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을 공부한 지 44년 차입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강단을 떠나게 되었고, 깊은 시련의 시간에 제 천직이 무엇인지 거의 잊을 뻔했습니다. 어느 날 지독히도 힘들었던 날, 영문으로 된 시집 한 권이 제게 왔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영미시의 대중화를 위해 애써보겠다고 한 다짐이 문득 되살아나서 며칠 묵혀둔 책을 꺼내보았습니다. 외국어로 된 시를 소개하려면 무엇보다 번역이 중요할 텐데 사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텍스트를 주욱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형언할 수 없는 평정심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영미시를 읽는 동안만큼은 잡생각이 끼어들지 않더군요. 다 소진되어 버린 줄 알았던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전 없이 단숨에 다섯 편의 시를 번역하고 해설도 붙여보았습니다. 그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몰입했습니다. 출판사를 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고 영미시를 시대별로 모은 앤솔로지(모음집)와 영영사전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이 영미시 작업은 2022년 봄의 끝자락에 시작되었습니다.
--- p.4, 「서문」중에서
내 그대를 한여름날에 비할까요?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1616)
내 그대를 한여름날에 비할까요?
그대는 더 사랑스럽고 더 온유합니다.
거친 바람이 불어와 5월의 어여쁜 꽃봉오리를 흔들어버리고,
여름은 한 번 데이트하기에도 너무 짧습니다.
때로는 천국의 눈, 태양이 너무 뜨겁게 비추지요,
그리고 종종 그 황금빛 안색이 흐려지기도 하고요.
아름다운 모든 것도 언젠가는 스러지지요,
우연히 또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추하게 변합니다.
하지만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스러지지 않게 만들겠습니다,
결코 그대의 아름다움을 잃지도 않게 할 것이며,
그대가 자기 그늘에서 방황한다고 죽음이 결코 떠들어대지도 못하게 하겠소.
나의 이 영원한 시행 안에서 그대가 시간이 갈수록 자라나게 할 테니까요. (중략)
--- p.17, 「1부 ‘카르페 디엠(이 순간을 살아라)’」중에서
사실 저도 제가 처음 고백했는데, 당시에는 그게 만용인지도 몰랐다는 것이 맹점입니다. 그냥 처음으로 전 존재를 뒤흔드는 경험을 했고 무작정 “이 사람이야”(That’s Him)라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다가가서 데이트를 신청했으니까요. 돌이켜보니 제가 생각해도 황당한 짓이었는데, 어쩌면 그런 만용은 젊어서나 가능한 것이고 인생에 딱 한 번으로 끝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하지만 대충은 안 돼요.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섣불리 셰익스피어를 베끼려는 만용은 안 됩니다. 그녀가 외계인 보듯 쳐다보며 콧방귀를 끼면 어쩌렵니까. 치밀하게 준비하세요. 성공 확률이 높을 타이밍을 잡아야 해요. 인생은 타이밍이죠, 맞지요? 자, 그럼 준비됐나요? 용감한 그대에게 굿 럭 투 유!
--- p.21, 「1부 ‘카르페 디엠(이 순간을 살아라)’」중에서
새 아침
존 던 (1572~1631)
(2연)
이제 깨어나는 우리의 영혼에 굿모닝,
서로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아요.
사랑은 한눈팔지 않게 절제하며
작은 방 하나를 온 우주로 만드는 법이니까요.
바다로 나간 탐험가들은 신세계를 찾아가라 하세요.
지도를 든 이들은 이 세상 저 세상 보고 오라 하세요.
우리는 하나의 세상만 받듭시다. 각자가 하나의 세상이며
우리 둘이 함께 하나인 세상.
