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늘 다채롭다. 안개에 싸여 있거나, 검게 물들어 있거나, 이상한 꽃이 만발하거나, 동그라미가 가득 차 있거나, 색색의 블록인 적도 있었다. --- p.73
생각해보면 얼굴이 감추어진 건, 남들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상사 앞에서는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수 없는 신입사원과, 학생들 인사에 그날 기분과 상관없이 웃음으로 대꾸해야 하는 선생님처럼. 모든 사람이 내가 보는 얼굴과 남에게 보이는 얼굴 양쪽을 두루 가지고 산다. --- pp.114-115
지금껏 이 간단한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그냥 내 눈엔 이렇게 보인다고. --- p.136
이 흉터는, 엄연한 내 얼굴이다. --- p.146
“뻔한 말이지만 어쨌든 흉터는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상징이니까, 굳이 감춰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 p.148
아무도 상대를 완벽히 알 수 없다. 설령 가족이라 해도, 누군가의 세계를 완전히 아는 건 불가능하다. --- p.154
우리는 어쩌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백지보다 귀퉁이의 작은 얼룩에만 집중하는지도 모른다. 비록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세상은 볼 수 있다.
스스로 일컫길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인시울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찍이 소아정신과를 전전한바 이렇다 할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흐릿한 안개나 색색의 블록, 젖소의 얼룩무늬 등 온갖 추상화적 형상에 가려져 보일 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매일같이 바라보고 평가하는 ‘내 얼굴’을 정작 나 자신은 알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시울은 무심하게 그러려니 하며 살아간다. 그런 시울의 일상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온다. 우연히 같은 반 묵재가 던진 공에 맞아 교실 사물함에 얼굴을 부딪치며 상처를 입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 흉터만큼은 거울로 선명히 보이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시울의 흉터를 걱정하지만, 정작 시울은 난생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제 얼굴의 일부가 놀랍고 반갑기만 한데…….
상처 자국을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다른 소설들에서 만난 적이 없었던 자아 정체성의 인식에 대한 강력한 비유다. 우리는 시울과 함께 다가올 괴상한 자화상의 시간, 훼손과 균열의 경험들을 기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페이스』가 발견해내는 성장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