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 킴은 순간과 영원, 친숙한 일상과 광대한 우주처럼 언뜻 멀게 느껴지는 개념들을, 작품을 통해 연결하여 보여 준다. 그리고 그 특유의 방식으로 작품화된 결과물은 매우 시적이다. (...) ‘사소한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어서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작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흘려보내거나 무시하지 않고 붙잡아 무대의 중심에 세우는 태도, 그리고 그것이 영원한 것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하는 메시지. 이는 나의 사소한 오늘과 작은 노력을 숭고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위안을 준다. 나는 오늘도 습관적으로 하늘의 모습을 휴대폰에 남긴다. 그리고 함께 기록한다.
---「매주 일요일의 #하늘스타그램」중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게 되면 이미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고 전시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시대에 활동하는 작가들과 직접 만날 기회도 많다. 특히 나는 내 또래의 작가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 그들의 끈질긴 도전에 항상 고개가 숙어지곤 했다. 변화나 도전 앞에서 소심한 나에게는 캔버스 하나하나가 새로운 도전인 그들의 삶이 항상 관찰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는 자주 상상한다. 흰 바탕 위에 첫 스케치나 붓 터치를 하는 작가가 되어 ‘대리 탐험’과 ‘대리 도전’을 하는 거다. 예술가가 만들어 낸 흔적이 켜켜이 쌓이고, 완성 단계에 다다르기까지 그가 경험했을 ‘해방으로 가는 과정’에 빠져든다. 그렇게 홀로 상상하며 그 경이로움을 만끽한다.
---「때론 헤매는 것도 괜찮아」중에서
부르주아의 작품에는 항상 모순적 은유가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 바로 〈마망〉이다. 청동으로 엮인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거미가 몸에 알주머니를 품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행인들이 조각의 안팎을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멀리서 주변 환경과 함께 조각 전체를 관망할 때와 작품 안에 들어가서 가까이 보고 느낄 때의 인상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주 멀리서 보면, 그 주변을 둘러싼 도시 풍경과 행인들이 만들어 내는 크고 작은 움직임 속에서 혼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존재하는 위용이 느껴진다. 하지만 거미 조각의 내부에 들어가 그가 품고 있는 하얀 알들과 꼿꼿하게 힘준 다리를 마주할 때는 온 힘을 다해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는 듯한 간절함을 느끼게 되어 안쓰러운 감정이 들기도 한다.
---「엄마 거미의 위태로운 위용」중에서
처절한 실패는 숨기거나 가릴 대상이 아니라, 드러내며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이불의 눈부신 개와 비행선. 그녀의 이러한 작품은 아픈 사건들을 따뜻하면서도 냉정하게 돌아볼 때 우리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든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힌트들이다. 다양한 재료들과 의미 있는 사건을 엮어 빛나는 존재로 변모시키는 작가 이불만의 언어는 그 규모와 방식을 달리하며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좌절을 빛으로 기억하기」중에서
엘리아슨의 작품 활동을 담은 ‘아티스트 북’의 제목이자, 그가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철학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당신의 참여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Your Engagement Has Consequences).” 작품을 만들고 제시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작품을 경험하는 관람자의 참여가 있어야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나 사회를 생각하는 관점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준다. ‘당신의 의견, 당신의 움직임이 내게는 너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예술에 어떤 사람이 등을 돌릴 수 있을까? 엘리아슨은 지금도 재료와 크기, 장르를 오가는 흥미롭고 다채로운 실험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항상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영리하고 아름다운 친구와도 같다. 우선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압도하고, 서서히 궁금하게 만들고,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그것을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나를 새로운 영감으로 가득 채워 주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중에서
인상주의를 통해 수확하고 남은 건초더미가 비로소 회화 한복판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고, 심지어 우리는 그것으로 순간과 영원의 이야기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신화나 위인이 아니더라도 지푸라기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망막에 맺히는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인상주의의 인기에 더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건초더미에서 본 순간과 영원」중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내려오는 색색의 아름다운 빛줄기를 보며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듯, 다양한 컬러와 리드미컬한 제스처가 뒤섞여 한 폭의 장관을 만들어 내는 김미영의 화면은 누군가에겐 바람 부는 들판이고, 누군가에겐 눈보라 치는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작가 김미영이 만든 창문을 들여다볼 때마다 기억의 풍경과 마주한다. 어릴 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맡았던 아카시아 향기, 크로아티아의 어느 작은 섬에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 타던 스무 살의 어느 순간, 황금색 가을 들판 앞에서 아이와 물 뿌리며 놀던 날의 기억 등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너무 많은 힌트를 제공하지 않는 김미영의 추상화가 나를 오랜 시간 붙잡아 둔 이유다.
---「그림에서 바람이 불어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