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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왕 5

: 나, 이름 없는 관찰자가 사실과 상상이 뒤섞인 기억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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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500g | 135*215*18mm
ISBN13 9791171711727
ISBN10 117171172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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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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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특징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본능이다. 먹이나 번식을 위해 다투는 것은 여느 동물에게도 흔한 일이나 대규모로 조직을 결성해서 반대편의 목숨을 취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인간은 인간이 너무 미워 죽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어두운 밤에 불을 피워 놓고 추위와 짐승을 쫓으며 앉아 있노라면 불꽃을 응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충동이 피부를 간지럽혀 기침하듯 토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본문 33쪽)
--- P.33

“그럼, 대체 무엇이 가장 무섭단 말입니까? 화가 나서 물으니까 지혜로운 사람이 대답했다는군. 그건 그때그때 다르다가 정답이네.” ”허무한 결론이네요.” “아직 끝이 아니야. 고작 그게 정답이냐고 따졌더니 지혜로운 사람은 갑자기 검은 용으로 모습을 바꾸었지.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에게 용이 충고했어. 두려움이 지혜의 원천이니 상황에 따라 그 대상을 바꾸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미련한 인간아.”
--- P.36

우리도 작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째서 선조들은 사사로이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자들을 전부 처벌하고 쫓아낸 다음 벽에 뱀 대가리를 그리고 나트릭과 싸운 영웅의 이야기를 쓰는 인간들만 남긴 걸까?
--- P.82

그때부터 하인들 여럿이 침대에서 뒹굴던 왕을 왕답게 보이게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왕이라고 해도, 나트릭의 자손이라 뱀 비늘 모양이 몸에 새겨져 있다고 해도 사람은 벌거벗은 채로는 위엄이 없었다. 왕처럼 꾸며 놓아야 비로소 왕답게 보였다.
--- P.83

여왕과 신하들 모두 전쟁이 일어나면 중립을 지키며 관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었다. 전에 황제였던 사람과 지금 황제인 사람은 그들이 혈연이라는 것도 잊고 가진 것을 모두 동원해서 상대를 부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려면 그들보다 강해야 했다. 젤레즈니에는 그런 국력이 없었다.
--- P.93

데네브는 동생의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리며 손짓으로 세르피나도 앉으라고 해 두었다. 그녀는 동생이 머뭇거리고 생각이 많은 것을 결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째서 뻔뻔스럽게 굴면서 잘난 척하는 것만이 고귀한 인간의 징표가 되었을까. 칼디는 겸손한 사람이라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고 그것만으로도 누나의 마음에 들기에는 충분했다.
--- P.94

옆에서 듣고 있던 투란이 끼어들었다. 아리셀리스는 예의 없는 짓이라고 생각해 표정이 변했으나 에이어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에퍼 출신이었으므로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이 따로 있다는 태도를 보일 배경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왕족으로 대접받았던 아리셀리스와 다른 점이었다.
--- P.110

세간에 떠도는 말에 따르면 대장장이 왕의 힘과 마법사 왕의 힘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부딪히면 강렬한 반응을 일으킨 끝에 폭발한다. 그러나 우리 평범한 인간이 보기에 그들이 휘두르고 다니는 괴이한 힘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은 종류로 분류해야 할 것이니 바로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힘이다. 그들을 세상에 풀어 놓은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 아니요, 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언젠가 세상의 멸망이 일어난다면 두 힘이 충돌하는 데서 올지도 모를 일이다.
--- P.124

나는 그녀를 어렸을 적부터 보았다. 밝고 활기찬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간의 밝음을 어둡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위에 전통을 덧씌우는 것이다. 전통은 오랜 옛날 살았던 사람부터 지금 숨 쉬는 사람까지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강제적인 힘이다. 개인은 그 안에서 헤엄쳐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통은 활기찬 아이의 웃음을 비틀어 사제왕의 엄숙함으로 바꾸는 일을 어렵지 않게 해낸다.
--- P.127

