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가득 들어찬 집, 현관 앞 TV에 바싹 붙어 앉아, 이제 막 〈디지몬 어드벤처〉 첫 화를 본 열한 살의 나는 리키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내게도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선택받은 아이가 됐다.
--- p.23
내가 디지털 세계에 가기 위해 이런 짓까지 했다는 걸 가족들은 모른다.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다. 이 책을 읽는다면, 그제야 내가 이 정도로 디지털 세계를 열망했다는 것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넘기 위해 이렇게까지 은밀하게 시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혼자 그곳에 가고 싶었다. 아주 훌쩍, 창호지에 구멍을 뚫듯 폭, 세상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흔적도 없이.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외로움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 p.25
내가 기억하는 내 유년의 모습이란 이런 장면들이다. 올챙이 가득한 저수지를 뚫어져라 보던 것. 나를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벽돌 사이로 풀이 무성하던 어린이 안전교육용 가짜 도로에 서서 켜지지 않는 신호등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것. 경기가 없는 텅 빈 실내 배드민턴장 관객석에 앉아 있던 것. 실내체육관 외벽에 설치된 암벽 등반장에서 겨우 돌 하나 밟고 올라가 버티던 것. 사시사철 추운 집 계단 앞에 앉아 있던 것. 거실 끄트머리에 놓인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먹던 것. 그리고 붉은 거실에서 TV를 보던 것. 그렇게 줄곧 혼자였던 것.
--- p.30
아구몬과 함께여도 재미있겠고, 파닥몬도 정말 귀엽고, 피요몬도 멋있지만 그래도 나는 외로운 매튜 곁에 있어주는, 다그치지 않고 그 외로움에 함께 파묻혀주는 파피몬이 좋았다. 내게도 파피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 순간마다 파피몬이, 혹은 내 디지몬이 옆에 있다고 상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순수한 상상과 정신병적 망상의 경계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래도 디지털 세계는, 이 세계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는 외로운 나에게 큰 위로였다.
--- p.34
나는 디지몬의 진화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그 진화가 완전한 성장이 아니라는 점도 좋다. 디지몬은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진화할 수 있고 다시 돌아온다. 잘못 진화하면 다시 진화하면 된다.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무언가 그릇된 것처럼 느껴지면 나는 이 문장을 자주 상기한다. ‘괜찮아, 다시 진화하면 돼.’
--- p.46
그날 밤 잊고 있던 〈디지몬 어드벤처〉를 1화부터 다시 보았다. 그 세계가 여전히 그곳에 있음에, 모니터 너머에 나처럼 답답해하는 고래가 갇혀 있음에 어떤 위로를 느꼈다. 그럼, 조금만 더 믿어볼까. 나도 아직 디지털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내게도 선택받을 기회가 남아 있다고. 내게 주어진 문장이 아직 뭔지 모르니까, 살다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십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한번 디지털 세계를 꿈꿨다.
--- pp.53-54
그때 친구가 해준 말은 여태껏 내가 뼈에 새기고 있는 삶의 이정표 중 하나다. 모두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준비 없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어쩌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규칙도 모른 채 축구공을 찬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그것의 정체를 전부 알고 하지 않는다. 희끄무레한 빛, 크기를 알 수 없는 그림자, 그런 것을 더듬으며 나아간다. 공부는 더 자세히 알기 위한 후속 단계이지, 출발점에서부터 이고 가야 할 건 아니란 말이다. 친구의 말처럼 나는 상상을 하고, 글쓰기의 도구인 글자를 알고 있다. 그럼 쓰면 된다.
--- p.65
어디 가지 않을 거라는 말 대신 나도 엄마를 단단히 끌어안는다. 미안했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 p.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