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화를 정의하는 이 네 가지 차원에 대해 대부분의 문화사회학자가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문화사회학에서 불행하게도 무시되어 온 하나 또는 두 가지 차원을 나 나름으로 추가적으로 제시한다. 문화사회학은 놀랍게도 구조(structure)와 행위(agency)를 연결하는 중심적인 연결고리일 수 있는 것에 진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왔다. 문화사회학이 놓친 연결고리(missing link)가 바로 감정이다.
--- p.23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직업이 지닌 분류도식과 제도적 구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사회학자가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융, 아들러, 오토 랑크(Otto Rank)가 프로이트와 벌인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이 논쟁으로 인해 그들은 프로이트와 소원해지게 되었다), 그들은 실제로는 사람을 연구하고 나아지게 하고 변화시키고자 할 때 주목해야 하는 적절한 지점에 대해 프로이트와 많은 가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 p.47
대신에 치료요법 에토스는 감정을 통제하고 매우 다양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규칙을 통달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지시한다. 이 치료요법적이라는 형용사가 암시하는 것처럼, ‘감정적’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기대되는 순탄함을 저해한다. 하지만 사회학적 용어로는 ‘감정적’이 된다는 것은 단지 누군가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보다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화, 경멸, 경탄, 애착은 그러한 관계들이 위협받거나 위태로울 때 사회적 관계에 대해 느끼는 바에 우리가 붙이는 이름이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소통’ 또는 ‘협력’의 전제조건이 사회적 관계에 감정적으로 얽히는 것을 중단하는 것임을 뜻한다.
--- p.146
과거에는 부부간의 화합이 도덕적 덕목과 좋은 성격에 달려 있었다면, 좋은 결혼생활은 점점 더 갈등을 관리하는 적절한 기술적 스킬에 의존하게 되었다. 결혼생활은 ‘객관적으로’ 검토되어야 했고, 관계는 결혼생활의 구성 요소를 분석함으로써 냉철하게 검토되어야 했다. 이러한 견해로부터 나온 파생물이 바로 갈등은 잘못된 도덕적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잘못된 또는 부적절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이는 기술적 전문지식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p.165~166
1960년대 후반부터 치료요법 담론은 여성을 다루는 주요 수사 양식을 바꾸어 여성의 욕구와 권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남성과 여성은 다른 욕구 관련 범주들과 유사하게 기본적인 감정적 ‘욕구’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치료요법 담론은 페미니스트들이 빠르게 확산시킨 관념, 즉 감정적·성적 성취가 하나의 권리라는 관념과 쉽게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 이후 치료요법 담론은 19세기의 ‘감상적’ 여성 문화에서 극적으로 이탈한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권리’라는 어휘와 점차 결합되었고, 이는 감정의 언어와 권리의 언어를 혼합함으로써 친밀성을 논쟁과 협상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 p.179
남성이 이성을 행사하는 방식은 이성과 감정의 분리 및 도구적 이성의 지배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이 장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사적 영역의 강도 높은 합리화는 중간계급 여성의 감정 문화가 고도로 합리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간계급 남성의 합리성도 감정과 깊숙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다음의 두 장에서 보여주듯이, 치료요법이 제공한 문화 모델은 점점 더 젠더 중립적인 서사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제5장), 행위자들이 사회적 투쟁에서 이용하는 자원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킨다.
--- p.209
치료요법 언어와 이 부부의 감정 지능이 ‘실질적인’ 문화적 자원인 까닭은, 그 부부가 자신들의 감정 문제의 ‘진짜’ 본질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통의 문화적 아비투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며, 거기서 언어는 문제를 해결하고 내면의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간주된다. 그들은 다시 그 도구를 이용하여 곤란한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고, 언어적 친밀성과 자기계발 서사를 불러냄으로써 그 감정들을 ‘해소’한다. 그들은 다시 그 서사를 공유하고 이용하여 자신들의 친밀감을 증진시킨다.
--- p.309
이 노동계급 남성은 노동계급의 결혼생활이 대혼란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까닭은 노동계급의 삶이 끊임없이 객관적인 곤경에 처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남성과 여성이 자신들의 사적 자아를 조직화하고 서로 다른 전기에 공통의 프로젝트를 접합시킬 명확한 공통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극적인 방식으로 예증한다. 이 남자는 자신들이 서로에게 자주 소리를 질렀고 섹스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갈등을 해결했다고 언급한다는 점에 주목하라. 이 두 행위 양식은 치료요법적인 언어적 소통의 교의와 정반대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들의 관계와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 일상생활의 틀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통의 문화적 자원을 결여하고 있다.
--- p.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