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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

시인의일요일시집-026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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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180g | 140*200*15mm
ISBN13 9791192732176
ISBN10 119273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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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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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집으로 이사하고 너는 가장 먼저 묻는다

이 집에도 못을 마음대로 박을 수 없겠지?
너는 벽을 똑똑 두드리며 사나운 벽과 순한 벽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우리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못이 튈까, 망치로 못을 때릴 때마다 눈을 감으면서도 오래 때릴 수 있는 우리의 벽을 가진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벽에 못을 박을 수 없는 셋집에서는 우리의 액자를 높은 곳에 걸지 못하고 바닥에 기대어 놓아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액자 속에서도 어깨를 기대는 버릇이 있는 거라고,

왜 우리는 이미 박혀 있는 못에만 시계를 걸어야 하냐고,
이 집에 세 들어 살다 간 사람들은 왜 같은 높이에 걸린 시간만 살다 가야 하냐고,

우리가 새로 못을 박는다면 집을 떠날 때,
새로 박은 못을 모두 빼고 떠나야겠지?
못을 뺀 자리에 껌이라도 붙이고 떠나야겠지?

마음대로 상처 낼 수 없는 집은 우리의 집이 아니라고,
---「이사 2」중에서

거 봐라 네가 가진 자루가 작더라도 왼쪽 오른쪽 나누어 담으면 너를 다 담을 수 있잖니,

너를 붙잡을 곳 마땅치 않아 들고 걸어가기 어려울 때는 너를 자루에 담아 들고 걸어가면 한결 편할 거야

방으로 드는 식당에서 너를 구멍 난 자루에 담아 왔다는 걸 발견하는 순간 너는
그 구멍으로 줄줄 새는 너를 들키고 싶지 않아 발을 숨겨야 할 거야

자루를 아무리 당겨 올려도 자루는 내 무릎도 담지 못할 뿐인데요

네 발만 담아도 너를 자루에 담는 거란다
황금색 계급장을 찬 어깨 앞에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것만으로도 떨고 있는 너를 감출 수 있거든,

쓰레기봉투에 너를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 발을 넣고 밟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야

유리 거울처럼 깨진 너의 얼굴 조각들이 그 안에 담겨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러니,

너를
나누어 담아라
눈물도 왼쪽 눈 오른쪽 눈 나누어 담으면 넘치지 않잖니,
---「양말」중에서

밥풀을 얼른 주워 입에 넣는 건, 누구한테도 당신의 가난한 시간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밥풀을 얼른 주워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입에 넣는 건, 바닥에 떨어진 밥풀이 제가 대접 밖으로 밀려난 걸 눈치챌 새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밥풀은 제가 대접 밖으로 밀려나 식탁에 흘린 밥풀이라는 걸 알게 되면,
밥풀이 밥풀떼기가 되는 기분일 테니까요

당신은 밥풀의 기분을 아는 사람

대접 속에서 식은 밥이 콩나물과 얽히고설키며 간장의 맛으로 물들어 갈 때,
밖으로 밖으로 밀려난 밥풀

그 밥풀의 허연 기분을 아는 사람

얼마나 푸짐하게 밥을 담는지 흘린 밥풀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당신

밥을 달래듯 비비래도,
배곯은 사람이 누굴 달랠 시간이 어디 있겠니,
침이 고인 웃음을 웃는,

그런 당신을 얼른 주워 입에 넣고 싶은,
---「선화동 콩나물국밥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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