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특별한 가풍과 신앙 전통 속에서 길러진 어느 신부님의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유별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톨릭 고유의 큰 사랑을 느끼게 해 줍니다. 구수한 충청도 입담으로 독자를 즐겁게 해 주다가도 강론 중에 들으면 불편할 것만 같은 주제를 애써 피해 가지 않습니다. … 어렵게 말하기는 쉬우나 쉽게 말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큰 사랑 이야기를 알기 쉽고 편하게 들려주시는 신부님이 마냥 부럽습니다.
---「추천사」 중에서
사랑에서 오는 미안함, 그 마음이 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형제들 특히 작은 이들을 향해서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보다는 미안해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책머리에」 중에서
홀로되신 어머니는 지금도 나만 보면 미안하단 말만 하신다. 사랑은 늘 미안한가 보다. 가진 것 다 주면서 더 주지 못 해 미안하고 더 줄 수 없어 미안하다. 아무리 주어도 모자란 것 같은 마음, 끝이 없는 사랑, 다함없는 사랑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이런 게 아닐까? 우리를 기르시려고 당신을 양식으로 내어 주시고 우리를 살리시려고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신다. 목숨이 다함으로 그 사랑이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 다시 사랑해 주신다.
---「사랑은 늘 미안하다」 중에서
결국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적당함이란 삶의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지향의 문제다. 내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 세상을 사랑한다면, 이 모든 것들을 지으신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어찌 내 삶이 적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꿔 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하느님 보시기에 적당치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 안에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하게」 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의 고통을 바라보고 가슴 아파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답답해하는 그 마음만이라도 갖는 것, 문제 해결을 위한 직접적인 도움은 줄 수 없어도 관심이라도 갖고 들여다보고 그 아픔과 진실을 주위에 알리고 어떻게 도와줄까 궁리하고 모색하며 기도하는 그런 작은 정성만이라도 봉헌하는 것, 그것이 위로다.
---「위로, 버티게 하는 힘」 중에서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신다. 비록 ‘강도 만난 사람’ 곁에 직접적으로 머물 수는 없어도 그들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지지하고 연대하는 모든 노력들이 우리를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이 같은 믿음으로 모두를 구원하실 것이다(마르 2,5).
---「이웃 사랑의 중심」 중에서
그러고 보면 박해는 사라지고 신앙은 자유롭지만 여전히 우리는 순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해 묻는다. “당신은 천주교인이오?” 이 질문에 우리는 복음적 자존심을 한껏 들어 높이며 이렇게 답해야 한다. “보면 모르오?” 정녕 자존심이란 입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적 자존심」 중에서
결국 우리 삶 속의 넉넉함과 너그러움이란 하느님을 닮은 본성으로서 이 세상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요 나약하고 허물 많은 이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너른 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단축과 축약이 갖는 효율성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것이 넉넉함과 너그러움까지 해쳐서야 되겠는가!
인생을 효과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덜고 줄이고 합치는 것도 좋지만 인생을 더 복되게 살아가기 위해 보태고 놔두고 기다리는 여유, 세상의 작은 것들이 깃들 수 있는 그 넉넉함과 너그러움만은 꼭 간직했으면 좋겠다.
---「넉넉함」 중에서
우리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이 놀라운 변화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는 세상, 나만 행복하면 되는 세상,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 한치 앞의 이익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해 버리는 세상, 그런 세상에 언제까지 발맞춰 살아갈 것인가?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그 영원불멸의 가치, 그 참삶의 모습을 선택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우주보다 더 크고 높으신 분을 향해 나아가자!
---「오버뷰 이펙트」 중에서
결국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거다. 다만 하느님의 뜻이, 하느님의 계획으로, 하느님의 시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도라는 것은 내 요구를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내 목숨, 내 정신, 내 힘’(마르 12,30)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그분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시도록 말이다(루카 22,42; 마태 6,10).
---「반드시 이루어지는 기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