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야, 이번에 너희 발레 학원에 지난 콩쿠르에서 1등한 애가 새로 왔다며?”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날 정도면 보딘의 실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준수는 더욱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럼 뭐해? 얼굴도 시커멓고, 머리도 곱슬곱슬하고,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크고…….” 준수의 말에 엄마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맞다. 걔가 필리핀 애라며? 이름이 뭐라더라? 준수야, 걔 이름이 뭐라든?” --- pp.22-23
“나는 보딘이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살았고, 우리말도 잘해서, 영어는 못하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외국 친구들이랑 영어로 편지도 주고받는다니 얼마나 대단하니?” “외국 친구들이 있다는 것부터 대단한 것 같아. 나는 옆 반 아이들도 사귀기 힘든데.” 여자아이들은 모두 보딘 칭찬을 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었습니다. 보딘이 이 학원에 온 후로, 세상은 모두 보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 p.45
‘흥 까불 수 있을 때 실컷 까불어라. 우리나라 모든 애들이 다 돼도 너는 안 돼. 너는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잖아. 발레에 어울리는 피부색도 아니고. 두고 봐!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 테니.’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준수는 보딘과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창밖만 노려보았습니다. 창밖으로 수많은 간판의 글씨와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갔지만 준수의 눈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보딘을 이길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 p.63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참 힘들었어요. 친구가 없었거든요. 피부색이 다르다고, 나라와 말이 다르다고 아무도 제 손을 잡아 주지 않았어요.” 보딘의 말에 준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보딘을 제일 못살게 군 건 다름 아닌 준수였습니다. “그때 제 손을 잡아 준 것이 발레였어요. 발레를 하니까 외로움도 잊을 수 있었고, 친구도 생겼어요. 희망도 생기고 꿈도 생겼어요. 전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들도 저를 보고 그런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는 거고, 세계 곳곳에 있는 친구들도 사귀는 거예요.” 보딘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힘껏 박수를 보냈습니다. --- pp.108-109
“야, 필리핀! 너 알아서 그만둬. 그리고 너는 필리핀이랑 붙어 다니지 마.” 승호는 마치 반장이라도 된 듯 명령조로 말했습니다. 반장이라 하더라도 감히 그만둬라, 마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승호는 보딘을 이름 대신 필리핀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발레를 조금 배워서 흉내는 내는가 본데,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 뮤지컬이란 말이야. 필리핀 사람은 필리핀에서 하든가 말든가 해. 알았어?”
발레리노가 꿈인 준수가 다니는 학원에 필리핀에서 온 보딘이 들어온다. 보딘은 전국 발레 콩쿠르에서 1등을 할 정도의 실력파이고, 영어도 잘하며, 아이들과도 쉽게 친해질 정도로 성격도 좋다. 하지만 준수는 보딘이 자신과 다르게 생긴 것도 못마땅하고, 자신이 짝사랑하는 연우가 보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싫어 피부색도 까만데 무슨 발레냐며 툴툴거린다. 그러던 중 준수는 발레 뮤지컬 오디션 날 보딘에 대한 질투로 보딘의 발레복과 토슈즈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 보딘은 준수와 함께 뮤지컬 오디션에 붙는다. 그후 준수는 우연한 기회에 보딘의 꿈을 알게 되고, 보딘의 외국 친구들을 소개받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