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겐 사랑이 전부라는 말이 지긋지긋하던 조에게도, 가족을 돌보는 삶만 지속되는 엄마에게도 글쓰기는 여자에게도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순응하며 사라지길 거부한 투쟁이었다. 글을 쓰는 건 가부장제가 지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일이다. ---「써 내려간 말」중에서
나름대로 희망찬 소녀였던 나는 사회에 나와 완벽한 ‘쭈구리’가 됐다. 처음 정규직 제안을 받았을 때 “저 같은 애도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되물었고, 경력이 쌓여 승진할 시점이 왔을 때 “제가 무슨 차장이에요. 지금도 괜찮아요”라고 말했고, 팀장 자리를 권유받았을 때 “글쎄요, 그냥 서포트하는 역할이 저에게 잘 맞아요”라고 대답했다. 칭찬이라도 받으면 “어우, 남들도 다 하는 건데요, 뭐”라며 손사래를 쳤다. 끊임없이 내가 가진 능력을 의심하고 지레 나 자신을 끌어내렸다. ---「야망의 눈동자」중에서
사무실의 비극은 ‘175센티미터 남성’이라는 조건을 벗어난 자들에게 일어난다. 몇 년 전 밝혀진 사무실 에어컨 적정 온도의 비밀을 기억하는지. 네덜란드 어느 의대는 사무실 에어컨 온도 가 남성의 신진대사율에 맞게 설정되어 있어 여성 대부분이 춥 게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여자들의 의자에만 카디건 이 걸쳐 있던 오랜 미스터리가 풀린 셈이다. ---「기울어진 도시」중에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저서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에서 남자가 월경을 했다면 의사들은 심장 마비보다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했을 것이라며, 월경은 남자들만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권위의 표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질병으로부터 스토리텔링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그저 의학적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병을 병이라 부르지 못하는 병」중에서
자신의 몫인 1인분의 노동을 하지 않아서 파트너가 끊임없이 그 일을 해야 한다면 결국 다 같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설거지를 할 테니 당신은 아이를 씻기고 재우라고 부탁 같은 지시를 해야 하는 감정 노동은 설거지보다 삶을 지치게 한다. ---「N인분의 노동」중에서
우리 사회는 자랑은 스스로 해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간주해왔다. 그 탓인지 본인 입으로 자기 자랑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사람들이 멋져 보이지 않았다. 진짜 실력이 있다면 세상이 알 테고 진정한 실력자는 ‘발견되는 것’ 아닌가. 스스로 자랑한다면 그런 존재에게 느끼듯 같잖게 여겨질까 두려웠다. ---「나의 자랑 해방일지」중에서
언젠가는 끝이 날 관계라는 걸 알기에 다시 시작한 동거. 성인이 되어 부모로부터 독립해 잘 지내다가도 문득 해 질 무렵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 아빠와 걷던 산책길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건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아서다. 나의 모든 시절을 기억하는 세상의 유일한 사람들. 나이 든 부모와 산다는 건, 함께하는 기억을 조금 더 늘리는 일이다.
후배 조소현은 나와 커다란 공통점을 가진 동료다. 피처 에디터이자 아이(들)의 엄마, 여성이자 또 다른 여성의 딸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정의하는 정체성 같은 거였다. 모두가 그렇듯 우리는 매 순간 실로 다채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그 와중에 일과 관계 사이 곳곳에서 돋아나는 크고 작은 문제의식을 직면했다. 하지만 조소현은 그저 푸념 내지는 한탄으로 끝날 수 있는 숱한 불만과 불안, 그 실체를 충실하게, 부지런히 지면에 기록해왔다. 목격자의 시선이 아니라 경험자의 마음으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희망하며 쓴 글은 그녀의 생생한 육성이나 다름없다. 누구나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무구한 욕망을,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순진한 바람을 갖고 산다. 조소현은 그런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의 글을 통해 말한다. 그러므로 『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은 일상과 세상의 당연한 질서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나를 깨우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살갑게 내미는 안부인사다. 생각하고 발언하는 이들을 외롭지 않도록, 반짝반짝 살아 있게끔 독려하는 편지다. 이 책은 그렇게 같은 시대를 보내며 매일 다시 나아가는 우리 모두를 든든한 동료로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