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에 몸담고 살면서도 존재의 변화를 꿈꾸고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감각을 결박할 수 없다면 반대로 한껏 열어젖혀 보는 거다. 감각을 최대한 이용하는 선택이다. 여섯 개의 감각은 양날의 칼이다. 마음을 훔치기도 하지만 본성을 일깨우는 것도 이 여섯 감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눈, 귀, 코, 입, 몸, 뜻을 내 안의 온전함과 아름다움을 돋을새김하는 조각칼로 사용하는 것이다. 감각으로 에너지를 빼앗기는 게 아니라 감각을 섬세하게 연마해 내면의 미세한 꿈틀거림을 알아차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으는 일로 사용할 수 있다. 육적을 잘 다루면 ‘부족한 나(ego)’를 넘어서 ‘온전한 나(본성·참나)’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여섯 개의 길, 육도六道가 된다. 감각을 통해야 심연에 닿게 된다.”
---「감각의 힘」중에서
“안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고, 밖은 수많은 의무와 당위가 아우성친다. 피할 곳도 피할 수도 없다. 총체적 혼돈이 삶의 곳곳에서 복병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가 ‘품위 있게’ 앉을 때다. 그곳이 어디든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양 어깨를 활짝 펴고 의연하게 앉아보는 것이다. 몸의 자세는 그대로 마음을 반영하고 삶을 좌우한다. 지치고 고단할수록 아담한 자리에 푹신한 방석을 놓고 그 위에 꼿꼿하게 정좌해보자. 마치 내가 태산太山이 된 것처럼. ‘내가 여기 있다’는 존재의 가장 큰 울림인 호흡은 생生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 호흡을 방편삼아 우리는 언제든지 삶을 가지런히 재편할 수 있다.”
---「품위 있게 앉기」중에서
“‘홀로있음’은 분열된 내면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생의 어느 한 마디도 잘라내거나 부정하지 않고 일관된 의미로 통합하는 삶의 연금술이다.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의 질적 변화는 고요한 숨과 단순한 삶에 깃든다. ‘홀로 있는 힘’이 길러지면 외로움은 모습을 바꾼다. 선한 친구, 누구보다 믿음직한 벗이 된다. 홀로 멈추는 시간이 많을수록 흔들리지 않는다. 온전해진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중에서
“외부의 자극을 위협으로 감지하는 뇌의 레이더, 편도체가 쉬어야 내가 편하다. 습관적으로 과도하게 반응하는 편도체를 잠재우려면 감정과 의식을 분리하는 응급처치를 반복 실시한다. 괴로운 나를 ‘괴로워 죽겠다’는 감정과 분리해 ‘괴롭구나’하고 인정한 뒤 힘든 감정이 지나가길 기다려준다. 전전두피질과 전측대상피질이 편도체에 난 불을 끄는 과정이다. 감정을 보는 나, 뇌가 스스로를 분석하는 능력이 ‘메타인지(Metacognition)’다. 똑똑하다는 돌고래는 말할 것도 없고 AI도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감정에 빠지지 않고 감정을 자각하는 것, 감정과 나를 분리해 감정을 풍경처럼 바라보는 훈련이다. 편도체가 꿈틀할 때마다 ‘잠깐만!’하고 멈추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일단 멈춤을 상황에 대한 판단중지(epoche)로 이어간다. 위기의 순간마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사마타Samatha(止) 명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중에서
“이는 어떤 의도나 목적 없이 대상을 응시할 때 일어나는 순수한 자기감응이다. 바깥에 있는 아름다움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깊이 잠든 본성을 일깨우고, 그 힘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기적 같은 일. 고통이 씻겨 나가고 영혼이 거듭나는 체험, 카타르시스katharsis. 아름다움이라는 심미적 만족감은 순수하게 인간의 정서를 함양한다. 자기 자신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정신을 개념화할 수 없는 경지로 이끌어 그곳에서 끊임없이 사유하게 하는 촉매다. 분리된 나와 세계를 잇는 매개다. 인간의 영혼은 아름다움을 먹고 자란다. 아름다움을 맛보려면 얇은 곳을 찾아야 한다. 나만의 얇은 곳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하루하루는 저절로 멋진 인생이 된다.”
