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쉼’이 ‘일’의 반대라고 생각한다. 쉬든가 생산적이든가 둘 중 하나다. ‘타임오프time-off’란 단어를 들으면 저절로 주말이나 직장 휴가가 생각난다. 소파에 파묻혀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해변에 앉아 칵테일을 홀짝이는 자신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은 휴가에 관한 책이 아니다. 적어도 핵심 주제는 아니다. 게으름을 부추기거나, 허송세월하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서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과로와 중압감 없이도 행복하고 풍성한 삶이 가능함을 이야기한다. 가장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상태에 이르는 길을 안내한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시대가 아닌가.
---「들어가는 글」중에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일할 때 온전히 몰입하려면 작업 모드의 전원을 꺼야 하며 양질의 쉼과 일 사이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엔 중간에서 배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일에 온전히 몰입하거나 집중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쉬는 동안에도 일로부터 온전한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한다. 완전히 켜진 것도 아니고 완전히 꺼진 것도 아닌 상태다.
이 상태의 문제점은 수고가 누적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생산성에서 50퍼센트 능률로 두 시간 일하는 것과 거의 100퍼센트 능률로 한 시간 일하는 것은 전혀 비할 바가 못 된다. 특히 창조성이 요구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점점 더 많은 업무가 창의력을 요구한다. 단순반복의 공장 작업 시대는 거의 수명을 다했다). 다행히도 타임오프에 관한 지식의 명맥을 지켜온 선택받은 소수가 있다. 그들은 벤처기업을 경영하면서도 걸출한 옛 위인들과 똑같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갈수록 많은 사람이
타임오프 실천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1장. 인생의 밀도를 높이는 유일한 길」중에서
카이로스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을 본다. 여러 시간 일하고도 내놓을 만한 양질의 성과물이 없는 날이 있었는가? 그런데 어떤 날엔 훨씬 적게 일하고도 뿌듯한 성과물을 낸 적이 있지 않은가? 카이로스는 이런 종류의 ‘몰입 상태’와 어울린다. 카이로스 시간은 우리가 샤워나 산책을 하다가 문득 돌파구를 찾았을 때, 머릿속 전구가 환하게 켜지는 순간에 임한다. 언제 카이로스가 출현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계 시간에 너무 엄격하다 보면 카이로스가 바로 눈앞에 있더라도 눈뜬장님처럼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다. 타임오프 동안에 우리는 카이로스 기회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워라밸 대가2. 적게 일하고도 양질의 결과물을 내다」중에서
창의적인 4단계, 즉 준비, 부화, 발현, 검증 모형은 시간의 검증을 통과했다. 1926년 처음 선보였을 때만큼 오늘날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짜 창의적인 일 중 우리가 흔히 ‘일’이라고 여기는 것은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똑같이 중요한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타임오프를 하며 문제에 의식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동안에 일어난다. 부화와 발현이 무의식 과정이라고 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 과정 역시 하나의 기술로 다뤄야 한다. … 창의성은 타임온(준비, 검증)과 타임오프(부화, 발현)의 부단한 협연이다. 관건은 두 상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으며 힘을 빼고 자연스레 타임온과 타임오프를 오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부화가 일어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시간을 잘 내지 않는다. 우리는 부화를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
우리가 전문화가 아닌 다양화의 길을 택한다면 여러 다채로운 경험을 통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쉼과 고요의 시간이 필요하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올더스 헉슬리는 〈쉼은 침묵이다〉란 제목의 에세이에서 소리의 공백이 클래식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침묵은 모든 훌륭한 음악의 정수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에 비해 음정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바그너의 음악은 침묵 면에서 보면 한참 수준이 떨어진다. 어쩌면 이것이 바그너 음악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음악보다 훨씬 덜 의미 있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바그너의 음악은 쉼 없이 말하기에 덜 말한다.” 우리는 세상이 제공하는 폭넓은 아름다움에 자신을 노출시킨 다음 한발 물러나 이 모든 것을 흡수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 사이사이에 타임오프라는 양질의 침묵을 흩뿌린다면, 그 일의 창의성과 의미가 한층 증가할 것이다.
---「2장. 창의성」중에서
찰스 다윈은 하루 세 번 90분씩 일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긴 산책을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상념에 잠겼다. 엄청난 다작가이며 사상가였던 앙리 푸앵카레는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1차 작업을 한 뒤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2차 작업을 했다(어떤 문제로 머리를 싸맸다가 무의식에게 바통을 넘기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마찬가지로 수학자 G. H. 하디는 의식적 작업은 ‘하루 4시간’이 최대치이며, 나머지 시간을 너무 많은 ‘바쁜 일’로 채우면 매우 비생산적이라고 믿었다. 그러고 보니 다윈, 푸앵카레, 하디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대로 초점을 맞추고 진짜 집중력을 발휘한다면, 그리고 이 시간을 양질의 쉼으로 뒷받침한다면, 위대한 성취에 필요한 시간은 하루 4시간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바쁨 문화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발상이다.
