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흐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그 시간을 증명한 것이 ‘문화유산’이다. 선조의 정신과 기술이 담긴 문화재를 현재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 전해주는 것이 ‘문화재 보존과학’의 역할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기에는 그저 흔한 돌덩어리 같지만 수많은 설계와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석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이지만 절대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토기와 도자기, 살아서 천 년을 견디고 도구로서 생을 다하고도 남아 있는 목재, 아무나 가질 수 없던 금속, 인류의 행보를 기록했던 지류, 아름다움을 담아 삶을 풍요롭게 한 회화 작품 등 수많은 재료 속에 인류의 행적이 담겨 있다. 역사서나 문화유산 등을 통해 비어있는 부분을 퍼즐 조각 맞추듯 찾아가는 과정이 ‘역사’라고 한다면 ‘보존과학’은 그 과정에서 퍼즐 조각의 진짜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려면 인류의 삶을 이끌었던 재료를 관찰해야 한다. 시간의 순서대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지금까지 보아왔던 시선을 살짝 비틀어 과학의 눈으로 한국사를 살펴보자.
---「프롤로그」중에서
청동은 구리에 주석을 합금한 것으로 구리를 발견하고도 청동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구리는 늘어나는 성질인 연성과 펴지는 성질인 전성이 좋아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가공할 수 있다. 하지만 강도가 약해 잘 부서진다. 이때 다른 재료를 섞으면 새로운 성질을 가진 단단한 금속이 만들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쟁을 치르던 고대에 청동기 제작 기술은 부족의 생존을 좌우했다. 청동이라는 재료로 만든 날카로운 무기가 적의 심장에 파고들면 백전백승이었다. 구리보다는 철이 더 단단하고 사용하기 좋았을 텐데, 인류가 최초로 이용한 금속은 왜 청동이었을까? 그것은 구리가 녹는 온도에 비밀이 있다. 철을 녹이려면 1,538℃까지 온도를 높여야 하지만 구리는 그보다 낮은 1,085℃에서 녹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고온으로 올리는 기술이 있지만 당시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구에 의하면 야외 가마(노천요)에서 일반 나무로 불을 때면 800~900℃까지 온도를 높일 수 있고 참나무로는 1,000℃까지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불을 이용하여 토기를 굽던 이들은 구리 정도는 녹일 수 있었다. 구리는 8~10시간 동안 1,200℃를 유지해야 완전히 녹는데 여기에 녹는점이 231.93℃가량 되는 주석을 넣으면 녹는 온도가 890℃까지 낮아진다. 구리와 주석, 이 두 금속의 만남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막이 된다.
---「1부 금속, 청동 거울 : 금속의 부식 및 산지 추정」중에서
재보존 처리에 적용하기 위해 가장 고려되는 부분은 보존과학 분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역성, 즉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접착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빛, 온도 등의 환경적 요인으로 열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봉수형 유리병〉처럼 재처리가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가 있다. 이럴 때 전에 사용한 접착제를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 보존 처리 때 접합·복원제로 선택되었던 에폭시수지는 접착력이 좋고 수축과 변형이 적으며 고온에도 강하다. 보존 처리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접착제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변하는 황변 현상이 발생하며, 건조 시간이 길어 작업 편의성이 떨어진다. 이에 사전 실험을 통해 물질적으로 안정적이며 가역성이 있는 아크릴계 수지 접착제를 사용하여 처리가 이루어졌다. 보존 처리 작업 중 매우 뜻깊은 일이 있었다. 보존 처리 담당자가 〈봉수형 유리병〉의 결실된 부분이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황남 3326 유리 편〉과 색상 등이 유사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접합을 시도했는데, 38개의 편이 일치한 것이다. 이로써 1,600년 만에 헤어져 있던 편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으며 〈봉수형 유리병〉이 더욱 완벽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봉수형 유리병〉의 재보존 처리는 이전에 사용했던 재료나 처리 방법을 단순히 적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료와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돋보였고 노력만큼 멋진 결과를 이루어냈다.
