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빨라지고 수명은 길어졌다. 사람들은 새롭게 얻은 시간에 유튜버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내 SNS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의 목록을 살펴본다. 이것은 진보일까? 후퇴일까? 낙관과 비관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거대한 단어들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저자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가 과거에 두고 온 것들을 헤아린다. 저자가 만든 목록에는 결코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만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해결했다고 생각한 문제나 얻었다고 여긴 것들도 있다. 이 책은 그렇게 긍정과 부정의 기준을 뒤섞으며 둘의 경계를 흩트려 놓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새 시대에는 잃은 것과 얻은 것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좋은 책은 답이 아닌 질문을 준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균열을 내고 헷갈리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은 ‘우리가 두고 온 것들’이지만 이는 ‘우리가 얻은 것들’로도 다시 쓰일 수 있다.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는 얻으며 잃고, 잃으며 얻었다는 걸. 성급한 낙관과 비관이 쏟아지는 시대, 변화를 정직하게 응시하는 사려 깊은 책이 도착했다. 어떤 날은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어떤 날은 SNS 스타를 부러워하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읽고 싶다.
- 김지효 (《인생샷 뒤의 여자들》 저자)
불가능해 보이지만 여전히, 인터넷 기반의 세상으로부터 (다소)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물리적으로 스스로를 차단하면 된다. 제한된 기능만을 제공하는 덤 폰dumb phone을 사용하고, 공공장소의 와이파이만 사용하겠다 다짐하고, 번호를 바꾸기까지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이름에 배당된 8개의 숫자 중, 단 하나의 배열만 바뀌어도 완벽히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같잖은 노력이 없어도 우리는 대부분의 순간에 거의 소멸한 상태나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모두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과 잊어버린 것. 그 사이. 우리 자신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 안에서만 존재하는 소실과 소멸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움에 맞장구치면서도 이 책의 한 구절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싶어지는가?
목록은 중요하다. 번호를 매기고 이름을 부여할 때마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끝나는 지점에서 영원히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목록은 반드시 다시 쓰이게 된다. 우리가 멈추지 않으니까. 나는 이 사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고, 다만 믿고 싶다.
- 박참새 (시인)
어쩌면 이 책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관한 작지만 거대한 기록서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을 더는 참지 못하고, 최대한 실수를 할 가능성은 차단해야 하며, 그 무엇도 낭비되어서는 안 되는 세계. 어느 때보다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정작 타인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는 기꺼이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세계. 세상에, 누구라도 이 책을 읽고 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상실한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로 남겨두고 온 유실물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때문에.
때때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하는 행위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의 정말로 놀라운 점은, 무턱대고 우리를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상실감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오히려 나는 묘한 희망에 젖어 들었다. 여전히 우리 손에 남겨진 것이 있다는 것.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아직 다 그려지지 않은 지도 같은 거라고. 빈 부분은 우리가 채워 넣을 수 있다고. 어디로 갈지 스스로 결정할 기회가 남아 있다고. 그리고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 손보미 (《사랑의 꿈》 저자)
좋은 건 같이 알았으면 하다가도, 내게 소중한 것들은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기고 싶어진다. 문득 나는 그 마음이 너무 많은 공유가 만들어낸 무덤들에서 불쑥 자라난 것임을 눈치챈다. 요즘처럼 항시 연결되고 공유되는 상태란 한 개인이 고유한 의미를 갖도록 허락해 주지 않고 그런 게 나는 자주 숨 막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기술이 발달한 지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이전 번거롭고 성가셨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그 시절 우리에게 있었던 것, 이를테면 비밀과 인내, 예기치 못한 순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시간 따위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점점 빨라지는 세상의 유속에 휘말려 그 디테일이 영영 스러지기 전 한 번 더 추억해 보려는 다정한 시도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한 시절에게 건네는 근사하고 뼈아픈 작별 인사다. 그리고 읽는 내내 나는 오늘날 사라진 불편들이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데 퍽 유용했음을 깨닫는다. 지금의 내가 줄곧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느껴왔다는 것과, 좋은 작별 인사란 그 상실감을 보듬어준다는 것도.
- 임지은 (《헤아림의 조각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