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은 정말 미안하게 됐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아사코는 다시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이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도, 제 마음이 영 불편해서요. 이번 일은 전 부 나한테 맡겨놓은 터라 그 사람은 가미오 씨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하나도 모르거든요.” “고생했다니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저것 정해진 타이밍에 이렇게 돼서 안타까울 뿐이죠.” 아사코는 그러게요, 하고 턱에 손을 댔다. “우리도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이제 그쪽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했죠.” “그쪽…… 이라 하시면?” “아들의 전처 말이에요. 둘이 이혼한 지 여덟 달이나 지난 마당에 찾아와서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더군요.” --- p.18
“그건 앞으로 조사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죠. 저희가 연락을 드릴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나저나 교섭을 하려면 모치즈키 사치 씨에게 직접 연락하면 됩니까?” “아뇨, 언니가 대리인을 맡고 있어요. 사치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도 그분이에요.” 도미나가 아사코는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이분이에요, 라고 하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좀 보겠습니다, 하고 다케시는 명함을 봤다. 마요도 옆에서 들여다봤다. 모치즈키 도코라는 이름으로, 세무사 사무소를 경영한다고 했다. “이 명함을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네. 저기…… 무슨 해결책이 좀 있을 것 같나요?” “걱정 마십시오.” 다케시는 코를 벌름거리며 도미나가 아사코를 바라봤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돌파구가 있을 겁니다. 일단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 p.30~31
이시자키는 싱크대 앞에 서서 전기포트로 물을 끓였다. 찻주전자와 찻잔, 찻잎이 어디 있는지는 파악하고 있다. 이시자키 본인이 거기 두었기 때문이다. 스에나가 히사코가 직접 차를 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찻잔을 가져가자 스에나가 히사코는 바로 옆에 있는 불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작은 사진 액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반년 전에 고인이 된 남편의 사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두 달쯤 전에 세상을 뜬 딸의 사진이었다. 스에나가 히사코는 딸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드세요, 하고 이시자키는 스에나가 히사코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스에나가 히사코는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 p.109
이시자키는 몸을 틀어 여자 쪽을 바라봤다. “저기, 잠시 말씀 좀 묻겠습니다.” 설마 말을 걸 줄은 몰랐는지 여자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어서 경계하는 낯을 지었다. “무슨 일이시죠?” “이곳에는 자주 오십니까?” 그녀는 일단 마스터 쪽으로 시선을 옮긴 뒤 다시 이시자키를 바라봤다. “종종 오는데요.” 이시자키는 가져온 사진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이 여성분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여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뻗어 사진을 들여다봤다. 못 봤는데요. 이시자키는 냉담한 대답이 돌아올 것을 각오했다. 하지만 그녀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앗, 하는 소리를 흘리더니 눈을 깜빡거렸다. 아십니까? 이시자키는 재차 물었다. “있는데요.” “있다고요? 이 여성분과 만난 적이 있으시다는 거죠?” 이시자키는 힘주어 말했다. --- p.135~136
“장소는 미나미 아오야마야. 큰 건일 것 같아.” 상사는 반드시 일을 따내라는 듯 눈치를 주며 위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요즈음 큰 수주가 없어서 부서 전체의 목표 달성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회사를 나오기 전에 의뢰인의 집 구조를 조사한 뒤에 상사의 감이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00제곱미터 이상 되는 물건이었다. 연식은 30년이라 낡았지만 일류 시공사가 대규모 보수 공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진 구조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자산 가치는 충분했다. 구리쓰카는 그 집 소유자로, 2LDK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 p.199
“성공하셨군요, 진짜입니다. 미나 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구리쓰카 씨가 스마트폰으로 스케줄을 확인하더군요. 내일 건강검진을 받는 것 같던데, 장소는 회원제 고급 의료 시설입니다. 분명 연회비만 수십만 엔은 하는 곳이죠. 밤에는 항공회사 임원과 미팅이 잡힌 것 같고요.” “항공회사……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도 했어요.” “꽤 바쁜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미나 씨와 데이트한 걸 보면 기대해도 되겠어요. 이렇게 조건이 두루 좋은 상대는 웬만해서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잡으세요.” “네, 꼭.” 미나는 다케시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