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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일어서라, 청춘아

멘토-일어서라, 청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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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78쪽 | 572g | 148*210*21mm
ISBN13 9791198404725
ISBN10 119840472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李相俊) 교수의 책상 위에는 조각상 하나가 놓여 있다. 사방 10cm 정도 되는 크기인데 흰 모자를 쓰고 붉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고양이가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다리를 꼬고 선 조각이다. 담배를 물고 왼쪽 눈을 윙크하듯 감고 오른손을 턱밑으로 하고 집게손가락을 창날처럼 뻗쳐 반대편을 가리키고 있다. 굉장히 불량한 자세인데 손가락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왼쪽으로 돌려놓으면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고, 오른쪽으로 돌려놓으면 왼쪽을 가리키고 있다. 다리 밑에 조각의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이 [풍광]이다. 한글로 쓰여 있는 글이 아니라 한자로 써 있다. 風光.
때로 학생들이 와서 묻곤 한다.
- 왜 풍광이에요?
--- p.8

고등학교 다닐 때 이상한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일장 연설을 해놓고는 끝에 가서 꼭 이랬다.
- 이상준 학생, 일어나. 일어나면 그가 물었다.
- 알겠는가?
- 예.
- 알긴 뭘 알아.
그러면서 지휘봉으로 머리를 콩 때렸다. 알겠다는데 뭘 알겠느냐는 것이다. 하루는 알면서도,
- 아뇨. 모르겠는데요. 하고 대답했더니 왜 모르겠느냐며 머리를 콩 때렸다.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물었다.
- 선생님, 알겠다는데 왜 때리세요?
- 왜 때리냐고?
- 네.
- 차차 알게 될 거야.
그뿐이었다. 뭘 차차 알게 된다는 것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 p.16

친구들과 모처럼 마련한 자리였다. 처음에는 포장마차에서 시작한 술이 한 잔만 더하자며 2차를 거쳐 들어온 술집이었다. 출판사 하는 친구가 베스트가 하나 나왔다고 한턱내겠다며 어찌나 잡아끄는지 마지못한 듯 들어온 술집이었다. 술상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여자들이 들어왔다.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곁에 앉은 아가씨가 뒤늦게 제 성을 밝혔다. 이상하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 이 교수는 술을 한 잔 들이켜고 슬며시 아가씨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언젠가 심리학 논문을 쓰겠다며 원고를 가져다 보이던 그 여학생이었다. 이제 대학교 3학년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회사 퇴직하고 할 일이 없어 경비를 서고 어머니가 딸의 대학이라도 끝내주기 위해 식당의 불판을 닦으러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녀를 만나고 있었다.
- 아니 선영 양!
--- p.25

한 모금 마시려고 하는데 탁 하더니 그의 발톱이 찻잔 속으로 떨어졌다. 얼마나 발을 씻지 않았든지 발톱이 새까맸다. 이 교수는 차를 마시려고 하다가 멀거니 발톱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내려다보다가 도로 놓았다. 돌중이 눈치를 채고는 찻잔을 건너다보았다.
- 아이고 내 발톱이 거 빠짓네. 와? 디럽나?
- 기가 막혀서.
이 교수는 돌아앉아 버렸다.
--- p.105

- 정말 돌중이 따로 없군. 세상에 너 같은 돌중은 본 적이 없다.
- 그런 소리하지 마라. 부처도 여자 다리 밑에서 나온 사람인기라. 이거 왜 이러나. 그래서 부처는 다리 밑으로 자신과 같은 애새끼 안 빼내려고 안달복달하던 사람이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 것제. 왜냐고? 그게 바로 대승적 경지거든. 아니 고마 말을 바꾸자. 금강승의 경지거든. 그것은 바로 소승적 경지의 반대 개념인 기라. 그 차원에서 한 발짝 앞서나가는 사고의 경지거든. 그렇다면 막연히 소승적 경지에서 탈피해야 된다 라고 하는 구호만 가지고는 그 경지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구만. 왜냐면 그것을 붙들고 있는 고정관념이란 놈이 그만큼 지독하기 때문이거든.
--- p.109

- 교수님, 됐습니다. 됐어요.
고함에 놀라 돌아보았더니 일전에 광고 문안을 소망하는 대기업에 내었던 그 학생이었다.
- 이사회에서 결정까지 났답니다.
- 뭐가?
무슨 소린가 하고 그렇게 물었더니 학생이 환하게 웃었다.
- 전에 보낸 광고 말입니다.
- 광고? 어 그래!
- 통과 되어 이사회까지 올라갔는데 결정이 났답니다. 이미지 광고로 쓰기로.
- 뭐?
학생이 울먹울먹하다가 교수님 하면서 달려와 안겼다.
- 고맙습니다. 교수님.
--- p.117