--- p.32~33, 「1부 ‘카르페 디엠(이 순간을 살아라)」중에서
오늘날의 그 누구라도 감탄할, 사랑에 대한 참으로 원대한 포부입니다. 번역도 또 다른 하나의 창조라서 원문이 같다고 모든 번역이 동일하지는 않은 경우가 많아요. 저는 우선 전후 맥락을 살피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 단어를 선택해 갑니다. 마치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하듯이 말이에요. 이처럼 동등하며 독립적인 동시에 분리되지 않는 사랑은 시대를 넘어 영원한 사랑의 모델이지요. 이 시가 단순히 애인을 꼬드겨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통속적인 연애시를 초월하는 이유입니다. 400년도 더 지난 지금 우리는 이러한 연애를 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그때보다 더 많은 정보와 과학의 진보를 자랑해도, 사랑의 기술은 여전히 마스터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서로가 독립적이되 함께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한눈팔지 않는 사랑을 하시기를, 그리고 사랑에 대한 원대한 꿈을 이루시기를.
--- p.37~38, 「1부 ‘카르페 디엠(이 순간을 살아라)’」중에서
부귀영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네
에밀리 브론테 (1818~1848)
부귀영화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네.
사랑도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기지.
명예욕도 아침이면 사라지는
한때의 꿈일 뿐이었지.
내가 기도한다면, 입술을 움직여 할
유일한 기도는
“제 마음 지금 그대로 두시고
제게 자유를 주소서!”
그렇지, 화살같이 빠른 나의 날들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나의 간절한 소망은 오직 이것뿐,
살아서나 죽어서나 인내할 용기를 가진,
매이지 않은 영혼이 되는 것.
--- p.111, 「2부 '덧없는 세상을 위한 기도'」중에서
속세의 삶은 짧고 죽음이 화살처럼 다가오는 곳, 22세면 죽을 나이라고 생각하는 곳, 그곳에서 영생을 꿈꾼다면 당신은 무엇을 가장 소망하렵니까? 돈? 사랑? 명예? 다 부질없지요. 시인은 그 황량하고 쓸쓸한 곳에 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돈은 바랄 바가 못 되었고, 미혼으로 채 서른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명예욕도 아침과 함께 사라진다고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시인과 자매들은 모두 죽어서 결코 죽지 않을 이름을 남겼습니다. 세속적인 명성을 기대하지 않았던 시절, 삶이 온통 슬픔과 고난으로 차 있던 시절, 태어난 아기에게 세례를 베풀기 무섭게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목사관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시인이 가장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지금 이대로 이 모든 시련을 견디는 마음 안에서 자유를 구가하는 영혼, 바로 “살아서나 죽어서나 인내할 용기를 가진, 매이지 않은 영혼”이었을 겁니다.
--- p.114, 「2부 '덧없는 세상을 위한 기도'」중에서
지난번 라일락이 앞마당에 피었을 때
월트 휘트먼 (1819~1892)
1
지난번 라일락이 앞마당에 피었을 때
그리고 서쪽 밤하늘에 위대한 별이 때 이르게 졌을 때
나는 슬프게 애도했었지. 그리고 이제 매년 돌아오는 봄과 더불어 애도하리라.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여, 내게 반드시 세 가지를 가져오리니,
해마다 피어나는 라일락과, 서녘 하늘에 지는 별과
내 사랑하는 그에 대한 생각이라.
2
오 서녘으로 떨어진 강력한 별이여!
오 밤의 그늘, 오 비통한 슬픔에 젖은 밤이여!
오 위대한 별이 사라졌네, 오 그 별을 가리는 검은 우울이여!
오 나를 무력하게 붙잡는 잔인한 손이여,
오 어쩌지 못하는 내 영혼이여!
오 내 영혼을 에워싸고 풀어주지 않는 모진 구름이여!(중략)
--- p.184, 「2부 '덧없는 세상을 위한 기도' 중에서
이 시는 1865년 4월 14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피살 직후 바로 쓰인 추모시 연작 중 일부입니다. 라일락에 링컨을 투영하며 그 비참한 애도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인간 존재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대로, 시인은 갑작스럽게 맞게 된 사랑하는 이의 때 이른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해마다 피어나는 라일락을 보며 신이 그를 돌려보낸 것이라 생각하겠다 합니다. (중략) 링컨의 육신이 죽어 사라져도 라일락과 노래하는 새와 빛나는 별이 때가 되면 찾아오고 시인의 이 시행에 기록되는 한,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며 여기에 그리고 모든 곳에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 깊은 부채 의식을 가졌던 세대입니다. 이후의 지속적인 민주화로 인해 그 부채 의식이 희석되어 갈 무렵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부채 의식으로 팽목항 아이들의 기억이 채 치유되기 전에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한 예기치 못한 재난과 죽음은 도처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민주화에 의해 광주에 대한 애도가 이루어졌듯이, ‘공적인 승화’에 의해서만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의 애도가 완성될 것입니다.