위대함을 낳는 ‘1만 시간의 법칙’은 앤더스 에릭슨과 동료들의 공동 연구로 탄생한 이래 숱하게 인용되었고,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로 대중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이 법칙은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려면 1만 시간의 의도적 연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바쁨과 스트레스와 과로를 악덕이 아니라 미덕으로 간주하는 세상은 쌍수를 들어 이 법칙을 환영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은 이 법칙을 마치 교리처럼 신봉한다. 그런데 에릭슨의 실제 연구에는 매일의 의도적 연습이 효과적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리고 하루에 투입해야 할 이상적 시간으로 4시간을 제시했다.
---「3장. 쉼」중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은밀한 오두막에 은신하며 골프와 브리지, 긴 산책, 카우보이 소설 읽기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선 ‘일,’ 그러니까 전쟁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엄격히 금지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정점에서 연합군 총사령관이 모든 연락을 끊고 고독을 즐기는 데서 얻는 유익이 잠재적인 위험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 보통의 지식 근로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 고위 경영자들도 고독의 유익을 재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6장. 고독」중에서
박사학위 소지자라면 논문 쓰기가 얼마나 몸서리치게 싫었는지, 얼마나 그 과정이 고역이었는지, 마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하루에 단 몇 줄만 써져 수개월간 고생했는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 맥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 과정이 꽤 즐거운 경험이었고, 첫 단어를 쓰고 나서 논문을 완성할 때까지 6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그 과정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생산적이고, 여유 있으며, 스트레스가 적은 시기였다. 사실 논문을 쓰는 내내 휴가 여행을 떠난 느낌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실제로 그랬다. …
맥스는 며칠간 섬을 돌아본 후, 짧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글쓰기 시간과 나 홀로 사색 그리고 의도적 쉼으로 이어지는 일과에 금세 안착했다. 그는 평소 기준으로는 상당히 이른 오전 9시나 10시쯤에 기상해서 명상과 스트레칭을 한 다음, 산에서 잠시 달리기를 하거나 아름다운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렌트한 소형 스쿠터를 탔다. 그리고 푸짐한 아침식사를 여유 있게 즐기고, 대개 한두 시간 독서를 했다. 그런 다음 이른 오후쯤 마을의 작은 카페에서 그날의 1차 글쓰기 시간(60~90분)을 가졌다. 글쓰기 시간은 짧았지만 오전 일과 덕분에 차분히 집중할 수 있었고, 대체로 단어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 시간에 글이 막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글쓰기를 마친 후에는 그 카페에서 가벼운 점심을 먹고 보통은 낮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갔다. 낮잠은 쓴 글을 뇌가 소화하는 시간이었다. 그다음 밖으로 나가 섬을 좀 탐사하거나 식료품 사기, 물놀이, 해변 산책, 독서 등을 했다. 이 모든 활동을 할 때는 ‘일’에 관한 의식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맥스는 당시 다시 읽기 시작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영감을 얻어 여러 날 빵 굽기에 심취했다. 빵 굽기는 맛난 결과물이 생길 뿐 아니라 명상과 성찰에 효과적이어서 그가 즐겼던 (지금도 즐기는) 취미 활동이다.
---「9장. 여행」중에서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우리는 약물만이 진짜 중독을 유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10~20년간 행동 중독도 동일한 실체가 있음을 알아가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중독성을 부채질하는 핵심 동인은 가변적이고 예측 불허의 일정으로 제공되는 “간헐적 긍정 강화”라는 보상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작위적 보상이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 훨씬 많은 도파민 분비를 유발한다(카지노 운영자나 도박 중독자라면 경험상 수긍할 것이다). 온라인에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우리는 몇 명이 ‘좋아요’를 누를지, 댓글을 달지, 팔로워가 생길지 모르는 로또 놀이를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지루하다 싶으면 바로 휴대폰을 확인하고픈 조바심은 이런 무작위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10장. 테크놀로지」중에서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 멀티태스킹을 잘한다고 생각하겠지만(실제로 멀티태스킹 빈도수도 더 높다) 멀티태스킹이 인지에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이기는 매한가지다. 그들이 학습과 성장에 집중해야 할 인생 단계에 있음을 감안하면 부정적 효과는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새 기술을 학습하거나 머리를 싸매고 복잡한 개념을 파고 들어야 할 때는 오랫동안 방해받지 않는 연속적 집중이 꼭 필요하다. 오직 의도적이고 집중적인 실천만이 신경회로 강화로 이어지는데, 주의력이 분산되면 동시다발적으로 너무 많은 회로가 점화되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강화되지 못한다. 멀티태스킹의 달인이 되는 것이 우월한 능력인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는 열등해지는 길이다(팀 하포드의 느리고 의도적인 ‘슬로우 모션 멀티태스킹’이나 쇠렌 키르케고르의 윤작을 실천하지 않는 한). 상시적 주의력 전환은 뇌에 두고두고 좋지 않은 타격을 입힌다. 진짜 깊은 일과 깊은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10장. 테크놀로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