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을 만한 대상에겐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한다. 이 새로운(neuf) 다리(pont), 퐁뇌프는 펠릭스 발로통의 유화에 모티프가 되었을 때 이미 그런 대우를 받은 지 오래였다. 1577년 공사를 시작해 1607년에 완공된 이래 늘 그 자리를 지킨 유서 깊은 퐁뇌프는,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객관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근거들이 있어 중요한 가치가 있다. 퐁뇌프는 센강의 두 연안을 연결한 최초의 석재 구조물이자, 외곽 순환 도로의 두 고가 다리를 제외하고 파리에서 가장 긴 다리(238미터), 인도를 갖춘 최초의 다리다. 작품에서 발로통의 표현은 정제되어 있다.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그려진 루브르 박물관 동쪽 측면이 그림에 없다면 시점의 위치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도시의 주변 경관 역시 육중한 다리 하부가 가린 강물과 마찬가지로 또렷이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p.27, 「파리의 다리」중에서
생라자르역으로 이어진 폭이 넓은 선로 위를 지나는 유럽교는 봄날의 오전 분위기에 젖어 있다. 화가가 작품 오른쪽 부분에 그늘을 만들어 왼쪽 부분의 빛을 더 부각한 덕분에 처음 이 작품을 보면 감상자의 시선이 더블린 광장을 둘러싼 오스만풍 건물 정면까지 깊숙이 들어간다. 그림 오른쪽에는 흰색 작업복을 입은 한 노동자가 철도 수송 광경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리고 왼쪽에는 인도의 중심을 차지한 세련된 커플이 챙 달린 모자를 쓰고 뒷모습을 보인 다른 노동자 한 사람을 막 지나치고 있다. 이 두 계층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서로 눈길을 주지 않는다. 실크해트를 쓴 멋쟁이는―혹시 카유보트 본인이 아닐까?―작은 양산 안에 몸을 숨긴 도도한 동행인에게 모든 관심을 쏟고 있는 반면, 일터를 빠져나온 노동자들이 철재 교량에 모여든 모습이 대조적이다. 사회적 계급에 대해 알 리 없는 개 한 마리가 역사를 통해 처절하게 대립한 두 진영의 관계를 확인시키듯 그림 맨 앞쪽에 있다는 사실은 함의하는 바가 있다. 카유보트가 그림을 그릴 때 코뮌의 비극[1871년 노동자 중심의 혁명 정부인 파리 코뮌이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학살당한 사건]이 여전히 모두의 기억에 남아 있음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 p.34, 「파리의 다리」중에서
파리의 거대한 도로망에서 오페라 거리는 정비의 기교적 측면과 함께 극적인 배치라는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7세기에 바로크식 무대 설계를 선도한 이들은 연출 공간으로 열린 무대 전후면을 꿈꾸었는데, 오스만이 이것을 프랑스 제2제정 때 실현한 셈이다. 「겨울날 아침 맑은 날씨의 오페라 거리」에서 화가의 시선은 나무 그늘이 지고 분수의 노래를 만끽하는 코메디 프랑세즈 광장을 출발하여 화려한 오페라 가르니에까지 이어진다.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가 고안하고 만든 이곳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대로를 무한으로 이끈다.
--- p.68, 「이상의 대로, 전설의 광장」중에서
한밤중에 수많은 불빛으로 빛나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 카바레 물랭루즈는 파리 9구와 18구의 경계가 되는 블랑슈 광장 깊숙한 곳에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는 특히 에두아르 자위스키가 그린 그림에 어느 정도 표현되었듯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이에 못지않게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도 종종 있었다. 실제로 1871년 5월 23일 파리 코뮌 시절에 베르사유 군에게 무릎을 꿇은 수많은 여성이 여기서 재판 없이 처형당했고, 이러한 만행은 삶의 환희를 상징하는 장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 p.94, 「파리의 밤」중에서
장 베로는 파리의 소소한 면들을 잘 포착한 인물이다. 그래서 불로뉴 숲에서 당시로서는 최신 운동인 자전거 타기를 어설프게 해 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쉬렌 다리 근처에 위치한 ‘자전거 별장(Chalet du Cycle)’은 1900년대에 유행을 선도한 곳인데, 여기서 블루머[아랫단을 고무줄로 잡아매 활동하기 편한 여성용 바지]는 단호히 모던함을 지향하는 최신 유행으로 인정받았다. 그림에는 자전거를 타는 여성들이 남성 여가의 변함없는 상징인 카노티에[챙이 좁고 납작한 모자]를 머리에 쓴 모습도 보인다. 이 여성들은 어리둥절해하는 행인들 앞에 살집 있는 종아리를 드러낼 만큼 대담한데,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 건전한 반항의 조짐을 보이는 셈이다.
--- p.119, 「도시의 오아시스」중에서
르누아르가 눈부신 여름날을 그리기 위해 자리 잡은 곳은 도시의 심장부에 위치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파리의 퐁뇌프 다리」에서 화창한 아침 햇살 속의 행인들은 모자와 양산을 쓰고 있는데, 여기서는 모두가 푸른빛을 한껏 만끽하며 즐겁고 한가롭게 걷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인상주의가 이제 막 시작된 시점에 이미 선구적으로 과감한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윤곽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쾌청한 날씨를 뚜렷하게 표현한 실루엣들이 그러한 면을 잘 나타낸다. 이 상황에서 앞쪽에 카노티에를 쓰고 지팡이를 든 행인이 화가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가? 화가는 이렇게 행인들을 천천히 지나가게 해서 그들의 움직임을 최대한 고정한 후 그림에 사실성을 더하려고 했다.
--- p.141, 「과거의 파리, 이후의 파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