---「2부. 토기·도자기·유리, 황남대총 봉수형 유리병 : 보존 처리」중에서
문화유산은 방사선을 이용한 진단을 많이 활용한다. 유물을 파괴하지 않는 비파괴 검사*로 내부 구조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제작 기법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보존과학자’를 ‘의사’로 비유하는데 사람의 신체를 최첨단 의료기기 등을 이용하여 진단하듯 문화재도 그렇게 조사하며 진단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문화재 진단에 X-선을 이용하였고 2009년에는 CT 촬영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쓰이는 CT로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인 문화재에 적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유물을 안전하게 고정한 후 회전시키고 X-선을 연속적으로 투과할 수 있게 개선하였다. 이로써 수천 장의 2차원 투과 영상을 3차원 공간 데이터로 재구성하여 문화재 내부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경계한 계戒, 찰 영盈, 잔 배杯의 〈계영배〉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특별한 백자이다.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라고 알려진 이 잔은 겉보기에는 예쁘게 생긴 백자이지만 물을 부으면 채워지지 않고 아래로 빠져버린다. 현대 과학에서는 이를 ‘사이펀Siphon의 원리’라고 하는데, 대기압, 액체 무게, 중력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적당한 양 이상 액체가 채워지면 내부의 특별한 구조에 의해 물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 비밀스러운 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를 직접 확인하려면 단면으로 잘라야 하는데. 유물의 내부가 궁금하다고 하나뿐인 문화유산을 잘라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CT이다.
---「2부. 토기·도자기·유리, 기마 인물형 토기 : 컴퓨터 단층 촬영」중에서
문화재에서의 목재는 크게 ‘수침목재’와 ‘건조목재’로 나뉜다. 먼저 ‘건조목재’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안동에 있는 〈봉정사 극락전〉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찰로 보수 공사하던 중 건물이 세워진 내력과 안녕을 비는 글인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고려 공민왕 때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상량문에 남아있어, 12~13세기경에 건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천 년도 넘은 목재가 지금껏 남아있는 것이다. 이는 목재가 가진 특성에 비밀이 있다. 목재는 수분이 15~18% 미만으로 유지되면 미생물에 의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즉 썩지 않는다. 이렇게 알맞은 건조 상태의 목재는 관리를 잘하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 다음 ‘수침목재’는 무엇일까? 도구로 만들어 쓰이다가 쓰임이 다해 땅에 묻힌 목재는 시간이 지나면 썩는다. 그런데 시간이 멈춰진 땅 ‘저습지’에 묻히면 운명이 달라진다. 목재는 땅속의 수분, 산소, 온도, 곰팡이와 같은 균에 의해 썩는다. 하지만 늪지나 바다 등의 물에 담긴 목재는 세포 내부에 물이 채워지고 산소(공기)와 차단되어 썩지 않는다. 다만 발굴되어 땅 위로 나오는 순간 목재 내부에 함유되어 있던 수분이 증발하면서 형태가 갈라지고 뒤틀리는 등 수축·변형이 생겨 그 원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발굴 현장에서 목재와 같은 유기물이 출토될 경우 신속하게 물이 담긴 용기에 담아 고정한 후 보존처리실로 즉시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하기 때문이다. 잠깐의 실수로 2,000년의 시간을 견디고 존재했던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
---「3부. 목재, 광주 신창동 출토 목기 : 수침목재의 보존 처리」중에서
〈무령왕릉〉 입구에는 머리에 쇠로 만든 뿔이 있고 몸의 양쪽에 불꽃 같은 날개가 있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가 석수로 자리해 있다. 그 앞에는 지신에게 묘소로 쓸 땅을 매입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겨 놓은 〈매지권〉이 있었는데, 여기에 ‘백제 사마왕’이라 적혀 있어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 제25대 무령왕(462~523)과 무령왕비임을 알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일제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을 조사하면서 〈무령왕릉〉은 현무릉이라 하여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71년 7월 5일, 송산리 6호분의 내부에 물이 스며들어 배수 공사를 하던 중 〈무령왕릉〉이 발견되었다. 아무도 무덤이라 여기지 않아 도굴되지 않는 온전한 상태로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백제 왕릉의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수많은 기자와 사람들이 발굴 현장에 몰려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시간을 지체할 경우 발굴이 더 어려워지겠다고 판단한 조사단은 빠르게 유물을 수습하기로 하였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지만 발굴이 단 하루 만에 끝났다. 이로써 〈무령왕릉〉은 한국 고고학사에 길이길이 남을 위대한 발견이라는 명성과 졸속 발굴이라는 오명을 동시에 껴안게 되었다.
