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교육기관은 종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종교가 권력을 얻으면 교육기관의 권력도 강해지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실크로드가 종교의 길이면서 권력이동의 길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2,000여 년 전 한나라 무제의 명령으로 장건이 실크로드를 개척했을 당시에는 유목민 훈족과 정주민 한(漢)족의 힘겨루기가 관건이었고, 3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이래 실크로드에서는 중국과 로마제국의 교역에 편승한 기독교와 불교, 유교 사상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7세기 이슬람교의 탄생 이후 실크로드는 무슬림 유목민의 주 무대였다. 이슬람문명이 서쪽의 기독교문명과 만나 교류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문명이 뿌리내리게 되고 동쪽 중국의 유교문화와 접촉함으로써 중국에서 유교와 이슬람의 혼합 형태인 경당교육이 이루어졌으며, 더 동쪽으로는 이슬람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없지만 중국 유교 사상을 한편으로는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변용하여 조선 서원 교육의 기반이 되었다.
종교와 교육을 포석으로 삼아 실크로드를 따라 걷는 이유는 한편으로 실크로드가 5대양 6대주를 연결하고 두루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실크로드 국한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른 한편으로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 본연의 역할과 양극단을 오가면서 그 무게중심을 잡는 실크로드 정신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세계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 보기 위함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안에서 이스탄불까지 오아시스 도시들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육로의 양쪽 횡선이 최대한 연장되고,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황하 문명의 발상지에 실크로드 초원로가 제5대 문명의 발상지로 가세함으로써 종횡의 실크로드 교류가 가능해지고, 거기다가 환(環)지구 실크로드가 21세기 방식으로 재조명되면 그야말로 동서남북은 물론 사방팔방의 공간을 통하는 거대한 환(環)지구 실크로드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길 위에서 지금까지 대립적이고 적대적이었던 이원적 가치들이 상호 보완하면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고, 우열을 가리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세력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면서 공생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본 저서의 집필 목적이고 각 집필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다.
제1부 기독교 세계의 수도원에서 홍순희는 수도원의 역사와 수도원 교육, 수도원의 재정과 건축을 다룬다. 첫째, 수도원의 역사에서는 수도원의 탄생 배경과 동방과 서방의 수도원 운동, 수도원과 세속 사회의 상생 및 공생으로 수도원의 몸집이 비대해짐과 동시에 세속화 및 타락하는 양상, 그리고 클뤼니, 시토, 설교 수도회 등의 개혁을 다룬다. 이를 위해 수도원 탄생의 배경이 되는 유대교와 기독교, 로마 제국의 상관관계를 짚어보고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기 전과 공인된 후, 그리고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으로 유럽의 판도가 바뀌면서 기독교문명에 게르만문명이 섞이는 과정, 이후 중세 유럽이 전개되는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다. 수도원 운동은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국교가 됨으로써 비롯된다. 초기 수도원 운동이 동방에서 시작되었지만 4세기 이후에는 초기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수도원 운동이 서방에서도 점화된다. 그리고 6세기 후반 베네딕도 수도회가 창립되면서 서방 수도원 운동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둘째, 수도원 교육에서는 수도원 생활이 수도원 교육의 기반이라고 전제하고 수도원의 ‘관조하는 삶’과 ‘행동하는 삶’, 수도원 생활의 2대 원칙인 ‘기도하고 일하라’, 그리고 금욕적인 삶을 생활화하는 수도사의 미니멀 라이프를 알아보고, 수도원의 교육적 기능과 「베네딕도 규칙서」 분석을 통한 수도원 교육의 이념과 실천 덕목, 사제교육과 사제 공식 업무 관련 교육, 신학교육, 렉시오 디비나 등을 포함하는 수도원 교육 내용을 살펴보며, 수도원 교육의 외연 확장에서는 중세 교육 일반과 중세 수도원 교육에 집중하면서 수도원 교육에서 도시민 내지는 대학 교육으로 중세 교육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전환되었는지 알아본다. 중세 수도원 교육은 베네딕도회 중심의 수도원 교육이 시작된 6세기 말부터 중세가 막을 내리는 15세기까지 수도원 담장 안팎에서 이루어진 교육과 특히 수도원이 구심이 되는 교육 시스템을 아우른다.
셋째, 수도원 재정과 건축에서는 재정과 건축이 수도원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보고 토지 경작과 가축 사육, 관습부조금 등으로 재정을 충당했던 초기 수도원이 유럽 중세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귀족들과 교회로부터 얼마나 적극적으로 재정 지원을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수도원이 어떻게 거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었는지 살펴본다. 수도원 건축에서는 베네딕도 수도회와 시토 수도회 소속 수도원의 건축 설계도면을 분석하고 설계도면에 반영된 수도회의 성격과 지향점 등을 비교한다. 건축 구조적으로 볼 때, 시토 수도회 소속 수도원의 설계 도면이 더 폐쇄적이고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엄격하고 철저했던 초기 수도원 운동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시토 수도회의 지향성과 이상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성 갈렌 수도원과 시토 수도회 소속 마울브론 수도원, 그리고 설교 수도회를 대표하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대성당을 탐방해 본다.