---「얇은 곳」중에서
“나를 어둠속에 주저앉히고 피폐하게 만드는 감정은 섣부른 판단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뿐이다. 무엇보다 상한 감정은 이해받고 사랑받아야 할 어린아이와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에 대한 지적인 이해와 정서적 동조가 뒤따를 때 감정은 더 이상 늪이 아닌 길이 된다. ··· 내 감정에 대한 지성적 이해는 그 상황에서 딱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이다. 나와 힘든 감정을 분리시키는 일이다. 아픈 감각에서 자책하는 감정을 빼는 일이다.”
---「스피노자의 아펙트」중에서
“태양이 나만 피해 비추지 않듯이,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
나무가 나를 꾸짖지 않듯이, 나를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장미가 다른 꽃과 자기를 비교하지 않듯이, 나를 남과 비교 하지 않아야 한다.
비가 마주할 땅을 판단하지 않듯이, 내가 만나는 세상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강줄기가 바다에 다다르듯이, 나는 이윽고 의식의 깊은 심연에 이를 것이다.
바다는 사랑이다. 실은 나도 바다다.”
---「나는 감정이 아니다」중에서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문장 하나가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경전은 그런 ‘지푸라기’들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길벗이다. ‘경전’하면 고리타분한 무엇으로 알기 십상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케케묵은 편견이다. 경전은 오래 살았다고 ‘라떼’ 운운 꼰대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경전, 그분이 얼마나 힙hip한지는 만나보면 안다. 어느 순간 손을 내밀든 꼭 그 만큼의 눈높이로 말을 건네온다. 살아가는 방향을 확인하고 싶을 때,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할 때, 내가 누구인지 흐릿해질 때, 마음 가는 경전 한 권을 조용히 만나보자. 누군가의 열 마디 말보다 더 강하고 힘 있는 ‘한 구절’이 거기 있을 수 있다. 운명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치듯 내 온 존재를 흔들어 깨우고 일으켜 세우는 ‘한 문장’이 수천 년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한 문장」중에서
“후성 유전적 요소와 환경의 상호과정이 유전자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은 몸 속 DNA뿐 아니라 그간 반복해온 ‘매일의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듯 선명하게 드러낸다. 성격, 말투, 표정, 습관 등 지금의 나를 이루는 특징들은 그동안 다양한 요인이 안팎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틀 지워진 것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살아오면서 형성된 한 사람의 후성유전체는 ‘모든 면에서 유전체에 맞먹는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부모 탓할 근거가 휘청해지는 지점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카르마karma라면 명상수행은 내가 조성하는 후성유전체가 된다.”
---「나와 후성유전체」중에서
“누구 하나 빠짐없이 우리의 고향은 별이다. 내면의 빛으로 살아있다. 그 빛이 시작이요 끝이다. 밖이 아닌 내 안으로 시선을 돌이켜야 하는 이유다. 내 안에 있는 빛을 밖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멈추고 안으로, 안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빛은 심연이다. 심연은 짙푸른 침묵의 바다다. 그 바다가 출렁이는 파동과 그 파동에 공명하는 우주의 메아리를 듣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빛은 오로지 내가 ‘관찰할 때’, ‘찾을 때’, ‘관계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빛으로 가득한 나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이 생에 주어진 가장 큰 프로젝트다. 내가 나를 낳을 수 있다. 내면의 빛으로, 내 안의 심연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자 빛으로 가득한 큰 나로 부활하게 하는 길이 ‘명상대로’다.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길에는 문이 없다. 천지가 열린 길이다. 거칠 것이 없다. 그 길을 ‘걷는 나’가 필요할 뿐이다. 창조자라는 자부심으로 어깨 펴고 당당하게, 인간의 위엄을 지키며 걸어가자. 오늘이라는 레드카펫을.”
---「내가 창조하는 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