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십 년 동안 비인간 및 비동물(Non-animal)에 관한 행동 연구가 크게 확장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과학계의 개편을 촉진했다. 이런 변화는 특히 신경과학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은 우리의 신경 조직이 ‘의식’이나 ‘자각’이라 불리는 것을 산출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뉴런이 동물의 인지 능력에 필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뉴런이 없는 식물이나 버섯 같은 존재는 당연히 인지 능력이 없을 거라고 성급하게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식물이나 점균류, 단세포 생물 같은 존재들조차 매우 지적인 자각 능력을 암시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주 많다.
---「들어가는 글」중에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이른바 선진국들은 영속적인 진보와 끝없는 성장, 무한한 기회의 약속을 마치 자신들을 위한 신화처럼 소비했다. ‘우리에게 다가올 유일한 한계는 우리가 스스로에 부과하는 한계뿐’이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인간의 뜻이 있는 곳에 길은 항상 존재했고, 자연은 그저 우리의 지배 대상일 뿐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환경 과학자들은 지구가 보여주는 여러 증상에 관한 어마어마한 양의 연구를 축적했는데, 이 증상들의 예후는 명백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광범위한 생태적, 사회적 붕괴와 더불어 재앙적인 기후 변화, 6번째 대멸종(이미 진행 중이다) 등으로 이어지는 처참하고 복구 불가능한 결과에 이를 것이란 사실이다.
---「1장. 병든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중에서
척추동물과 점균류, 버섯류가 현실을 경험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경험 자체가 오직 일부 생명체에게만 국한된 것이라고 믿을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발견된 증거는 그와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주관적인 자각은 우리 주변 곳곳에,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장소까지 포함한 모든 곳에 있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생존 본능은 이로운 것을 추구하고, 해로운 것을 피하도록 우리를 이끌 것이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와 같은 지식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제대로 소화할 수만 있다면, 이것은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2장. ‘인간이 아닌 이웃들’을 기억하라」중에서
자연 세계에 대한 ‘관계 지향적 접근법’을 학자들은 ‘애니미즘Animism’이라고 부른다. 애니미즘은 종교나 신념 체계라기보다는 하나의 관계 패러다임에 가깝다. 세계 전역의 수렵 및 채집 사회를 하나로 엮는 애니미즘의 편재성과 종교(신에 대한 관념과 조상 숭배, 사후 세계 개념 등을 포함하는)가 발생하기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성을 고려하면, 애니미즘을 ‘진화론적 적응’의 산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애니미즘을 인간의 가장 자연적인 상태로 볼 수도 있다.
---「3장.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인식하라」중에서
나는 우리가 과학에 관해서만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연하고, 혁신에 대해 개방적이고, 증거를 토대로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과학적 패러다임을 원하면서도 과학이 우리의 틀린 부분을 지적할 때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두려워한다. 우리는 기존 제도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여전히 낡은 모델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직시하기를 괴로워한다. 그것이 경제적인 낙수 효과이든, 전환 치료이든, 가축이 실제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개념이든 이미 오류를 증명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는데도 기존의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려 한다. 특히 돈이 개입된 경우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할 것이다.
---「5장. 철학적 진보와 생태학적 위기」중에서
불교 전통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관련한 의례나 이야기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데, 그중 일부는 우리의 치료 여정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숲, 강, 산 등 모든 종류의 지형 속에 다양한 영혼이 거주한다고 인정하는 불교의 우주론은 자연 현상 속에 ‘영혼이 깃들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자연 세계에 필수 요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둔 셈인데, 이런 개념은 애니미즘적인 세계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불교 신자들, 특히 서양의 불교도들은 ‘영혼’을 인간적인 번뇌의 은유적 표현이나 에너지의 발현으로 재해석한다. 때로는 동물들을 인간의 무지를 상징하는 구현체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방향을 전환한 것은 20세기에 시작된 불교와 정신분석의 상호작용에서 깊이 영향받은 것이다.
---「7장. 붓다의 가르침에서 얻는 지혜」중에서
인류세가 제기한 문제들에 잘 대처하려면 우리는 정보나 데이터 이상의 것을 갖춰야 한다. 우리에겐 좀 더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 지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지위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신화가 필요하다.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모든 위대한 혁명에는 항상 새로운 신화가 따랐다. 우리는 이제 독단과 배타주의, 착취 등을 피하는 방식으로 이 핵심적인 도구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우리를 더 깊은 망상 속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8장. 우리에겐 새로운 신화가 필요하다」중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만큼, ‘이전 상태로 회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지속 가능성’이란 개념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사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는 말을 전달하는 영리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선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려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스스로에게 ‘당신이 지속하려고 애쓰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가장 솔직한 대답은 결국 ‘착취’와 ‘자원 남용’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회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역동적인 유연성’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상하는 능력’이다.
---「9장. 회복에 이르는 여덟 가지 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