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서사의 첫 줄에 불완전한 인간을 영웅으로 키워준 누군가가 있다. 그는 유력자이기도 하고, 부인이기도 하며, 기타 등등의 인물이기도 하다. 영웅은 그를 떠나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간다. 사실은 배신이고 뒤통수를 친 것이지만 멋지게 포장된다. 몇 번의 레벨업이 끝난 뒤, 영웅은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귀한 몸이 된다. 즉, 영웅은 과거를 넘어 미래로 향한 것이다.
--- p.27, 「사랑을 잃고 정치를 버린, 공민왕」중에서
누군가는 이를 보며 ‘지금의 정치도 조선시대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선거를 치른다는 것 말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치인을 심판한다. 임기동안 누군가가 펼친 주장이 옳다면 국민은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만약 이를 반대한 이들의 주장이 옳다고 느꼈다면 국민은 새로운 사람 혹은 정당에게 기회를 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선거, 그리고 이를 통한 권력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로 치면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무제한이고, 오로지 대통령에 의해 자신들의 임기가 보장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그저 살아있는 권력, 즉 왕에게만 잘 보이면 됐다. 자신을 심판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왕뿐이었으니 말이다.
--- p.73, 「숙종이 정치로 사랑하는 방법」중에서
우리가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생전의 전두환에게 묻지 못했던 그의 죄를 기억함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통된 가치를 만들기 위함이다. 서로의 이념과 국가관은 다르더라도, 우리가 공히 지켜나가야 할 단 하나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을 학살한 인물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되어야 한다.
--- p.155, 「권력을 위해 국민‘들’을 죽인, 전두환」중에서
해방 직후 반민특위를 통해 그들을 단죄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이런 법안들이 수 십 년이 지나서야 겨우 발의되고, 이들의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한 번의 잘못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어떤 친일파의 후손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고, 국가는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해방이 된지 80년이 되어가는 데도 말이다.
--- p.237, 「국가대표 친일파, 보신주의자 이완용」중에서
스스로를 조선을 구할 영웅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를 옭아매던 어린 시절의 가난은 없었다. 이제 이광수에게 독립운동은 영웅의 고난이어야 했다. 어려움을 극복한 천재가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을 구하는 아름다운 서사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광수는 그렇게 스스로 철저한 영웅주의에 빠져든다.
--- p.245, 「망상에 빠진 조선의 천재, 춘원 이광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