 태양도 가끔은 아프다」중에서

벚꽃 터널 아래 서면 황홀합니다
예닐곱 때 장독 뒤에 숨었다가는
술래 잡던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스무 살 때 전우를 만나기도 하죠
벚꽃 화엄 아래 서면 극락입니다
서른 해 전 이웃을 만나기도 하고
마흔 해 전 동료를 만나기도 하고
쉰 해 전 벗들을 만나기도 하죠
아아, 눈꽃 가득 피운 나무 아래 서면
또 한 생이 찰나처럼 흘러갑니다.
---「고영섭, 벚꽃 한 생 - 찰나의 행복」중에서

신륵사 극락보전, 아미타 삼존불상의 후불탱화에서
아미타불이 설법 중인 시간,
앞줄에는 사천왕, 제석, 범천, 여러 보살들이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경청하고 있다
뒷줄의 나한들은 발꿈치 들고 밀치며 그림책을 들여다본다
맨 뒷줄의 팔부중들도 졸다가 눈을 번쩍 뜬다
바로 교과서 밑에 만화책을 숨겨 읽던 내 모습,
앞줄의 모범생들은 미동도 없이 경건하고
쯧쯧, 딴짓거리에 열중인 뒷줄의 눈썹 하얀 나한들,
바로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 세상이다.
---「주경림, 부처님 공부시간, 한 컷」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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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에 발족한 ‘향가시회’는 2018년 3월에 『노래 중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여서 “현대향가 제1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시집이 우편으로 배달되던 날, 나는 아득하게만 여겨지던 고대 신라국의 향가가 지금 이 땅의 ‘현대시인’들에 의하여 호명되고 재현된 것을 일종의 ‘사건’으로 마주하면서 그 현상을 진단하고 거리감을 조절하려 애를 썼다. 그 현상에 대한 이해는 이들의 활동이 진행되고 발전됨에 따라 여전히 얼마간의 틈을 남겨 놓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내적인 해결을 본 셈이고 거리감의 조절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향가시회는 이번으로 어느덧 “현대향가 제6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의욕과 간절함, 추진력과 진정성, 뜻과 원력이 느껴지는 향가시회의 그간의 활동은 이제 단순히 각 시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뒤에 덧붙이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 전체적인 의미를 진단하고 부여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향가시회’의 다소 도전적이면서도 신선한 그간의 활동상과 결실을 몇 가지 측면에서 심층적으로 의미화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몇 가지 측면이란 문화적 진화사의 관점으로 읽어 보는 것, 유기체로서의 문명사의 전개과정에 담긴 이치로 파악해 보는 것, 그리고 인간사의 내외적 욕망론으로 접근해 보는 것을 뜻한다.
- 정효구 (문학평론가, 충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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