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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슬픈 파랑

시인동네 시인선-225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4건 | 판매지수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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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80g | 153*224*8mm
ISBN13 9791158966317
ISBN10 115896631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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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가령
기도합시다, 동안 유목하는 시간
보폭만큼 넓어진 당신의 침묵과
오수에 든 지구의 자전 같은
무중력의 쓸쓸함으로 가득 찬 그곳
빛을 사랑해 소멸해 버린 그림자 속으로
결이 다른 당신을 만났던 그 한 계절은 사라지고
다시 약속 없이 느려진 오후 5시와 7시 사이
결국 이륙 즉시 흔적을 지우는 발자국처럼
당신은 기억되지 않는 기억이 되고
그 위로,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봄꽃들
낡은 고독과 변변치 않은 무료함까지
손에 꽉 쥐고 있다가 어느 쯤엔가 놓쳐
찾을 생각조차 잃어버리고 만
그 짠한 설렘들
토닥, 토닥이다 시큰거리다
아, 아멘
---「임씨표류기」중에서

7층 병실 창에
4억 6천만 년을 지나온 바람이 머문 오후
왜 4억 6천만 년이냐고 묻는 당신에게
발음이 좋아서, 라고 짧게 답하려다
인도 비슈뉴의 어젯밤 꿈에 대해선지
우주 빅뱅이론에 대해선지 떠들며
애써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우리
창문으로 느릿하게 불어오는 햇살 아래
종일 베갯잇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집고
한걸음이라도 빨리 출발하고픈 당신과
그 한걸음이라도 늦추고 싶은 나 사이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서성이는 밥상
바람 속 잉태돼 이곳에 뿌리내린 것들 중
오롯이 내 것은 없었다며 엷은 미소의 당신에게
그래서 서둘러 바람이 되는 걸 꿈꾸냐고
묻는 대신 식은 국만 휘휘 젓는 나
4억 6천만 년 전부터 얹어진 염원을 끌어모아
버석거리는 당신의 얼굴에 정성껏 펴 바르고
굳이 잠근 문틈으로 비집고 나가는
당신, 이편에서 저편으로
이사 가는 날
---「굿바이, 나의 울트라맨」중에서

1.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줄 맞춰 인사를 했다 누구를 위한 안녕인가

2.
여지없이 죽음에 대해 말해 달란다 어제를 기억하는 일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의식이다 안정된 재생을 위해 잠시 침묵, 목소리의 높낮이와 한숨과 쉼표, 말줄임표를 적절하게 배합해 낸다
막 부쳐낸 동그랑땡을 입에 넣으며 저런, 에고,

입으로 들어가다 턱밑으로 흘러내리는 빨간 육개장 국물을 핥아먹고 싶었다

내내 배가 고팠다

3.
이름도 낯선 몇 번의 의식이 진행되었다 처음이라 모릅니다 이쪽으로 서세요 나오세요 인사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세요

안녕(安寧), 은 안녕을 위한 인사다
안녕은 염원이고 기원이자 재회의 약속이다
실현될 수 없는 외침은 무의미한 의식일 뿐이다
그러므로 난 안녕, 하고 싶지 않았다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룬다
---「안녕을 곱씹는 하루─2022년 6월 30일 일기」중에서

이번엔
파장이 긴 붉은색에 대해 말하고자 해
개기월식 끝나는 그, 순간까지
지구 대기를 통과하는 마지막의 마지막 빛이지
떠나오기 전에도 말했지만
검은 그림자 안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끈질긴 기억만큼이나
생을 흔드는 집요함은 없어

붉은 달이 뜨는 날
지상의 모든 기도는 붉게 타올라

흉조는 무슨
어떤 색으로 발광하든
보름달은 두 손을 모으게 해
지상에 머물며 내 오랜 습관이 됐지
나약한 의지가 들키겠지만
소망하는 건 그만큼 얻기 힘든 거니까
마치 첫사랑처럼
끝내 내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 것이길
마음이 차더라도 쉽게 기울지 않길
그 마음에 치이며 흔들리지 않길

가던 길이 갑자기 뚝, 끊기진 않겠지만
발밑 조심, 작은 돌멩이에도 넘어지던 당신
이제 혼자서 중심을 잡아
달은 또 뜰 테고
기도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어젠 블러드문이 떴다」중에서

멀리 떠나온 내가
더 멀리로 떠나간 네게 쓴다

오늘 나를 흔들던 생각들로 내내 절름발이
뒤척이던 어젯밤

이 지상에 묻힌 별의 쓸쓸함에 대해
왜 한사코 저물어들 가는지

오랫동안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는 것
되돌릴 수 없다는 것

한결같다는 건 마침내 묻게 한다
늘 피어 있어도 꽃인 건가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보내지 않고 다만 오래오래 쓰다듬는다
---「자기, 격리-현지에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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