알바에 시달리는 바람에 성적도 좋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제대로 쉬어보지를 못했다. 겨우 한 학기를 빼고는 모두 알바 하면서 지냈다. 자연히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그래도 1학기에는 학자금을 받았다. 생활비 대출도 신청했다. 2백만 원이나 하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알바를 그만둘 수 없는 건 매달 내야 하는 이자 때문이었다. 1~2학년 때 받은 일반 학자금 대출이 언제나 그녀의 목을 조였다. 막노동하는 아버지. 식당에서 불판을 닦는 어머니. 그나마 대학 졸업한 오빠가 대기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한 달 백만 원씩 보조해 주고 있었다. 부모에게 등록금은 딱 한 번 받았다. 1학년 1학기 입학금과 등록금이 전부였다.

그 후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강남에 있는 ‘토킹바’라는 곳에서도 일했다. 옛날의 이야기꾼과 같은 역할이었다. 술을 마시는 손님들 곁에 앉아 말동무가 되어주는 역할이었다. 술은 마셔도 되고 마시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술이었다. 손님들이 술에 안 취했을 때는 점잖게 굴다가도 술이 들어가면 행동이 거칠어지고 성추행하기가 예사였다.
--- p.143

- 그래서 자외선을 쬐고 도려내었지요. 이것을 보세요.
이번에는 그가 엉덩이를 깠다. 이 교수는 그의 엉덩이를 보다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엉덩이는 엉덩이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가재가 붙었고 시퍼런 멍과 빨간약투성이였다.
- 엉덩이 네 군데에 30분간 자외선을 쬐었어요. 그러고는 그 부위의 살을 도려내었지요. 그러고 나서 얼마를 받았는지 아세요? 한군데 당 4만 원. 합이 12만 원. 두 군데는 조금 도려냈다고 하데요. 그래 2만 원을 깎자더군요. 그러라 했어요. 그 대신 살이 좀 차면 또 오겠다고 했죠. 그러라 하더군요. 다시 가니까 이번에는 허벅지에 하자데요. 허벅지를 내밀었지요. 모두 8만 원. 털 뽑는 기계 광고에도 나갔어요. 털 하나에 얼마인지 아세요? 그거 괜찮더군요. 무려 3십만 원을 받았으니까요. 그래도 불법 저지르는 알바보다야 떳떳하잖아요. 하루 3시간씩 광고 불법 스팸메일을 보내면 쉽게 돈도 벌 수 있긴 해요. 하지만 그래도 이 나라 일류 대학생이 어떻게 불법을 저지를 수 있겠어요.
--- p.172

늘어난 생활비 때문에 돈 더 벌어야 하는 고액 임상시험 알바생들. 그들이 목숨 걸어놓고 임상시험에 임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다. 몰라서 그렇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알든 모르든 결국 정부는 국민의 안전보다 제약사의 배 불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 같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교수는 학교와 교육 당국에 자료를 정리하여 올렸다. 반응이 없었다. 다음 정기회에 다시 상정하기로 하고 자료 조사를 빈틈없이 했지만 역시 반응이 없을 것을 생각하니 자괴감이 일었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어떤 대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것도 없이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그들에 의해 오늘의 젊은이들은 악귀의 손톱 같은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그들에 의해 젊은이들이 사지에 내몰리고 있는데도 그것이 자신들의 책임임을 모른다면 그들이 악귀다.
--- p.177

학생이 또 픽 웃었다.
- 여전히 입에 발린 소리를 하시는군요. 우리도 그 정도는 압니다. 그것을 얻으려면 먼저 작은 마음을 큰마음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이지요? 그래야 사나운 현실과 맞설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학생이 갑자기 사납게 시선을 들었다.
- 당신들의 그 위선기. 그러면서 교수임네 하고, 우리들이 절망하면 잘됐다, 하고, 그 난관을 뚫고 나갈 인품과 지혜를 말씀하시고…. 세상을 똑바로 보실 양반들은 바로 당신들이라는 걸 좀 배우시죠. 우리도 압니다. 소인의 태를 벗고 대인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일어설 수 없다는걸.
그날 이 교수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속에서 울음보가 터져 눈으로 흘렀다.
--- p.214

여진이가 죽었을 때 이 교수는 그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구체적인 죽음이 아니기를 빌었다. 여진이의 모든 삶을 떠받치고 있던 활력소, 그 활력소의 소멸이 아니기를 빌었다. 인간이 살다 보면 때로 집중된 에너지를 낮추기 위해 잠이 들 때가 있다. 잠. 그렇다. 잠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것이 진리가 아니기를, 그렇게 모든 것이 흘러가기를. 신나게 생을 뽐내기 위해 잠시 잠이 든 것이기를. 그 행진이기를.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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