제2부 ‘이슬람 세계의 마드라사’에서 조미경은 1,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슬람 세계의 유서 깊은 전통 교육기관 마드라사에 천착했다. ‘마드라사의 역사’에서는 마드라사 형성의 문명사적 배경과 기원, 이슬람 학파, 그리고 마드라사의 전파 과정에 대해 알아본다. 마드라사 형성의 주요한 문명사적 배경을 중국 제지술의 전파와 아랍 왕조 시기 전문 학술기관 ‘지혜의 집’이 이룬 학술적 성취를중심으로 살펴본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직접 제자들은 가르친 곳인 ‘알 수파’를 발생의 기원으로 삼은 마드라사는 11세기경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인 호라산과 트란스옥시아나 지역 일대에 대거 건립되면서 주변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드라사의 전파는 이슬람 세력에 의한 정복 전쟁, 실크로드를 통한 문물 교역과 인적 교류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마드라사의 전파 과정을 아랍 왕조 통치 시기, 이란 왕조 통치 시기, 몽골 왕조 집권기, 오스만 튀르크 제국 집권기, 아시아 국가로의 전파 시기 등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본다.
‘마드라사의 교육’에서는 이슬람 교육의 목표를 알아본 후, 마드라사의 생활과 교과과정을 조명한다. 이슬람 교육의 목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따라유일신 알라를 경배하고 꾸란과 하디스를 배워 선한 삶을 지향하는 무슬림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슬람 초등교육기관인 쿠탑에서 종교 교육과 읽기와 쓰기 등의 기초 교육을 마친 학생 중 일부는 마드라사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간다. 마드라사 학생들의 일과는 무슬림이 올리는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간에 맞춰 이뤄진다. 10세기 무렵 모스크 부속 기관으로 등장한 마드라사는 11세기경 교육체계를 정비하면서 제도화된 교육기관의 성격을 띠게 되고, 15세기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기에 정규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아 발전의 정점에 도달한다. 마드라사 교과과정은 생성 초기에 주로 이슬람 법학과 신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 추후 그리스 철학과 페르시아 문학, 자연과학 등 외래학문의 영향을 받아 다양해지고 실생활에 유용한 교과가 추가되면서 보편 교육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갖췄다.
‘마드라사의 운영과 건축’에서는 마드라사의 운영주체인 와끄프 재단과 사회적 역할, 마드라사 건축의 특징에 대해 서술한다. 마드라사는 이슬람식 기부제도인 와끄프의 재정 지원으로 모스크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와끄프 제도로 인해 학생들은 무상교육을 받고, 교수진은 경제적인 안정을 이뤄 교육과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마드라사는 교육적 기능 외에도 정치와 사회 문제 전반에 걸쳐 무슬림 공동체 구성원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실크로드 상인들과 여행객, 수도승 등 타지인에게도 편의를 제공하고,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정보의 집산지가 되었다. 마드라사는 건축적인 측면에서도 이슬람이 추구하는 신앙적 세계관을 잘 드러내는 특징을 가지며, 시대와 지역별로 다양하게 발전한 몇몇 마드라사 건축물은 도시의 외관을 장식하는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다.
제3부 경당에서 권상우는 ‘중국 마드라사’라고도 불리는 경당과 경당교육을 다루었다. 이슬람이 중국에 처음에 들어온 시기는 당나라 고종(高宗) 영휘(永徽) 2년(651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슬림은 중국에 들어와서 번방(蕃邦)이라는 무슬림 공동체에서 이슬람의 생활 습관과 종교 의례를 지킬 수 있었지만 명(明) 조정은 무슬림에게 한어를 사용하게 하고, 동일한 민족과 통혼을 금하고, 해금무역을 추진하면서 아랍이나 서역에서 이슬람 지도자가 중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 중국이슬람 내부에서 종교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이슬람 고등 교육 기관인 경당교육을 창시하였다. 경당교육은 ‘중국 마드라사’라고 불릴 정도로 이슬람 고등 교육 기관이지만 중국 전통 사숙 교육에서도 연원을 두고서, 중국 전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섬서학파(陝西學派), 산동학파(山東學派), 운남학파(雲南學派)가 등장하였다.
