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로서 의사 생활을 한 지 43년이 됐고 유방암을 전공한 지는 30년이 됐다. 과거에 유방암은 서구인이 많이 걸리는 암이지 한국인에게는 흔한 암이 아니었다. 우리도 한 세대가 지난 미래에는 증가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중요한 암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당연히 유방암을 전공하는 의사 또한 수가 적었다. 그 후로 20년이 지난 지금 유방암은 여성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이 됐다. 외과 의사 중에서도 유방암을 전공하는 의사 수가 가장 많다. 왜 이렇게 유방암이 증가하느냐 했을 때 여러 원인을 들 수 있다. 초경이 빨라지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살이 찌고, 결혼을 늦게 하고, 아이를 적게 낳고, 수유를 잘 하지 않고, 폐경이 늦어지는 현대인의 생활 습관이 전부 유방암을 일으키는 여성호르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중 ‘서구화된 식생활 습관’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 pp.17~18
앞에서도 말했지만 모든 암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환경이나 음식과 관계된 암이 증가했다. 대기 오염과 관계있는 폐암도, 육식과 관계있는 대장암도 증가하고 있다. 암 외에도 아토피, 류머티즘, 과민대장증후군 같은 자가면역질환이나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같은 생활습관병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무언가 이상하다. 과거와는 다르게 병의 형태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다.
--- p.23
나는 모임을 시작하면서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먼저 “왜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부모와 갈등하거나 남편과 자식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면서 생긴 스트레스 따위였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대부분은 앞으로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에 관해 물었다. 숨겨진 무언가, 비밀스러운 무엇이 있는지 기대하면서.
처음에는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면서 해결책을 왜 먹거리에서 찾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환자가 뭐라고 하든지 나는 스트레스에 관해서만 얘기했다. 암 환자에게 좋은 음식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할 게 없어서기도 했다. 암에 걸리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든다. 환자는 맘이 급하니 암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다니고 많은 돈을 쓴다.
--- pp.25~26
환자와 음식 상담을 하면서 공부하다 보니 내가 요리에 직접적으로 뛰어드는 계기가 생겼다. 나도 한국의 중년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50대 중반까지 바쁘게 살아왔다. 유방암 검진 전문 병원에 전념하느라 전공 공부를 하기에도 바빴지만 세상의 여러 가지 일에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외과 의사로서 종일 환자를 보고 저녁 늦게까지 모임을 하고 와서도 지칠 줄을 몰랐다.
원래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했다. 뚱뚱했지만 큰 체격은 체력과 비례한다고 믿고 있었다. 먹는 양이 워낙 많아서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먹었고 끼니도 하루에 네다섯 번을 먹었다. 많이 움직이는데 그렇게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먹는 양은 많았어도 건강한 음식만 먹었다. 튀기거나 구운 음식은 별로 먹지 않았다. 돼지고기는 삶아서 수육으로 먹고 쇠고기는 스테이크로 즐겼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50대 중반이 넘어서자 몸이 무언가 이상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데 한 번씩 피곤을 느끼곤 했다. 운동은 자주 걷는 것을 빼고는 특별히 하지 않았다. 동료 전문가들과 내 몸 상태를 상의하고 여러 가지 정밀 검사를 했다. 비만 이외에 모든 검사 수치가 완벽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진단 결과는 중년이란 나이에 따른 몸의 변화였다. 우리 몸은 여러 호르몬 작용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중년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로 본 것이다. 여성의 폐경기 장애와 비슷한 논리다.
--- pp.31~32
느긋함을 추구하는 이완 요법은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다. 긴장을 많이 하는 현대 생활에서 강조하는 방법은 명상이나 단전호흡 같은 훈련이다. 나도 요가, 명상, 단전호흡 등을 해보았는데 맞지 않았다. 바쁘게 여기저기를 쫓아다니다가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니 재미도 없고 움직이는 것보다 더 힘이 들었다. 이완 요법이 처음에는 따분하고 숙련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숙련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비를 못 넘기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른 명상 방법으로 그냥 현실 생활에 충실하기만 해도 명상이 된다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걸으며 매 순간 하는 호흡에 집중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천천히 씹어 먹는 것도 명상이라고 했다. 나는 걷기는 좋아하지만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하자니 부담이 됐다. 그런데 요리는 해보고 싶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 약간 들뜬 마음으로 요리를 시도하게 됐다.
--- p.36
동양에서 쌀을 주식으로 한 이유는 풍부한 물과 따뜻한 기온이라는 조건이 맞아서다. 쌀 종류가 동남아에서 나는 인디카 종과 동북아인 한국과 일본에서 나는 자포니카 종으로 나뉘는 것도 기후 때문이다.
힘든 노동을 하던 옛날에는 밥심으로 살았다. 다른 특별한 먹거리가 없던 때 거친 쌀만 많이 먹어도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까칠한 껍질 때문에 맛있게 먹기가 불편했다. 도정 기술이 발달하면서 맛있는 백미를 맛본 지는 100년이 안 된다. 더구나 부족한 쌀 때문에 여러 가지 잡곡을 섞어서 먹다가 눈부시게 하얀 쌀을 먹어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달고 부드러운 식감에 감동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통일벼가 나오기 전이라 쌀이 귀했다. 그래서 잡곡을 섞어 먹는 것을 장려했고 선생님이 도시락에 잡곡이 섞여 있는지 검사를 하셨다. 잘사는 집 아이들은 흰쌀밥을 싸왔고 못살수록 까만 보리밥 비율이 높았다. 보리밥을 싸온 아이들은 도시락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워했다.
