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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헌책

: 책에 남은 흔적들의 우주

아무튼, OO-06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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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192g | 110*178*14mm
ISBN13 9791188343706
ISBN10 11883437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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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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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값나가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어떤 물건을-그것은 대부분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그것을 사들이는 이에게 다양한 층위의 정신적 충족감을 줄 뿐이다-일정한 돈을 치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행위에 따라야 하는 공통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안목이리라.
--- p.29

수없이 많은 책을 사서 집 안에 들여놓은 나는 들여온 것만큼은 아닐 테지만 또한 상당히 많은 책을 집 밖으로 들어냈다. 이삿짐을 줄이려고-단언컨대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책을 증오한다-, 비좁은 집이 책의 포화 상태를 극사실주의적으로 전시할 때, 그리고 책이라는 물건에 염증과 회의가 생길-모든 궁핍한 애서가들이 잊을 만하면 겪는 증상이리라 생각한다. 저따위 책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저것들을 끌어안고 있느라 이때토록 가난뱅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아닌가!-때마다 헌책방이나 온라인 중고서점에 책을 무더기로 가차 없이 팔아버렸다.
--- p.57

오래전에 강남의 어느 헌책방에 놀러 갔다가 내가 무던히 좋아하는 한 시인의 오래된 시집-그의 첫 시집이다-을 구한 적이 있다. 그것은 그가 또 다른 시인-지금은 여기에 없는-에게 건넨 책이었다. 표지를 펼치고 그의 성글고 흐릿한 글씨를 가만 들여다보노라면 마치 자신의 첫 시집을 펼쳐 이름을 적어 넣고 있는-아마도 미간을 찌푸리고 담배를 피우며-그의 기억할 만한 생의 한순간을, 그 떠나버린 시간을 내가 비밀리에, 잠시나마 오롯이 소유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을 발견하여 갖지 못했더라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일이다. 1981년 9월 20일에 처음 발행된 이 시집은 “우리들의 시인, 최승자”의 『이 時代의 사랑』이다.
--- p.78

그런데 사실은 말 그대로 주저 없이 또 사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초판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판 1쇄본이다. 나는 헌책방에 가면 이미 가지고 있는 책들이어도 내 서재가 아니라 그 책방의 서가에 꽂혀 있는 같은 책들을 버릇처럼 펼쳐 들고 간기 면을 들여다보고는 하는데 그 까닭은 내 서재에 있는 책들 가운데는 초판이기는 하지만 1쇄본이 아닌 책들이 적지 않고 나는 그런 책들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간기 면에 인쇄된 숫자 한두 개만 제외하면 다를 것이 없는 책을, 바로 그 사소한 차이가 나에게는 그토록 중요하기에 태반은 끝까지 읽지도 않고 서가에 꽂아두기만 할 것이면서-그렇다,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사고 또 사는 것이다.
--- p.93

나는 몇 권의 허름한 책을 주섬주섬 챙겨 책값을 계산하고 헌책방을 나온다. 책 꾸러미를 바리바리 들고 느지막이 집에 들어오면 나는 몸을 씻고 나와서 책상 앞에 앉아 그날 취득한 책들을 한 권 한 권 꼼꼼히 한 번 더 검수한다. 그렇게 살균수와 티슈로 구석구석 소독하고 닦은 뒤에-코팅이 되어 있지 않은 책은 먼지를 떨어내고 베란다로 가져가 얼마간 바람을 쏘이고 볕에 말린다(옛말로 ‘포쇄曝?’라고 한다)-비로소 그 책들과 대면한다. 내가 감응하는 것은 그 책들 자체이기도 하고 그것들과 동일시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 p.112

책은 금세 잊힌다. 오래된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책조차 잠시 기억해둘 틈도 주지 않은 채 금세 잊히고 만다. 그리고 잊힌 책들은 흩어진다. 우리가 잘 알거나 아니면 전혀 알지 못하는 장소들로. 어딘가에 정착한 책들은 곧 수면에 빠진다. 그것은 죽음과 비슷한 잠이다.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데 때로는 안타깝게도 아예 깨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잊힌 책들이 흘러드는 세계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것 없는 일이다.
--- pp.163~164

세상에는 인간의 유형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 수많은 기준이 있다. 거기에 하나를 보태보려 한다. 인간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책에다 흔적을 남기는 사람과 남기지 않는 사람. (물론 이러한 분류는 오류다. 전자나 후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간들이 전자와 후자를 합한 인간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나는 철저히 후자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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