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해 온 역사 동안 미술관과 개인 컬렉션은 공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선별적인 데다 개인적인 취향을 일반 대중에게 강요한다는 비판이었다. 이는 미술의 민주화를 위한, 포용성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노력은 이미 종점에 다다랐고 그 의의를 상실한 듯하다. 이미지 전시를 위한 새로운 기술, 즉 인터넷의 도래 때문이다.”
--- p.17, 「보리스 그로이스, 「포스트 인터넷 시대 미술관의 큐레이팅과 수집」」중에서
“아도르노는 이러한 상품의 물신성으로부터 예술작품의 절대적 상품으로서의 성격을 읽어 낸다. 예술작품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은 그것의 직접적인 소재나 형태가 아닌 그것에 깃든 미적 가치를 통해 예술작품이 된다. [...] 심지어 예술작품은 평범한 상품처럼 사용가치를 가정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게 예술작품은 사용가치로부터 해방된 순수한 미적 가치를 품은 대상으로 자신을 물신화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작품은 상품의 물신화 원리와 똑같은 원리를 좇는다. 예술작품이야말로 상품 중의 상품, 절대적 상품이라고 말하는 아도르노의 생각을 슈타이얼이 언급한 ‘면세 미술’과 대조하며 보면 어떨까.”
--- p.33, 「서동진, 「금융화된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의 성좌」」중에서
“이 글에서는 제도비판이 1960년대 개념미술의 분파로 처음 시작되어 1980-90년대 뉴욕에서 에이즈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두 번째 물결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제도비판의 변화상을 추적한다. 양극화된 국내 정치, 보편화된 첨단 기술, 전 세계적 금융화 등으로 규정되는 국제적 환경에서 오늘날의 제도비판을 정의하는 작업은 앞선 시대와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제도란 사회의 표현이자 완성으로, 해당 지역 내의 경제적·정치적·통치적 특수성과 함께 발전하기 때문이다. 제도비판의 첫 번째, 두 번째 물결은 명시적으로 서구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본고에서 제시하려는 동시대 제도비판의 정의는 일종의 사고 실험으로 전 세계로 확장하고자 한다.”
--- p.57, 「카렌 아키, 「전 지구적 비평 현장에서의 제도비판」」중에서
“비교할 것인가, 비교하지 말 것인가? 아시아 제도비판 이론가에게는 진퇴양난의 문제이다. 하지만 선행 연구가 부족한 만큼 예의 서구적 기준을 다시 고려해도 잃을 것은 없을 것이다. [...] 아시아의 예술기관 혹은 예술제도에 대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양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 최근까지 아시아 예술기관은 극히 소수였다. 최근 15년 동안 예술기관이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프로토콜은 줄어들었으며, 합의된 실천적·윤리적 규범도 줄어들었다. 또 하나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은 아시아에서 정부 기금을 받는 기관은 ‘자유로운’ 유럽이나 미주의 기관에 비해 강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따라서 비평이나 비판적 예술도상대적으로 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 p.73, 77, 「데이비드 테, 「제도비판: 아시아의 일부 전개를 중심으로」」중에서
“사대주의와 식민주의 정치 현실은 문화 인식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에 존재하는 사대주의와 식민지적 역사관은 오랜 연원을 지닌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좀 더 철저하게 직면할 필요가 있다. 어둡고 비극적인 역사였다고 해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직면’해야 우리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이 처한 식민지 역사는 전 세계에서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민이 공통으로 경험한 역사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 준다. 지구상의 수많은 이들이 식민지 치하의 국민이었는데, 이들이 처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파생된 생각들을 지금의 동시대 담론에서 어떻게 소환할 것인가? 또한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 p.95, 「김인혜, 「식민지 역사를 어떻게 소환할 것인가?」」중에서
“한국의 1990년대는 매우 역동적이었고 숨찬 산업 성장의 정점에 도달했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트라우마를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 서구 모더니즘은 시차가 난 채로 한국에 도달했다. 따라서 역사로서의 모더니즘은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모더니즘의 가장자리는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과 중첩되어 있고, 탈냉전 이후 가시화된 세계화의 시간과도 맞물려 있기에 한국에서의 예술 역사의 종말은 이중적인 분할 상태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의 모더니즘 이후의 논의는 20세기 이후 한국이 지나온 경로와 과정에 의해 펼쳐질 것이며, 필연적으로 시간들의 충돌, 탈구된 지층이라는 상태를 더욱 미시적으로 들여다보아야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미술의 모더니즘과 그 이후의 서사를 기술하기 위해서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키는 예술작품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
--- p.113, 123, 「정현, 「1990년대 한국미술과 동시대성」」중에서
“프로젝트 전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시 제작 실천에는 관객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예술가는 의미 있는 일에 함께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공유하며, 미술 전시를 통해 창출된 지식이 다른 맥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혁신적인 전시 기법이 활용된다. 프로젝트 전시는 전시 기획적·예술적·담론적 실천을 결합하여 예술가와 대중 관객, 사회 공동체, 기관 간의 관계를 형성한다. 사회 공동체 내에서 특정한 목적 또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다른 종류의 자료와 매체의 밀도 높은 집합체를 선보이며, 또한 비판적 공공 영역을 구축한다. 프로젝트 전시는 새천년 미술관의 기능을 뒤바꿔 놓을 잠재력이 있다.”
