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을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매, 이 소설을 여는 쿠르베의 자화상 [상처 입은 남자](오르세)는 상징적이다. 지독하게 자유를 사랑한 화가의 자기애를 보여주는 이 그림이 구경(究竟), 함께 자유로운 비-의존(非依存)에 이르는 두 주인공의 운명을 표상하는 것도 그렇지만, 식물적 상상력 또한 종요롭다. 우듬지들은 이웃 나무들과 빛을 골고루 나눈다는 “꼭대기의 수줍음”을 상기컨대, 일체중생의 근본적 상호의존성에 대한 식물적 수락이야말로 두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동력이거니, 소설의 처음과 끝을 둥그렇게 감싸는 소나무허리노린재는 그 살아 있는 화두일 것.
- 최원식 (문학평론가)
김섬과 박혜람이라는 두 인물의 사랑에 대한 원근법.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공간과 문화의 변주. 도슨트와 타투이스트의 서로 다른 프로페셔널한 미적 탐험.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둘러싼 채 만남과 이별을 직조하는 관계들. 이 소설은 사랑과 관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한편 그 디테일한 여정에 흥미롭게 동참하도록 만든다.
- 은희경 (소설가)
주인공은 김섬과 박혜람 두 사람이지만 소설의 끝에 이르면, 이들 근처에서 혹은 멀리서 떠돌던 외톨이별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성운처럼 소설을 둘러싸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희망과 슬픔에 대한 각자의 감각을 존중하는 섬세한 시선에서 비롯되었을 그 느낌은 두 주인공이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마주 보고 있는 소설의 처음과 끝, 사소한 반복을 아름다운 우연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야기의 구조에도 힘입고 있다. 소리 없이 진행되는 삶의 균열을 알아채는 예민한 언어의 안테나는 미미한 회복의 기운을 향해서도 신뢰할 만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때로 남루한 의상을 걸치고 있을망정, 우리는 홀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섬과 박혜람』은 보기 드문 소설의 고전적 기품을 갖추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삼십 대는 어떤 나이였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소설의 표현을 빌리면 삼십 대의 클리셰는 무엇이었을까? 인생 대신 ‘일상’이라고 슬그머니 바꿔 말하기 시작한 때가 그 무렵이었던 듯하다. 삼십 대는 장례식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나이이기도 했다. 기억의 부피만큼 상처가 쌓였다고 할까. 그런데도 어른이 되기는 했을까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김섬과 박혜람』은 상처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상처로부터 가까스로 치유된 이들의 사연을 경청하노라면 비단 삼십 대 시절만의 아픔은 아닌 듯하다. 지금도 어떤 문제들이 여전한 걸 보면 이 소설이 궁구하는 자아 찾기는 곧 전 생애를 관통하는 어떤 여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수긍하게 된다.
- 전성태 (소설가)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김섬과 박혜람』은 소설의 본령에 대해 오래간만에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다. 소설은 작고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이 이야기들은 트렌드를 따르기는커녕 반복되어 익숙하기까지 한 이야기이다. 다 알 것 같은 이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적당히 추하고 적당히 인간미가 있는 우리 내면의 머뭇거림, 그 순간 반사적으로 작동하는 근육의 작은 떨림과 대면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고 나는 가까운 곳에 진리가 있다는 소설의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길의 끝에서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소설. 『김섬과 박혜람』은 좋은 소설이다.
- 하성란 (소설가)
취향이나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게 오롯이 그 자체로 빛나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드문 일이기에 더 소중하고 기쁘다. 작가가 신인이라면 그의 성장을 지켜보고, 완성을 확인할 수 있겠다는 기대까지 깃든다. 『김섬과 박혜람』은 그런 기쁨과 기대를 안겨준 작품이었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는 읽는 즐거움을, 마지막 장을 넘긴 후 밀려드는 긴 여운은 ‘나’와 타인 혹은 우리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작가의 정진을 기대한다.
- 정유정 (소설가)
눈물맛이 나는 소설이다. 비리고 짭짤하고 서러운데 읽고 나면 한껏 개운하다. 작가는 인생의 성패가 어디에서 구분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짐을 분실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잃어버린 짐을 되찾기 위한 전력투구가 아니다. 오히려 상실이 가져다준 변화의 길목에서 잃어버린 경험이 주는 삶의 혜택을 힘껏 받아 내는 것이다. 되찾는 건 사실상 의미 없는 일이다. 찾았을 때 이미 그 주인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 […] 어느 한 문장도 평범한 데가 없다. […]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이 묘사들이 『김섬과 박혜람』을 다른 모든 소설과 구분되는 단 하나의 소설로 만든다. 비리고 짭짤하고 서럽지만 살아내면 한껏 개운한 것이 인생이다. 눈물맛을 즐기게 하는 소설이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