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 아이의 웃는 얼굴에는 어쩐지 종잡을 수 없는 거북하고 으슥한 기운이 서려 있다. 애초에 그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이 아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다. 인간은 주먹을 꽉 쥐면서 웃을 수 있는 족속이 아니다.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는 얼굴이다. 그저 얼굴에 추비한 주름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주름살 부자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하여간 괴상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불결하고 괜히 사람을 벌컥 화나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이제껏 이토록 불가사의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 「서문」 중에서
남부끄러운 적이 많은 일생이었습니다.
저에게 인간의 삶이란 가늠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첫 번째 수기」 중에서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알 수 없어졌고, 혼자만 아주 별난 사람인 듯 느껴져 불안과 공포에 바들바들 떨 뿐입니다. 저는 주위 사람과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안이 광대였습니다. 그건 인간에 대한 저의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인간을 아무래도 떨쳐버릴 수 없었나 봅니다. 그렇게 저는 이 광대라는 한 가닥 연결 고리로 간신히 인간과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만들면서도 속으로는 필사적으로,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빼는 서비스였습니다.
--- 「첫 번째 수기」 중에서
저는 일부러 최대한 엄숙한 얼굴로 에잇! 하고 외치면서 철봉을 향해 돌진해 그대로 멀리뛰기를 할 때처럼 앞으로 날아가서 모래밭에 쿵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모두 계획된 실패였습니다. 예상대로 모두의 웃음거리가 됐고 저도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나 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고 있는데 언제부터 그곳에 와 있었는지 다케이치가 제 등을 쿡쿡 찌르며 나직하게 속삭였습니다.
“시늉이네, 시늉.”
저는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일부러 실패한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다케이치에게 들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세상이 순식간에 지옥의 맹렬한 불에 휩싸여 타오르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듯하여 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발광할 것만 같은 기분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
--- 「두 번째 수기」 중에서
비합법. 저는 그게 어렴풋이나마 즐거웠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놓였습니다.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되레 무섭고(그것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막강한 힘이 느껴집니다) 그 장치가 수수께끼처럼 느껴져, 뼛속까지 추위가 스미는 창도 없는 그 방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비록 밖이 비합법의 바다일지라도 거기에 풍덩 뛰어들어 헤엄치다 죽음에 이르는 편이 저로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
--- 「두 번째 수기」 중에서
“시게코는 하나님한테 무얼 달라고 할 거야?”
저는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습니다.
“시게코는 있지, 시게코의 진짜 아빠를 갖고 싶어.”
흠칫 놀라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습니다. 적. 내가 시게코의 적인지 시게코가 나의 적인지, 아무튼 이곳에도 나를 위협하는 무서운 어른이 있었구나, 타인, 불가사의한 타인, 비밀 가득한 타인, 시게코의 얼굴이 별안간 그리 보였습니다. 시게코만은, 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 자도 ‘불시에 등에를 때려죽이는 소의 꼬리’를 지니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 뒤로 시게코조차 겁이 났습니다.
--- 「세 번째 수기」 중에서
세상이란 대체 무얼 뜻하는 걸까요. 다수의 인간을 뜻하는 걸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실체가 있는 걸까요. 여하튼 강하고 엄격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여기며 여태 살아왔는데, 호리키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불현듯 “세상이란 게 너잖아” 하는 말이 파르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의 화를 자초하고 싶지 않아서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세상이 아니겠지. 네가 용서하지 않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에 큰코다칠 거야.’
‘세상이 아니겠지. 너겠지.’
‘머잖아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겠지. 매장하는 건 너겠지.’
--- 「세 번째 수기」 중에서
이제 저는 죄인은 고사하고 미치광이였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절대 미치지 않았습니다. 한순간도 미쳤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아, 미치광이는 다들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즉 이 병원에 들어온 사람은 정신 이상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정상인이 되는 모양입니다. 신에게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호리키의 그 불가사의한 아름다운 미소에 저는 울었고, 판단도 저항도 잊은 채 차에 올라타 이곳으로 끌려와서는 미치광이가 되었습니다. 곧 여기서 나가더라도 저는 역시 미치광이, 아니, 폐인이라는 각인이 이마에 찍히게 될 겁니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 「세 번째 수기」 중에서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다만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껏 아비규환으로 살다시피 한, 소위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처럼 느껴진 건 그것뿐입니다. 다만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 사람들 대부분은 저를 마흔 이상으로 봅니다.
--- 「세 번째 수기」 중에서
“울었나요?”
“아니, 울기보다는…… 글렀지, 인간도 그렇게까지 되면 다 글렀지.”
“그로부터 십 년, 그렇담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이건 당신에게 감사의 표시로 보냈겠지요. 조금 과장되게 쓴 듯한 부분도 있는 것 같지만, 그나저나 당신도 제법 피해를 본 것 같더군요. 만일 이게 다 사실이라면, 그리고 내가 이 사람 친구였다면 마찬가지로 정신 병원에 끌고 갔을 겁니다.”
“그 사람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우리가 아는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가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으면, 아니, 마셔도…… 하나님처럼 착한 아이였어.”
--- 「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