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운동은 이념의 역사일 뿐 아니라 그보다 먼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모이고 스스로를 정의했는가. 예수운동은 스스로 유대교 내부의 모임으로 이해했었다. 특히 예루살렘 공동체는 예수운동 초기에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강조하기 위해 원시공동체(Urgemeinde)로 불리어왔다.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유대교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었다. 유대교에서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이사야 48, 2; 52, 1), 하느님의 거처(시편 46, 5), 하느님 통치가 실현될 곳(이사야 33, 20-22; 54, 10-14; 60, 1)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이 일어난 곳도 예루살렘이었다. 부활한 예수가 나타난 곳에 예루살렘이 포함되었다(누가 24, 34; 요한 20, 11-18). 유대교 전통에서 메시아가 오시거나 다시 오시리라 여기던 곳도 예루살렘이었다. 유대인 아닌 민족에 대한 복음 선포 문제로 예루살렘 공동체와 안티오키아 공동체 대표들이 모인 사도회의도 예루살렘에서 열렸다(갈라디아 2, 1; 사도행전 15, 4). 예루살렘 공동체가 예수운동 초기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의견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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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해석하는 핵심 중 하나는 예수가 최고 계명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마가 12,28-34)라는 사랑의 두 계명이다(마가 12,28-34).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에게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 가는 계명입니까 물었다는 장면(마가 12,28)은 마가복음 저자가 설정했다. 율법학자들은 어느 것이 첫째 계명인지 묻지 않는다. 신명기 6,5와 레위기 19,18을 한데 묶은 기록이 유대교 문헌에도 있었지만, 계명에 번호를 매기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사랑의 이중 계명이 예수운동 전승에 폭넓게 자리 잡은 사실(마가 12,28-34; 요한 13,34; 갈라디아 5,14; 로마 13,8-10)을 보면, 사랑의 이중 계명을 유대교 영역 밖으로까지 확장한 예수운동의 선교 전략은 큰 성과를 거두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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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공동체는 예수운동에서 신학 중심지 역할도 했다. 아폴로가 세웠고(사도행전 18,24-26), 바울 선교 중심지 중 하나였던 에페소(사도행전 19,9)를 보자. 에페소는 바울 생전에 바울 학파가 생겼고, 에페소서와 목회서신이 탄생했고 또한 요한 학파의 근거지였던 것 같다. 천지창조 이전 예수 존재, 십자가 신학, 예수 호칭, 성령, 인간학, 윤리에서 바울 학파와 요한 학파의 연결점과 공통점이 적지 않다. 고대교회 전승은 요한복음이 에페소에서 쓰여졌다고 말한다. 요한복음은 주로 소아시아와 로마제국 동쪽 지역에서 영향력이 컸다.
마가복음은 농촌과 도시의 갈등이 두드러진 문헌으로 볼 수 있다. 마가복음 처음부터 예루살렘은 예수를 적대하는 도시(마가 3,6; 7,1)로 표현되었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진출하는 예수의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라고 예수가 세 번이나 설명했다(마가 8,31; 9,31; 10,33). 예루살렘 성전항쟁(마가 11,15-18)에서 예수와 반대자들의 갈등은 최고에 이른다. 예루살렘이 죄없는 예수가 억울하게 체포되고 처형된 곳(마가 14,43-65; 15,1-41)이라면, 갈릴래아는 부활한 예수가 나타난 곳(마가 14,28; 16,7)이다. 누가복음 저자는 예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끝(사도행전 1,8), 즉 로마에 이르는 길(사도행전 13,10; 19,23)을 제안하였다. 마가복음이 예루살렘에 진출하는 예수 고난의 길을 세 번 언급했듯이, 누가복음 저자는 바울이 로마에 진출하는 고난의 길을 세 번(사도행전 19,21; 23,11; 27,24)이나 강조했다. 물론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이전에 로마에는 이미 예수운동 공동체가 있었다.
--- p.395~396
역사의 예수를 역사 이야기로 집대성한 최초의 작품들이 곧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이다. 그들 이전에는 예수 어록과 수난 이야기를 포함한 여러 전승이 입으로 글로 여기저기 흩어져 전해졌을 뿐이었다. 역사의 예수가 아니라 예수운동 공동체의 현안을 다룬 바울 편지들은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과는 차원이 다른 문헌이다.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을 본문이라고 표현한다면, 바울 편지들은 본문에 대한 일부 해설이라고 할까. 바울이 구경도 못하고 읽어본 적도 없는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은 70년 이후 예수운동 공동체에서 예수 역사에 대해 공인된 문헌처럼 존중되기 시작했다. 복음서 저자들의 생각과 공동체 현안에 따라 예수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과 내용이 다르긴 했지만, 예수 역사가 예수운동의 본문임에 모두 일치했다.
100년 무렵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은 예수운동 공동체 모임에서 낭독되었다. 복음 낭독에 설교, 기도 빵나눔이 덧붙여졌다. 공동체 모임을 주관하는 목사, 신부 등 성직자 계급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목사, 신부 없이 공동체 모임과 빵나눔이 행해졌다. 공동체 모임과 빵나눔이 어떤 순서로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우리에게 거의 없다.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은 공동체 모임뿐 아니라 개인들이 일찍부터 읽고 연구하기 시작했던 듯하다(누가 1,1-4).
--- p.455~456
바울 편지가 십자가 이후 예수를 알려주었다면, 네 복음서는 십자가 이전 예수부터 십자가 이후 예수까지 알려주고 있다. 네 복음서는 갈릴래아 공동체가 전해준 십자가 이전 예수와 예루살렘 공동체가 전해준 예수 수난 역사를 연결하고 합쳐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네 복음서는 십자가 이전 예수와 예수 수난 역사를 마치 축구의 전반전과 후반전처럼 나누고 엮었다. 바울이 십자가 이후 부활까지 3일 신학을 말했다면, 네 복음서는 3일 신학을 넘어 예수 생애 전체를 소개하고 있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마가복음은 7주 신학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30년 신학을, 요한복음은 태초부터 영원의 신학을 제안했다고 비유할까.
마태복음과 야고보 편지는 유대교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다. 갈릴래아 공동체는 유대 독립전쟁 와중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언제 어떻게 예수운동이 유대교와 헤어져 독자 종교로 발전하고 자리잡았는지 주제는 신약성서 학계에서 논란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2세기에도 예수운동과 유대교의 경계선은 뚜렷하지 않았고, 언제 예수운동이 유대교를 벗어났는지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예수운동 특징은 정말 무엇이었는지, 예수운동과 유대교의 경계가 당시 뚜렷했는지, 예수운동과 유대교의 갈등과 분열을 당시 모든 예수운동 사람들이 똑같이 해석했는지, 당시 유대교가 단일한 모습을 갖춘 상태였는지, 성서학계와 유대교 모두 앞으로도 더 자세히 연구할 주제겠다.
유대교가 인류에게 하느님을 선사했다면, 예수운동은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사했다. 유대교가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전했다면, 예수운동은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 p.475~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