--- p.141, 「알렉산더 알베로, 「프로젝트 전시와 21세기 미술관」」중에서
““벗이 있어야 물질한다.” 물질은 바닷속에 들어가 해초나 해산물을 수확하는 일을 말한다. 즉 이 구절은 말 그대로 친구나 동료가 있어야 물질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서로의 도움 없이는 물속에서 홀로 일하기 어렵기에 나온 말이다. 여기서 ‘벗’은 동료나 이웃뿐만 아니라 바다, 생물, 신화 등을 아우르는 공동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이 ‘벗’이란 단어에 바다에서 물질하는 사람들, 바다 생물, 자연 환경, 그 둘레에 존재하는 신화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 p.171, 「이끼바위쿠르르, 「벗에 관하여」」중에서
“미술 컬렉션과 미술사, 전시사 세 가지 경우에서 모두 사용하는 ‘글로벌’은 모든 곳이란 의미뿐 아니라, 보다 덜 명시적이지만, 중요한 관객층을 장악하고 어떤 장소에 주의와 자원을 집중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중재적 취향을 함축한다. 그들의 취향을 휘두를 자격을 가진 이는 과연 누구인가? 관객층의 중요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전 세계적’ 지식을 보유하거나 ‘전 세계적’ 범위를 아우른다고 주장하기를 언제나 거부해 왔지만, 이러한 분야들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타인 앞에 나설 수 있게 한 인종 상황적·언어적·교육적 특권들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해 본적은 거의 없었다. 이제 나의 목적은 단순히 전 세계적인 것을 또다시 거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상상의 틀을 환기하는 것이다.”
--- p.191, 193, 「루시 스티즈, 「‘전 세계적’ 전시사의 다음은 무엇인가? ‘전 행성적인 것’과 ‘전 지구적인 것’ 사이의 미술」」중에서
“서울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오늘의 미술관교육은 현대미술에 대한 경험 확장이라는 기존의 가치를 심화하는 동시에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 중이다. 지금까지의 실천에 서 배제된 주체들은 없는지 점검하고, 환경, 디지털 등과 같은 사회적 의제와 변화에 반응하며, ‘연결과 확산의 플랫폼’을 넘어 보다 열린 지배 구조 안에서 실천적 행보를 지속해야 한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 미술관교육은 이제 사회적 주체들이 참여하고 만들어 내는 문화예술 생태계 변화에 동참하고 이를 지지하는 조력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 p.215, 「조장은, 「연결과 확장의 미술관교육을 위한 제언」」중에서
“백남준은 가변성의 개념을 음악과 라이브 TV에서 전시 공간과 미술관 컬렉션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불안정한 작품을 다루도록 함으로써 그는 미술관을 근본적으로 도발합니다. 가변성은 작품의 물성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백남준이 자신의 작업을 재고하고 개념적 수정을 가한 일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기존 작품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행위는 비디오테이프에 신구 푸티지를 함께 사용하는 그의 작업 방식과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예전에 그가 저에게 들려준 모토인 “오래된 것, 새로운 것”은 백남준의 예술적 실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231, 「디터 다니엘스, 「백남준의 가변적 미디어?비디오 설치에서 라이브 TV까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