경당 교육은 교과 과정. 교재. 학생(경생) 선발 방식 등이 제도화되었다. 특히 청말 운남학파(雲南學派) 마덕신(馬德新), 마련원(馬聯元) 등의 공헌이 지대하다. 그들은 경당교육을 소학(小學), 중학(中學), 대학(大學)으로 구분하면서 경당교육을 단계적이고 연속적인 교육 과정으로 재편하였다. 그런데 이 세 과정 중에서중학은 어린 시절에 경문을 배우지 못한 무슬림을 위해서 설립된 학교이다. 경당교육에서 소학과 대학은 전통이슬람에서의 카밥과 마드라사 교육 과정에 해당한다. 소학에서는 경전을 암송하거나 이슬람의 기본 교리를 학습하였다면, 대학에서는 이슬람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면서 종교지도자를 양성하였다. 경당교육의 교과 과정에는 아랍형태학, 어법학, 수사학, 논리학, 교법학, 리학, 신학 7문을 가르쳤다. 그 중에서 앞의 4문은 언어 과정 과목들이고, 뒤의 3문은 종교 과정 과목들이다. 앞의 4문은 비록 언어 과정이긴 하지만 언어 학습을 하는 목적이 꾸란을 이해하기 위한 과목이다. 이 두 영역을 합해서 ‘경주학(經注學)’이라고 칭하였다. 그리고 아랍어 교학과 짝을 맞추기 위해서 각 과정에 상응하는 페르시아 교재를 제작해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두 언어 중에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경당교육 과정 체계를 구성하였다.경당교육은 이슬람을 세대로 이어갈 수 있는 종교 인재를 양성하고 이슬람 전통 교육 사상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청 시대에 유명한 회족 무슬림은 경당 교육에서 이슬람의 가르침과 지식을 중시하는 우수한 전통을 계승하여 경당 교육과 한문 역저 활동의 대두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면, 명청 때 왕대여(王垈與), 장중(張中), 상지미(常志美), 마주(馬注), 유지(劉智), 마덕신(馬德新), 마연원(馬聯元) 등이 있었다. 그들은 ‘유학으로 경전을 해석하면서(以儒詮經)’ 이슬람교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할 수 있었다. 이들 중에는 왕대여, 마주, 유지, 마덕신 등은 경당교육을 통한 학습과 한문역저 활동을 통해 회족역사에서 유명한 ‘대 한문역저술가’되었다. 경당교육이 진행되면서 교육방식일 뿐만이 아니라 교육제도가 되면서, 이슬람문화가 중국에서 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중대한 작용을 하였다.
제4부 서원에서 김기주는 유교교육기관이면서 성리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조선의 교육기관 서원을 다루었다. 마드라사가 이슬람의 교육기관이라면, 서원은 성리학과 분리될 수 없는 교육기관이다. 그렇다고 서원이 교육적 기능만 수행했던 것도 아니다. 조선에서 서원은 사학을 대표하는 고등 교육기관이면서, 정파政派나 학파學派 활동의 지역 거점, 유림의 지역지배 기구 등 복합적 기능을 수행했다. 물론 그 기능과 작용에서 긍정과 부정의 두 요소가 뒤섞여 있는 까닭에 평가 역시 긍정과 부정의 두 영역을 넘나든다.
특히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등재되었고, 2019년에는 마침내 9개 서원이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후 서원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깊어지고, 서원에 관한 연구 역시 그 폭을 넓혀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서양 중세의 수도원이나 이슬람의 마드라사와 함께 문명사적 흐름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질뿐만 아니라, 서원이 성리학과 깊이 관련된 교육 기관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이제 서양 중세의 수도원이나 이슬람의 교육 기관인 마드라사와 함께 서원의 등장과 그 전개사를 문명사적 흐름 속에서 읽을 때가 되었다.
이 점에서 특히 이 글은 서원에 대한 이해가, 넓게는 전체 인류의 문명사적 흐름과 관련되고, 좁게는 성리학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첫째는 성리학의 성립과 함께 교육기관인 서원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둘째는 성리학적 이념이 서원 교육의 목적, 내용과 방식에 어떻게 구현되는지, 셋째는 성리학적 지향에 기반을 두고 어떻게 서원이 건립 운영되고, 건축물은 그 지향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마지막으로 이 같은 서원의 등장이 수도원이나 마드라사와 함께 문명사적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정리한다.
종교와 교육은 인류의 역사에서 언제나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종교는 인간 이성이 신의 권좌를 차지한 이래 종교의 세속화가 이루어지면서 세속적인 권력을 얻는 수단이 되었고 교육은 인간과 인간을 우열로 나누는 잣대가 되어 우월한 인간이 열등한 인간에 대한 권리 확보의 도구가 되었다.
따라서 권력화 된 종교가 ‘권력의 의지’를 강화하기 위해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교육받은 자를 통해 권력을 승계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확대, 유지했다. 다시 말하면 종교와 교육은 신권(神權)과 인권(人權)을 동력으로 삼아, 때로는 나란히, 때로는 착종되어, 때로는 두 개의 괴물이 되어 세계사의 수레바퀴를 굴렸다. 그 결과 때로는 종교와 교육이 보조를 맞추며 균형을 잡았고, 때로는 힘을 합쳐서 둘 다 비대해 졌으며, 또 어떤 때는 한 쪽으로 힘이 기울어져서 다른 한쪽을 집어삼키는 일도 생겼다. 또 다른 때는 둘 다 아귀다툼으로 변질되거나 타락하여 결국 소멸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과 절차 역시 자연의 순환 원리와 원칙을 그대로 따른다. 실크로드 상의 수많은 종교 중에 유럽 기독교의 수도원과 아랍·이슬람의 마드라사, 중국의 경당, 유교의 서원을 그 포석으로 삼아 실크로드의 얼굴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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