---「3부. 목재, 무령왕릉 목관 : 수종 식별」중에서
문화재의 보존 처리는 재료가 시간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기능과 상태가 변하는 열화현상으로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존 처리에 써오던 약품이나 방법이 문제를 일으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가 이어지기도 한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는 일제강점기 이루어진 보존 처리에 쓰인 석고에 의한 염으로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석고는 단단한 물성 등을 이유로 보강 재료로 이용되었지만 석고의 물질적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온·습도의 영향으로 새로운 손상이 발생한 것이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는 2020년 조사에 착수, 보존 처리에 들어가 2026년까지 보존 처리와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4부. 지류, 직물, 벽화, 보존환경 부석사 조사당 벽화 : 재보존 처리」중에서
1940년대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모비우스는 프랑스 생트 아슐지방에서 발견된 ‘아슐리안Acheulian 도끼’를 기준으로 세계를 두 문화권으로 나누었다. 인도를 경계로 서양은 주먹도끼 문화권, 동양은 찍개 문화권으로 나눈 것이다. 주먹도끼는 돌의 박리 과정과 순서를 예측하면서, 즉 머릿속에 설계도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주먹도끼를 최초의 예술품이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유럽, 아프리카, 중동을 위시한 서양이 문화적·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모비우스 학설’을 폐기하게 만든 유물이 대한민국에서 나왔다. 고고학을 전공하고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주한 미 공군 하사관으로 근무하던 그렉 보웬이 1978년 한국인 여자 친구와 한탄강을 산책하던 중 우연히 〈주먹도끼〉를 발견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에 아슐리안 도끼 문화의 존재가 드러나며 세계 고고학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5부. 석조, 주먹도끼와 흑요석 : 제작 원리와 성분 분석」중에서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은 어찌 보면 ‘미완성’이다. 창건 당시의 모습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온전히 복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1991년에 시작하여 1993년에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은 남아 있는 서탑을 모델로 하여 아무런 고증 없이 화강암을 기계로 깎아 만들었다. 이를 두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는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버리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학계에서 얼마나 동탑의 복원에 대한 반성과 후회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초기에는 동탑처럼 서탑도 9층으로 쌓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추론에 의한 복원은 지양하고 실제로 남아 있는 6층까지만 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30년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서 있는 서탑과 동탑의 비대칭적인 모습은 한국 문화재 복원 역사와 가치관의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고 있다. 향후 정확한 근거 자료가 발견되면 그때 복원해도 늦지 않다.
---「5부. 석조, 미륵사지 석탑 : 채석 산지 분석」중에서
일제강점기 때 〈숭례문〉은 좌우측 성곽과 지반이 변형된 상태였다. 〈숭례문〉을 ‘화재 전’의 모습으로 되돌리자고 할 때 문헌 고증과 발굴 조사를 통해 일제에 의해 변형된 상태로 복구해야 하는 것일까? 원형대로 복원하자는데 그 원형은 언제일까? 1398년 태조 이성계 때? 1961년대 수리 때? 생각보다 문화유산 원형에 관한 문제는 답을 찾기 쉽지 않다. 문화재 복원이 어려운 이유이다.
---「6부. 미래에 남겨줄 우리의 유산, 전통 방식의 연구와 발전」중에서
물질은 원자 여러 개가 결합한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물H2O은 산소O 1개에 수소H 2개가 결합한 분자이고, 포도에서 발견되어 이름이 붙은 포도당C6H12O6은 탄소C 5개, 수소H 12개, 산소O 6개가 결합한 분자이다. 보통 원자의 수가 수천 개 이하인 경우 ‘저분자’라고 이야기하고 수천 개에서 수만 개 이상의 원자가 결합한 거대 분자를 ‘고분자’라고 한다. 자연계에도 고분자는 존재한다. 셀룰로스나 우리 몸의 DNA도 고분자에 속한다. 엄밀하게 플라스틱은 ‘인공적’으로 합성한 고분자 물질이다. 플라스틱은 페트병, 비닐봉지는 물론 셔츠나 스타킹 같은 의류도 만들 수 있다. ‘유연하고 가능성 있는’이란 뜻에 걸맞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플라스틱은 자연의 물질로는 분해되지 않는다.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보다 더 오랫동안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지금의 세계가 멸망하고 훗날 6번째 대멸종에 대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지구의 역사를 담고 있는 지층을 조사한다면 인류세를 증명하는 ‘플라스틱 지층’이 확인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학자들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막화, 산불, 홍수, 폭염, 장마 등의 이상기후들을 증거로 이미 되돌릴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슬기로운 사람 ‘사피엔스’이다. 자연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지만 결국 자신을 멸망시킨 슬기롭지 못 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6부. 미래에 남겨줄 우리의 유산,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반도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