--- p.188~189, 「2부 '덧없는 세상을 위한 기도'」중에서
희망은 한 마리 새
에밀리 디킨슨 (1830~1886)
‘희망’은 한 마리 새
영혼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며
결코 그치는 법이 없다네
사나운 돌풍 속에서 가장 감미롭게 들리는 노래
폭풍은 매우 혹독해야만 할 것이네
많은 이 따뜻하게 보듬는
이 작은 새를 당황시켜 주춤하게 하려면.
그 노래 나는 들었네, 혹한의 동토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 위에서도.
하지만 아무리 절박하여도 결코
내게 빵 부스러기 하나 요청한 적 없었다네.
--- p.237, 「3부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중에서
가운데 연의 요지는 고난이 힘들면 힘들수록 희망의 노래는 감미롭고, 감히 그 어떤 혹독한 폭풍일지라도 희망을 기죽이지 못한다는 역설입니다. 충분히 혹독하면 기죽일 수 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지요. 그래서 희망의 노래는 가장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마지막 연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중략) 저는 예전에 사람의 인성 중에 가장 고귀한 자질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뱃속에 생명이 잉태되었음을 알고 난 후 시작한 성찰이었기에 참으로 진지했지요. 결론은 절대로 굴하지 않으며 희망을 놓지 않는 긍정의 마음이었습니다. 요즘 친구들 말처럼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지요. 어느 누구라도 세상의 시련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임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경우라도 씩씩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긍정의 마음이면 두려울 것이 없으리라 더 믿게 되었지요.
--- p.240~241, 「3부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중에서
청춘
새무얼 울먼 (1840~1924)
(1, 2, 3연 생략)
예순이든 열여섯이든 우리 모두에게는 경이로움에 끌리는 마음, 아이처럼 다음은 뭘까 궁금해하는 끊임없는 호기심과 인생의 게임에 대한 환희가 있습니다. 그대의 마음과 내 마음 한가운데에서는 무선 통신국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과 무한의 우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활기, 용기, 그리고 힘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한 그대는 젊으리라.
안테나가 끌어내려지고 그대의 마음이 눈 같은 냉소주의와 얼음처럼 찬 비관주의로 뒤덮이면 그대는 늙게 되지요, 나이가 스물이어도 말이에요. 하지만 높게 솟은 안테나가 낙관주의의 전파를 계속 잡아주는 한, 그대는 여든에 죽는다 해도 청춘으로 죽으리란 희망이 있습니다.
--- p.272~273, 「3부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중에서
요즘 꽤 많은 이가, 심지어 20대의 젊은이조차 젊음의 대명사인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피부과를 찾습니다. 물론 각자의 선택이고 자유지요. 그러나 이러한 외적 젊음보다 더 중요한 젊음의 기준은 마음입니다. 마음에 꿈과 이상을 지니고 이를 위해 모험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청춘이지요. (중략)
특히 청년 실업률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88만 원 세대니 3포세대니 하는 말이 벌써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청춘의 마음을 가진 늙은이 타령 이전에, 몸은 청춘이면서 꿈과 이상을 포기한 젊은이가 걱정되는 시대입니다. 그들이 어깨를 펴고 긍정과 낙관주의로 무장하고 성큼성큼 나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구증가율이 0.8%에 머무는 나라(서울은 0.6%를 찍었다지요)에서 젊은이의 ‘청춘다움’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입니다. 기성세대가 그대들을 생각하며 좀 더 나은 세상을 준비하는 동안, 청춘이여, 부디 꿈과 이상을 간직하고 조금 더 견디기를!
--- p.275~276, 「3부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