--- pp.49~50
우리나라에서 빵을 주식으로 먹는 사람들이 반을 넘었다. 그런데 건강하지 않은 빵을 먹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밀가루에 관한 잘못된 정보로 빵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흔히 서양에 고 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생활습관병이 많은 것을 보고 서양의 주식이 빵이니까 밀가루를 주범으로 여겨 밀가루는 건강에 좋지 않고 쌀이 건강에 좋다고 믿는다. 음식 관련 프로에서는 밀가루를 끊었더니 건강을 회복했다는 체험담도 나온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밀가루로 만든 빵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지 않게 만든 빵을 먹었기 때문에 병이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밀가루가 현대 생활습관병의 주범이 아니라는 말이다. 병의 원인은 빵을 좀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밀 껍질을 벗겨내고 흰 밀을 사용하는 것과 경제적인 효율성과 맛을 좋게 하려고 여러 가지 첨가물을 넣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병이 생기는 것은 밀가루 때문이 아니라 문명화된 식생활 습관 때문이다. 밀가루나 쌀 같은 탄수화물은 인간에게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탄수화물도 좋고 나쁜 탄수화물이 있는데 좋은 탄수화물을 먹으면 건강에 문제가 없다. 현미와 같은 개념에서 통밀로 만들어 툭박지고 맛이 없는 빵은 건강한 빵이다.
--- pp.54~55
먹을 것이 적고 영양분이 부족하고 거친 것에 오랜 시간 적응됐던 인간에게 영양이 풍부하고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이 오히려 우리 건강을 해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숨 쉬는 공기와 먹는 물이 나빠지고 음식 재료의 질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여기다가 미세 플라스틱을 비롯한 문명화의 결정체인 화학물질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2022년 8월 네덜란드 학자가 인간의 모세혈관에서 나노 수준의 미세 플라스틱 조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 지금부터 플라스틱을 적게 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미 미세혈관까지 위험한 물질들이 자리 잡고 있고 계속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선을 넘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대책 없이 많은 병에 시달리고 위기를 맞아야 할까? 아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면 의외로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 역사에서 99%의 시간은 위험에 노출됐고 먹을 것이 부족했다. 최근 겨우 70~8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풍족을 누린 것이다. 이 시간이 비정상적이었다. 착각하고 있었다. 비정상인 현재 생활을 인정하고 정상적인 옛날 생활을 아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다.
--- pp.138~139
국내산은 그렇다 치고 수입 농산물은 안전한가? 우리가 해외 여행을 다녀올 때 다른 나라의 농축산물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강력히 막는다. 다른 나라의 토양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미생물이 국내에 들어오면 생태계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수입 농산물에는 그 나라 토양에서 자라는 다양한 미생물이 붙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미생물을 죽이기 위해서도, 그리고 수입하는 동안 싹이 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화학 처리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안정성이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증거가 충분한 농약이라도 안 먹는 게 좋다.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면 수입 농산물을 피해야 한다.
--- p.157
현재 가장 많이 먹는 고기는 닭이다. 전 세계에서 1년에 먹는 닭의 수가 650억 마리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0억 마리를 먹는다. 하루로 계산하면 270만 마리를 먹는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닭을 키울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상상할 수는 있다. 건강하게 키우지는 않을 것 같다. 소와 돼지도 같은 사정이라고 알고 있다.
생선은 대부분 양식이다. 치어를 풀어서 대양으로 나갔다가 자라서 다시 강으로 올라온다는 연어를 건강에 좋은 생선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연안 바다의 거대한 양식장에서 키운 것이다. 연어에서 환경호르몬이 가장 많이 배출된다는 사실을 얘기하면 대부분이 믿을 수 없다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바다가 오염되고 고래 배 속에서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찌꺼기가 나온다는 보고를 보면 대부분 생선 또한 건강하지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현재 모든 생선은 미세 플라스틱이나 중금속에 오염돼 있다고 경고한다.
--- p.173
나는 GMO 식품을 원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과학적으로 보면 아직 결정적인 위험이 증명된 것이 없다. 라운드업의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가 2군 발암물질로 규정됐지만 2군 발암물질에는 붉은 고기와 얼마 전부터는 잔탁 같은 약이 들어 있다. 글리포세이트가 장내 세균을 죽이고 세로토닌을 억제해서 우울증이나 우리나라 자살률 1위와 관계 있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너무 나간 주장인 것 같다. 이것은 원자력 발전과도 같다. 원론적으로는 위험하니까 사용하지 않으면 제일 좋다. 그런데 원전을 중단하고 비싼 전기료를 지급할 것인지와 GMO 식품을 금지하고 비싼 값에 콩과 옥수수를 사 먹을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찬성할 수는 없다. 과학적인 사실은 상당 부분 맞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기도 하고 의외의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GMO 식품이 탄생한 것을 보면 조심스럽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에 사용한 제초제는 주목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해로움이 증명되자 친환경 제초제라는 라운드업이 개발되고 수십 년간 사용됐다. 또 시간이 지나자 라운드업의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가 2군 발암물질로 분류되고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 pp.182~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