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연구자로서 자기 지역 무용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전망은 어느덧 지역 무용뿐만 아니라 지역적 특이성, 곧 차이의 사회적 생산마저도 불가능할 수 있다는 불안으로 바뀐 채 엄습해 온다. 그리고 그 불안의 이면에는 주변화 및 그 주변화의 자기 내면화가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중앙에서부터 서열화되고 타자화되는 것이 지역과 지역 무용의 숙명인 것처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소외 현상은 현실에서 보란 듯이 보편으로 강제되고, 이 같은 현상이 지역과 지역 예술가, 지역민에게는 자발적 내면화로 이어져 심지어는 활성화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무용 연구자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자기의 기능과 역할을 탐색하고 바로 세우기보다 여전히 낭만적 부산 무용 서사 구축에 진력하는 듯 보인다. 왜 그럴까?
나는 부산 무용학계(부산 지역 내 무용학계와 부산 지역 무용을 연구하는 학계)와 부산 무용 연구 모두가 다른 학문과의 연계에 폐쇄적·보수적 태도를 견지할 뿐 아니라 부산 무용 연구의 경우에는 다른 학문 영역, 심지어는 무용학계 내부에서도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러한 측면이 부산 무용 연구의 자타적 고립을 강화하고, 무가치를 증명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는 비단 지역 무용 연구에 국한된 사안만은 아닐 것이다. 국내 무용 연구가 처한 상황 또한 부산 무용 연구가 처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도 생각한다.
---「프롤로그」중에서
춤-예술만큼 현실과 동떨어졌다 자신을 착각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지나 포스트자본주의를 논하는 시대, 신자유주의를 지나 인지자본주의를 논하는 시대, 춤과 춤-예술가는 자본이 행사하는 중력과는 무관한 양 자신을 한껏 치장하고선 고고하게 날갯짓하며 땅 위에 서 있다. 문제는 자신을 천상의 존재라 착각한 채 거만한 태도로 자기 턱을 치켜들고 있는 탓에 제 발이 어디에 묶여 있는지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어느 순간부터 춤-예술과 그것의 생산을 이끄는 춤-예술가 기득권층은 자신의 태생을 망각하고선 점점 더 세상과 동떨어진 무엇이 될 수 있다는 듯 기묘한 사물로 자신을 드러낸다.
춤-예술가-실업자가 도처에 넘쳐나고, 그나마 계약직 아니면 일용직 노동자라도 되어 나날이 버티며 겨우겨우 연명해 가는 동료들을 목격하는 와중에, 일명 상부구조로서의 춤-예술과 그 구조에 갇히는 안락을 욕망하는 춤-예술가는, 자신의 생산물뿐 아니라 자신마저 상품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극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펼치는 현란한 몸짓으로 관람객을 유혹하여 그들을 비현실로 이끄는가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지극히 관념적·추상적이기만 한 이론 생산에 박차를 가한다. 심지어 자신을 성역화함과 동시에 고립시키면서 점점 더 무지막지한 사물로 변질한다.
탁월한 존재로 간택 받았기에 부여된 권리라 믿고 행사해 온 그간의 예술 실천들은 과연 무엇의 결과인지, 즉 자신이 자본의 논리에는 어떻게 순응했기에, 또 자본은 뭘 내어주고 뭘 앗아갔기에 발생한 효과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한, 아니 그것에 대해 아예 무지하다고 해도 좋을 현시대 춤-예술과 춤-예술가는 자본이 낸 길을 따라 대중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하지만 춤-예술과 춤-예술가가 자본에 복무하는 이 같은 현실을 단지 그 둘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현시대 춤-예술과 춤-예술가를 둘러싸고 있는 비가시적인 자본의 촘촘한 그물망이 그 둘의 목을 조이면서 그 둘의 생존을 향한 이기적 본능을 깨우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더 그럴싸한 사물로 둔갑하는 데 진력하도록 이끄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춤-예술과 춤-예술가의 자본주의적 사물화는 그러한 비참의 현실이 종용하여 야기한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생존 전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계급화·식민화·파편화·상품화로 치닫는 비참의 현실에 맞서 사람사는 세상을 여는 역능의 잠재태로서의 춤-예술과 춤-예술가의 사회적 기능 및 역할이다. 자본이 산 노동으로서의 예술, 예술가의 살아있는 노동을 죽은 노동으로 만들어 자기 것으로 삼을 때, “저항과 거부”라는 예술의 형이상학적 조건, 즉 “예술의 자기가치화는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의 행위 주체로서의 예술가는 비참의 세계에서 예술을 탈환하여 자신을 넘어 대중에게 예속되도록 하는 문화정치적 실천으로 예술과 자기노동을 살아있는 노동으로 전화한다. 이러한 실천은 한편으로는 현시대 춤-예술과 춤-예술가가 잃어버린, 공동체에서 기원한 춤의 태생적 의미, 즉 ‘이타성’과 공동체를 통해 빚어낸 춤-예술의 고유한 ‘내재성’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춤-예술과 춤-예술가의 출현, 다시 말해 춤과 대중의 접속을 시도하면서 자본주의 이래 전례 없는 새로운 춤-예술, ‘예술-다중’의 생산을 가능케 한다.
---「1. 현시대 춤과 주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