내가 그런 삶을 선택하는 바람에 대장장이 왕의 이름이 자꾸 퍼져 나갔다. 그래서 결국은 사람들이 신을 그냥 신이 아니라 대장장이 왕의 신, 줄여서 대장장이 신으로 부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반성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내 이름을 떨치려고 했다. 신의 목소리, 혹은 그 뜻이 내게 다시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겉으로만 밝게 보이는 암흑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어두운 줄도 모르고 자신이 모든 것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오해했다. 모르는 대장장이를 만나 내가 그의 왕이라고 말하기를 즐겼다.
--- P.132

아무튼 완성된 도끼는 왕이 쓰기에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고 대장장이는 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의 능력을 빼앗지 않고 인정해 주었는데 내가 신의 능력을 받지 않았더라면 평생 노력해도 그의 경지에 이르렀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간혹 실력도 없으면서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이 있었다. 나는 굳이 대결을 받아 주지도 않고 그냥 능력을 빼앗아 버렸다. 비록 대단하지는 않다고 해도 그들이 평생 단련한 결과물을 빼앗으면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교만한 사람이 되었고 신이 나를 선택한 이유였을지도 모르는 예전의 작은 덕목들은 더 이상 내 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피와 살과 가죽을 가진 인형이나 다름없었다. 단지 그 속에 신의 힘을 품고 있는 인형이었다.
--- P.135

“그렇다면 뭘 만들어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까?” “사실 아직도 고민하는 중이야.” 나는 신에게 대장장이가 되겠다고 말했지만 막상 대장장이 중의 대장장이가 되고 나니 그 역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데 어째서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 마음에 그런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다. “신의 힘으로만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면 만족하시겠습니까?” 가르젠은 농담처럼 그렇게 물었지만 나는 그때 가르젠을 보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생각하고 말하고 보고 듣는다. 얼마나 정교한 기계인가? 그때 나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이나 다름없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생명체를, 그중에서도 궁극의 생명체인 인간을 내 손으로 만들게 된다면, 그들이 내가 죽고 난 다음에도 나를 찬양하고 섬기며 살아간다면 대장장이 왕으로서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다른 자들이 내 뒤를 잇는다고 해도 내가 영원히 대장장이 왕 중 왕이 되는 것이 아닌가.
--- P.139

“신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으면서 왜 명령을 내리지 않고 침묵하시나요?” 어린 제자가 물었다. “이제 제법 그럴듯한 질문을 하는구나. 내 생각을 말하자면 신은 우리가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 시험하시는 거란다.” “시험요?” “그래, 대장장이 왕은 시험을 받는 자리야. 받은 힘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면 그 순간부터 실수가 나오는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저지른 실수가 뭔가 하면.” 오카브의 입에서 쓴맛이 다.
--- P.142

”이 차는 땅의 선물입니다. 이걸 마셔야 산지의 혹독한 환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딜 수 있는 법입니다. 제국에 갇혀 식견이 좁은 학자였던 시절에는 몰랐으나 자연은 놀라운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더군요. 문제를 내민 곳 근처에 해답도 같이 주는 것이 자연입니다.”
--- P.172

“그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련하게 자연에 대항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지금은 대항하지 않아도 미련한 일일 겁니다. 옛날 대장장이 왕 중 한 분이 말씀하셨죠. 사람이 세상을 이길 수는 없지만 때로는 세상에 대항하는 것에 사람의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 P.200

“그건 안 됩니다. 자유 동맹의 수도는 허가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 자유 동맹이잖아요? 그런 건 자유가 뜻하는 게 아니에요.” “자유라는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를 죽이고 싶다고 칼로 찔러서 죽이면 그건 자유입니까?”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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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웅장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독자가 사는 현실 세계와 텍스트의 세계 간의 머나먼 거리와 텍스트의 세계에 숨겨져 있는 광활한 텍스트의 지시 세계 때문이다. 이 거리와 스케일이 ‘상상’을 창조하며 그것이 바로 판타지의 매력이다.
- 오세란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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