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있다는 것은 황홀한 은총입니다. 살아 있음이 희망이요, 즐거움입니다”
지인들은 제게 염색을 하면 훨씬 젊어 보일 거라며,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어질 거라고 했습니다.
“속일 게 따로 있지, 나이와 세월을 어찌 속이겠습니까. 나이 먹고 늙는 게 정말 싫었는데 코로나에 걸려 죽을 고비를 견디고 나니까 아프지만 않으면 늙는 것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지셨는데, 그래도 젊어 보여야 주변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젊게 사시면 좋지요.”
“젊은 척하는 것도 괴로움이 됩니다. 나이 들수록 마음에도 염색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머리 염색만 했으니 이제는 마음 염색도 하려고 합니다.”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염색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았던 세월을 떠올리며, 이제는 제 본디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안도의 기쁨을 누리곤 합니다.
---「은발이 잘 어울리십니다」 중에서
이집트 사람이 죽어서 하늘에 오르면 천당에 갈지 지옥에 갈지를 결정하는데, 천신(天神)이 딱 두 마디만 묻는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기뻤나? 남도 기쁘게 했나?”
둘 다 “그렇다”면 천당으로 보내고, 둘 중에 하나라도 아니라면 지옥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이집트 교훈대로라면 저는 마땅히 지옥에 갈 것 같습니다. 글로써 남을 기쁘게 했을 수 있겠지만,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기쁘게 했는지 곰곰 생각했습니다. 제자와 이웃들은 물론, 저와 시절인연이 된 사람들이 저 때문에 정말 기뻤을까 생각해 보니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 자신의 삶에 근심 걱정보다 기쁨이 많았는가 생각하니 왠지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어서부터 세상에 저를 드러내며 살았기에 되도록 겸손하게,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그저 무난하게, 덮어두고 매사 삼가고 조심하자며 재미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습니다. 기쁨을 누리려면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천당과 지옥은 죽은 뒤에 가는 곳이지만 살아서도 가는 곳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기쁘고 남도 기쁘게 하는 사람은 천당에서 사는 것이고, 스스로 기쁘지 않고 남을 기쁘게 하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뻤습니까? 기쁘게 했습니까?」 중에서
이삿짐을 싸본 사람이면 누구든 쓸모없는 걸 잔뜩 가지고 있다는 걸 압니다. 얼마 전, 친지의 권유로 집 정리 전문가에게 요청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정리했습니다. 40년 동안 이사하지 않고 한집에 살았으니 얼마나 잡동사니가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제 집의 잡동사니보다 제 생각과 마음의 잡동사니가 셀 수 없이 많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남의 말 할 것 없이 저 자신을 돌아보면, 입으로는 “가질 것과 버릴 것을 잘 구별해야 인생을 맛있게 사는 거”라고 하면서 저 스스로 지키지 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생각 창고 비우기」 중에서
범인을 잡았을 당시 저는 가족과 친지, 이웃과 경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도 세 명을 저희 집 거실로 불렀습니다. 저희 가족을 묶어놓고 겁박한 현장에서 용서를 받고 싶었습니다. 형사 두 분이 제 부탁대로 수갑을 풀어주었고 강도 세 명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들은 용서를 빌었고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들이 일어나는 순간 저는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강도 중 한 명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제 마음이 지옥이었습니다.”
---「지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중에서
지구는 둥글기에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지구의 중심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지구의 중심이듯, 내가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인답게 삽니다. 내가 존귀하면 세상 사람 모두 존귀합니다. 무언가에 끌려다니면 그 무언가가 주인이 되고 나는 노예가 됩니다. 인물, 학력, 집안, 직업, 재력, 명예, 권력 따위에 끌려다니면 그것들의 노예로 사는 것입니다. 그럼 내 인생은 비극이 됩니다. 나 자신이 인생의 횃불이자 나침판이고 북극성이며, 햇살이자 달빛이고, 꽃이고 꿀이며 열매입니다.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중에서
지독한 고통을 견디며 등정의 마지막 지점인 푼 힐에 올라섰을 때였습니다. 하늘로 이어진 인공 계단 같은 빙판을 기어가듯 올라갔습니다. 눈앞에 히말라야 14좌가 찬란하게 펼쳐졌습니다. 후배 말이 맞았습니다. 절경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인생의 자랑거리’ 하나가 더 생겼으니까요. 그때 문득 머릿속을 휘젓고 가슴을 두드리는 제 영혼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통을 통과했기에 들을 수 있는 소리였습니다. 아직도 제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소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히말라야 열네 봉우리는 수수만년 전부터 존재했고 앞으로도 수수만년 제자리에서 절경을 뽐낼 것이다. 이런 절경에 경탄하면서 왜 우주 역사상 오직 하나뿐인 자신에게는 경탄하지 않는가.”
나 자신이 살아 있음에 경탄해야 합니다. 나와 같은 존재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현재에도 오직 하나뿐입니다. 매일 경탄해도 좋습니다.
---「안나푸르나가 가르쳐준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