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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로드

유럽로드

: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의 열정과 도전, 사색과 성찰이 어우러진 유럽 8개국 인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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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6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458쪽 | 718g | 142*210*30mm
ISBN13 9788996904229
ISBN10 899690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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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차백성
1951년생으로, 인하공대 토목과를 졸업하고 육군 공병 중위로 군복무를 마쳤다. 1976년 대우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수단, 나이지리아 등 북아프리카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냈고, 2000년 상무이사로 퇴임했다. 자전거 세계 여행의 꿈을 위해 이른 나이에 회사를 떠나 수십 개국을 여행했다. 매 여행마다 콘셉트를 잡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담아낸 ‘테마가 있는 여행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탄탄한 내공으로 인문학적 지식을 촘촘한 그물코처럼 엮은 그의 여행기는 실제 여행보다 더 재미있다. 2008년엔 미국 여행기 『아메리카 로드』로 수많은 라이더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테마 여행 2탄인 일본 여행기 『재팬 로드』 또한 ‘일본 속의 한국을 찾아서’라는 콘셉트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자전거 여행을 ‘우리 삶의 축약판’으로 규정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끊임없이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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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했던 5월의 어느 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울고 계셨다. 불길한 예감에 가슴은 휑하니 뚫리고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으로부터 전해진 비보가 미국 대사관을 통해 집으로 전달된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교수로 계시다가 2년 전에 도미하셨으니, 내 나이 불과 열한 살에 아버지와 영영 이별한 것이다.
세월 속에는 망각이 있다. 이것은 신의 선물이다.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환희도, 땅속으로 가라앉을 듯한 비탄도 흐르는 세월 속에 용해되어 망각의 장으로 사라진다.
어린 나이에 겪은 육친의 죽음은 멋지게 살다가 후회 없이 죽어야겠다는 ‘생사관(生死觀)’을 내게 심어주었다. 우울한 유년기였지만, 삶이란 묵묵히 완수해야만 할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로 세상에 방기(放棄)된 것은 아니니까 돌아갈 때는 내 뜻대로 가고 싶었다. 요즘 말로 well-being과 well-dying의 의미를 일찍 터득한 셈이다.
사람은 언젠가 ‘쓸쓸히 떨어질 한 장의 낙엽’이다. 욕계화택(欲界火宅)에 살며 높은 지위를 누려야만 멋진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조각 구름 같은 인생. 한숨 돌릴 만하면 살아생전 집착하던 재물, 사랑하는 가족, 지극정성 가꾸던 육신마저 모두 두고 떠나야 한다.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시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속절없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아름다운 것들의 덧없음을 깨닫는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바로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흘러간 시간은 형체가 없다. 그 시간 속에 새겨진 기억만 있을 뿐이다.
나는 젊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또 미래라는 신기루에 집착하여 현재를 향유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의 종말을 잘 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얼마 만인가. 이국땅에서 욕심도 내려놓고, 시름도 내려놓고, 무념무상 꿈길을 달리며 언젠가 레테의 강 건너 만날 티나토스를 떠올린다.
환희의 순간에 죽음을 생각한다. 메멘토 모리!
--- p.91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중에서

내 ‘집’으로 돌아와 누우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한 번뿐인 인생을 잘사는 것일까. 대책 없이 늘어난 장수의 시대에.
“좁은 철망 속에서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는 광대한 벌판을 달리는 것으로 인식한다.”
책을 읽다 이 한 줄에 충격을 받아 25년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어릴 적 꿈을 좇아 바로 길을 나섰다. 자전거 한 대 들고 시애틀로 날아가 멕시코 국경까지 페달을 밟았다. 그래도 기갈은 여전했다. 심연에 똬리를 틀었던 역마살이 비온 뒤 죽순처럼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살(煞)은 살로 풀어야 한다. 10여 년을 문전옥답 놔두고 낯선 이국땅에서 찬비를 친구 삼아 풍찬노숙하여 잡은 것이 무엇인가. 상념의 조각들을 모아도 맞출 수 없는 퍼즐처럼 헝클어진다. 가위 눌렸을 때 내지른 고함마냥 무력감이 온몸에 스며든다.
‘호리병 속에 든 새를 병을 깨지 않고’ 창공에 날려야 한다. 시간은 쉼 없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더 현명해지지 않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망 속의 다람쥐’, 이 화두를 붙잡고 앞으로 얼마나 더 달려야 하나……. 밤새 레만 호는 찰랑거렸다.
--- p.243 〈노마드 인생〉 중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천안 독립기념관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독립이란 아프리카의 미개국이 열강의 지배를 받다가 민도가 깨여 스스로 나라를 운영할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 (……) 아일랜드는 영국에게 750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36년의 시간은 너무 짧다. ‘독립’기념관은 반만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칫 매도할 우려가 있다. (……)
이제라도 미망(迷妄)의 시간을 거울 삼아 독립기념관의 명칭을 정립해야 한다. 광복기념관, 항일기념관은 어떨까? 이런 이름이면 기념관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 대대손손 경각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절한 때다.
--- p.293~298 〈750 vs 36〉 중에서

