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포고 아일랜드 아트(Fogo Island Arts)에서 레지던시를 하던 중 나는 최근의 실험 다큐멘터리에서 바다가 자주 다뤄지는 경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런 작품이 바다를 묘사해온 영화의 광범위한 역사 안에서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포고섬은 이런 사색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인구가 3,000명이 채 되지 않는 이 험준한 섬은 뉴펀들랜드 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 둘러싸인 뉴펀들랜드는 캐나다 동쪽 끝에 위치한 또 다른 큰 섬으로,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 나는 해양 환경의 아름다움과 위험이 깊이 새겨진 곳, 바다 곁에서 살고 죽으며 바다의 끊임없는 변화에서 겸손을 배우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자랐다. 그러니 아마도 이 책은 … 그때 그곳에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 p.6~7, 「한국어판 서문」중에서
1930년에 출간된 『문명 속의 불만』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로맹 롤랑의 개념인 ‘대양의 느낌(oceanic feeling)’을 논하며, 이를 나와 외부 세계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유대감이라고 정의한다. 프로이트가 이해한 대양의 느낌은 자율성이나 지배를 주장하기보다는 무한성, 무경계성, 상호연결성의 감각 때문에 자아의 온전함이 상실되거나 적어도 위태로워지는 유사 신화적 상태였다.
--- p.11
이 책은 다섯 가지 주제?바다의 자연적 우발성, 해저 촬영의 매력, 연안 노동의 재현, 중간 항로(Middle Passage)와 불법 이민, 그리고 전 세계 해양 순환의 물질성? … 를 차례로 살펴보면서, 생태적, 인도주의적, 정치적 위기의 시대에 세계 전체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 바다가 영화에서 재현되어온 역사를 특이한 방식으로 표류할 것이다. 대양의 느낌에서 발견되는 자아의 박탈과 탈인간중심주의는 함축, 기억, 돌봄의 실천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 p.12
육지(terra firma)를 떠나 대양의 느낌이 주는 유동적인 흐름에 몸을 싣는다는 것은 관점의 급진적인 방향 전환을 취하는 것과 같다. “맞다. 우리는 이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 우리는 완전히 그 안에 있다.” 프로이트의 이 진술은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말이 시사하는 바를 좀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 법한 폭력과 참사의 순간들이 점점 더 빠르게 축적되고 있는데도 그렇다.
--- p.13
1957년 『신화론』에서 롤랑 바르트는 바다를 의미의 생산을 마비시키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텅 빈 공간이라고 묘사한다. 바다의 소금기 어린 광활함은 기호에 대한 기호학자의 갈증을 절대 해소해주지 못할 것이다. … 바다가 정말 아무런 메시지도 담고 있지 않을까? 서사 영화부터 다큐멘터리, 할리우드 영화부터 아티스트 필름까지, 1895년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영화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 p.14~15
바다는 공포, 파멸, 생존, 그리고 아름다움이 서린 기록들의 보관소다. 바닷속에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와 여전히 감지되는 트라우마가 해양 환경의 매혹적인 경이로움, 파도의 낭만과 함께 나란히 흐른다. … 바르트의 말을 반복하되 수정해보자. 자, 나는 바다 앞에, 영화사에서 수도 없이 다루어진 바다 앞에 있다. 바다는 무수히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다는 환상과 필연성, 착취와 개발, 전통과 근대, 삶과 죽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 p.19
물의 움직임은 너무나 예측 불가능해서 역사적으로도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할 때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학적 방정식에 따른 규칙적인 패턴으로는 바다의 복잡한 물리적 현상을 결코 실감나게 구현할 수 없다. 〈평행 I〉(2012)에서 하룬 파로키는 자연에서 가져온 모티프 몇 가지를 통해 컴퓨터 생성 이미지의 포토리얼리즘이 발전해온 30년의 궤적을 추적한다.
--- p.26
세계를 물이 넘실대는 곳으로 재창조하고자 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의 욕망은 그들 중 영화 제작에 정통했던 몇 사람의 작품에서도 투영되어 있다. 만 레이, 루이스 부뉴엘, 살바도르 달리, 제르멘 뒬락의 영화에는 불가사리, 성게, 조가비가 출연한다. 초현실주의 동물우화집에서 이 바다 생물들은 섹슈얼리티, 불가사의, 언캐니의 강력한 환상적 응축으로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 p.41
왜 정신적 삶의 격정적인 예측 불가능성을 시적으로 재현하려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바다의 도상학이 이다지도 매력적일까? 아마도 바다의 가변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인간의 주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을 중심으로 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주의자들의 지도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인 과학적 정밀성과 자본주의적 기술관료주의에 반기를 든 것처럼, 바다의 무질서함은 헤게모니적 가치관의 적정률(decorum)과 합리성에 도전한다. 바다는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린다.
--- 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