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서 바르르 떨던 고양이의 이름은 알지 못했지만, 작은 심장이 어찌나 쿵쾅대던지 나도 모르게 그 생물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때의 측은하고 보드라운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양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니, 좋은 자질을 가졌군요, 라며 선배는 명함을 내밀었다.
--- p.11
나의 일은 ‘그냥 고양이가 아닌 고양이’를 찾는 것이다. 그건 고양이의 부재로써 비로소 또렷해진 존재감만큼 가슴이 벙하고 뚫려버린 의뢰인을 구원하는 일이다. 집 나간 고양이가 집사의 품에 안길 때의 상봉 장면을 나는 좋아한다. 집사와 함께 울 때도 많다. 딱히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순간에는 누구든 그렇게 된다.
--- p.16
그렇다면 누가 유괴를?
드드죠. 드드가 꼬여서 데려간 게 확실해요.
네?
드드는 그럴 수 있어요.
고양이가 고양이를 유괴했다고요?
--- p.43
그러고는 집을 나와 숲을 거닐었죠. 그럴 때마다 드드를 만났고요. 마치 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듯 적당한 곳, 적당한 때에 드드는 어김없이 나타났어요. 이상한 기분이 들 법도 한데 그때는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드드와 함께 걷고 또 앉아 쉬고, 말을 건네고, 그러면서 자책하고 원망하고 화를 내고 슬퍼하고, 누가 보면 미친 사람 같았을 거예요. 그러고 나면 마음속에서 뭔가 스르르 풀려나가는 느낌이었죠. 그리고 제가 어머니 집으로 이사한 날, 드드가 내 곁으로 왔어요. 적당한 곳, 적당한 때가 되었다는 듯 자연스러웠어요.
--- pp.75~76
빛에 따라 변하는 몽몽의 눈동자는 신비롭다. 낮에 햇빛이 쏟아질 때면 몽몽의 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파이어 빛깔의 방울들이 가득 찬 연못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초승달이 떠오른다. 그러다 지금처럼 어둠이 내려앉으면, 가득 차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허공을 닮은 동그란 검은 우물이 나타난다. 미간에서 코 전체에 먹물을 부어놓은 것 같은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검은 점은 몽몽의 얼굴을 약간 심술궂으면서도 장난기 가득하게 만든다. 연분홍빛 발바닥은 또 얼마나 예쁜지. 앙증맞고 귀여운 발가락은 발톱을 얌전히 덮고 있다.
--- pp.89~90
승리자의 마음이 아니라 반려인의 마음이어야 한다. 아니, 반려묘의 마음에까지 가닿을 수 있어야 한다, 고양이탐정은.
--- p.104
샴고양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식빵 굽는 자세로 드드의 옆에 앉아 있었다. 골골골골. 드드가 골골송을 불렀다. 그러자 공중의 푸른 덩어리들 중 한 무리가 서서히 고양이들 쪽으로 다가갔다. 잠시 간격을 두고 드드가 다시 골골송을 불렀다. 한 무리의 덩어리들 중 예닐곱 개가 고양이들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드드의 골골송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덩어리를 감싼 빛이 번개처럼 황홀해지더니 갑자기 샴고양이가 므엥므엥 하며 경련을 일으켰다. 덩어리 두 개 중 하나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샴고양이의 몸과 가까워졌다.
--- pp.127~128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네요. 고양이는 우주와 가장 닮은 생명체라고요.
혼돈처럼 보이지만 질서정연하다? (.…)
그렇죠.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기도 하고요. 고양이는 우주의 비밀을 수호하는 자이니까요.
--- pp.151~152
제가 뭘 구할 수 있을지, 저는 그저 고양이탐정인데요.
그렇죠. 당신은 고양이탐정이에요. 결국 어떤 비밀을 알게 되는, 그래서 고양이의 영혼과 닮아가게 될 진정한 고양이탐정.
--- p.157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올무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는 고라니가 생각났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발목을 자를 것처럼 올무는 죄어오는데 자신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가엾고 외로운 생물체. 나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당신이 위험하다는 걸 내가 알았으니 이제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할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줄래요. 의심과 간절함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자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 p.214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얌전히 저를 기다리고 있었죠. 저를 보고 눈을 깜빡해요. 안녕, 하는 것처럼. 제가 다가서니까 종아리에 제 몸을 스윽 갖다 대요. 그렇게 한참 동안 스윽스윽 하며 제 주위를 맴돌았어요. 제가 앉으니까 제 무릎 사이로 얼굴을 들이미는데, 그 느낌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안아주는 것 같죠, 따뜻한 생명체가.
--- p.246
나는 고양이탐정.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 귀가시키는 사람. 어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그건 모두 추억이고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끝내려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고양이처럼 그렇게.
--- 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