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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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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77위 | 소설/시/희곡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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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436g | 133*200*22mm
ISBN13 9791141601102
ISBN10 11416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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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이 울퉁불퉁한 내 마음도 사랑의 모양이라면] 한국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예소연의 첫 소설집. 열 편의 단편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제일 미워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제일 사랑하는 마음‘이 넘실거린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사랑은 불가능한 시대에 이렇게 울퉁불퉁하고 기이한 모양들의 사랑도 있음을 내보이는, 놀라운 소설. -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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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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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삶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내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몇몇 남자와 원나잇을 했고 늘 그랬듯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제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또다른 못 견딜 마음으로 돌려 막고 있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내 삶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 p.25 「우리 철봉 하자」중에서

애들은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다. 두려워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것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어리기에 무르디무른 무언가를 내가 망가뜨리고 무너뜨릴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른들 따위는 어느 시점부터 자신이 지니고 있던 무언가를 너무도 쉽게 잊은 채로, 마치 그저 주어진 것인 양 생을 살아간다. 다 망가져가는 것과 다름없는 생을. 나는 그것이 세계가 나를 ‘외부인’으로 만드는 교묘한 방식이라는 걸 깨우쳤다.
--- pp.71~72 「아주 사소한 시절」중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그런 행동에 쉽게 화가 났다. 서로의 사이에 부려놓아진 것이 몹시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른 척하는 사람들 특유의 행동. 그러니까 우리는 최대한 여러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도, 끊을 수도, 이어갈 수도 있는데 꼭 자신에게 주어진 방식은 하나뿐인 것처럼 구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서 가장 배제되고 소외되는 존재는 나 자신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 p.85 「우리는 계절마다」중에서

나는 그 시절 이 물을 이고 지고 나르면서 놀이터에 거대한 수로를 만들기를 원했고 그게 정말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가능할 것 같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에 불과했다. 나를 옭아매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쩐지 이 세계가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옭아맨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p.130 「그 얼굴을 마주하고」중에서

“싫은데 왜 만나?”
“싫은 게 아니야.”
“귀찮았잖아. 괜찮아. 나도 귀찮았어, 평생.”
“외로워하시는 것 같아서 그랬어.”
“네가 평생 그 외로움을 책임질 수는 없잖아.”
“평생 외로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니?”
--- p.180 「사랑과 결함」중에서

글쎄, 사실 해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다만 자기 차례는 절대 올 것 같지 않던 행운이랄 게, 찾아오긴 온 것이다. 아주 급작스럽게. 사주팔자에서도 올해는 그저 건강만 하라고 했는데. 해나는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던 순간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세상이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자신의 삶을 독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pp.194~195 「팜」중에서

그러다가 상주 이야기가 나왔고 태수씨는 내가 상주를 할 수 없는 제도가 몹시 못마땅하다고 했다.
“내가 하면 되지, 상주.”
“그게 그렇게 되나?”
“요즘 여자들은 다 해.”
내가 태수씨를 째려보듯 말하자 태수씨가 와하하 웃으며 내게 속이 좁다고 했다. 나는 혹여 태수씨의 아쉬운 소리가 남들에게 농담처럼 들릴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태수씨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도 녹음기를 켜두고 태수씨의 손을 잡고 몇 번이나 물었다. 태수씨, 내가 상주지? 응. 내가 상주야? 응. 누가? 수민이가, 우리 수민이가……
--- pp.245~246 「그 개와 혁명」중에서

“대모님.”
“마리아.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우리가 곧 죽을 사람이에요?”
“응?”
“곧 죽냐고요. 우리.”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나 그냥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모님도 그런 말 마세요.”
대모님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마리아. 근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걸요.”
--- p.273 「분재」중에서

애인은 진경과 헤어지고도 죽지 않았다. 우리는 당연히 그러지 않을 거란 걸 알았고 또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배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우리가 질릴 만큼 못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진경은 종종 그때의 언니를 회상하곤 했다. 그 말을 하던 승혜 언니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가 멋대로 삶을 망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 우리에게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정말이지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속수무책……
--- p.301 「도블」중에서

나는 불행 포르노를 즐겨 보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또 실제로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는 광경을 보고 싶어하진 않았다. 왜냐고? 그건 나의 마음에 해가 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남의 불행을 소비하는 건 상대방을 멸시하는 것만큼이나 내 마음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 p.331 「내가 머물던 자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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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되고 망가진 채로 지속되는 가족, 친구, 연인 관계를 그리는 예소연의 소설은 궁핍과 외로움으로 인해 관계에 대한 욕구는 더없이 커졌지만, 전통적인 친밀성의 양식에 대한 자원이 동난 가운데 아직 새로운 관계 형식은 부족한 우리 시대의 다양한 사랑의 풍경을 그려낸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언제나 잠시라도 교육의 천재가 된다. 배우고, 적용하고, 실패하고, 폐기하고, 다시 감응하는 일의 반복. 사랑을 원한다면 반드시 실수를 동반해야 하는 시대, 그 불완전함으로 인해 때로 피폐해질지라도 도전을 멈출 수 없는 이들의 가없는 몸짓이 여기 있다.
- 오은교 (문학평론가)
예소연의 소설은 견딜 수 없던 마음들을 견딜 수 없던 이야기고, 묻어두었던 고통과 그리움을 꺼내어 묻는 이야기고, 변호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염오하고 사랑하는 이야기고, 그리하여 내게서 가장 가깝고도 먼 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나는 예소연이 잊지 않은 것, 믿어온 것, 사랑한 것, 미워한 것, 드러낸 것, 남겨두고 감춰둔 그 모든 이야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에 수반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고통이 불러오는 수식은 다시 사랑일 것임을 믿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 이주란 (소설가)
예소연이 펼쳐내는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다가 그 발자취에서 나를 발견하는 경험. 거창할 것 같았는데 사소해서, 오히려 숨기고 싶은 모습이어서 당황스럽다. 나는 미운데 저애는 사랑스럽다. 제가 미워 견딜 수 없다는 몸부림을 나는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등장인물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그와 닮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그 간극에 또 한번 당황한다. 사랑하는 법에 대해 생각했다. 보송한 필터를 걷어내니 보이는, 각질이 덕지덕지 일어난 이것이 사랑이라고, 세상이 미워 흔들거리는 네 옆에서 그저 함께 흔들거려보는 것도 사랑이라고, 예소연은 말했다. 살 것 같았다.
- 손수현 (배우, 영화 〈철봉하자 우리〉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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