48세의 이준은 강골이었다.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불과 열흘 전 〈만국평화회의보〉 제1면에 ‘해골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을 보면 그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떡 벌어진 건장한 어깨에 꾹 다문 입, 안광은 지배를 철할 정도로 강렬했다. 병사나 분사는 어불성설이다. 꼭 해야만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쉽게 죽지 않는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가 자결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국가의 명운이 걸린 어명을 수행하고 있던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닌가!
당시 일본의 보편적인 테러 방식은 독살이었다. (……) 사안이 아무리 화급해도 세계의 눈이 쏠려 있는 헤이그로 자객을 보낼 만큼 일본은 미련하지 않았다. 호텔 주방장을 매수했거나 몰래 주방에 잠입해 극약을 섞었을 것이란 추정은 개연성이 매우 크다.
화불가단행(禍不可單行,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이라고, 사망 당시 ‘특사단의 대변인’ 이위종은 급한 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 있었고, 이상설은 외국어는 ‘Oh, sad!’ 외에는 한마디도 못했다.
죽음 직전의 짧은 순간에 전 인생의 필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그 순간의 표정이야말로 한 인간의 마지막 결산서이다. 백척간두에 걸린 나라 운명을 걱정하며 어명을 받들지 못한 회한에 잠겨 이준은 마지막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 p.357~358 〈유럽에 하나뿐인 항일운동 기념관〉 중에서

페달을 밟으며 하멜의 고향을 빠져나가는 솔로 바이커의 머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하멜은 조선에서 듣고 본 모두를 기록했을까? 뜨거운 피를 가졌던 젊은 선원들과 조선 여인 간의 로맨스가 표류기 행간에 어른거린다. 하멜은 차마 적을 수 없었던 더 중요한 것 들, 자기만 간직해야 했던 지극히 개인적인 사실들은 없었을까?
상상의 나래가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처럼 이리저리 춤을 춘다. 과연 그는 13년간 수절했을까? 혹시 지구 반대편에 두고 온 강진댁과 올망졸망한 자식을 꿈에 도 그리다 결혼도 미룬 채 마지막 숨을 거둔 것은 아닐까…….
--- p.379 〈두고 온 ‘강진댁’을 그리며〉 중에서

유장한 흐름을 이어가는 라인 강을 보며 떠오르는 한 생각이 있었다. 한강도 라인 강처럼 ‘기적의 어머니’였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가장 오래된 큰 다리가 사람도 걸어서 넘을 수 있다 하여 인도교였다. 레마겐 다리보다 훨씬 크지만 생김은 흡사하다. 강도, 다리도, 서로 비슷한 운명을 타고났다. 하지만 독일군 장교는 폭파에 실패했다고 처형되었고, 한국군 장교는 폭파에 성공했다고 처형되었다.
비운의 군인, 육군 대령 최창식.
그때 실패했더라도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명령 불이행으로. 물밀듯 밀려오는 인민군과 피난민을 칠흑 같은 밤에 어떻게 구별한단 말인가. 숫자 미상의 적 탱크는 이미 의정부 저지선을 뚫고 미아리까지 들어와 교전 중이라는 첩보도 들어왔다.
폭파 명령은 받았고, 얼마나 고뇌했을까. 말없는 한강은 알고도 그저 묵묵히 흘러갈 뿐이다. 10여 년 후 사자(死者) 명예회복은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발파 스위치를 누른 자나, 다리 위에서 목숨을 잃은 자나, 모두의 원혼을 위로하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되새길 만한 기념물이 아직도 없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한강대교를 오가는데…….
--- p.432~433 〈레마겐 다리에서 떠올린 한강 인도교〉 중에서

2층으로 올라가니 브람스가 어린 시절 직접 연주하던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Baumgardten & Heins, Hamburg’란 상표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건반에 살짝 손을 대보았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때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괜찮습니다. 한번 쳐보시죠.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건반만 건드려도 전기가 통했는데 연주까지 해보라니……. 나는 “호의는 고맙지만, 엉터리 연주로 브람스 피아노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 그녀는 내가 피아니스트라 든지 브람스 음악에 조예가 상당한 음악가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호의를 베푼 가브리엘 요아힘 기념관장 할머니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저는 브람스 음악 ‘듣는 것’만 좋아합니다. 〈자장가〉부터 〈헝가리 무곡〉, 〈집시의 노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 〈네 개의 엄숙한 노래〉 등……” 내가 아는 것은 다 말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는 기본이었을 것이다.
내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 질문이었다. 먼저 ‘속물적 관심사’라고 운을 뗀 후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에는 지고지순한 정신적 사랑만 존재했을까요? 편지 중에 사랑을 고백한 문구도 여러 번 있고, 영화 〈클라라〉에서도 역시 암시가 많은데…….”
요아힘 관장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말했다.
“가끔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나도 그 영화를 봤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보시면 안됩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브람스는 낭만파의 중심 인물입니다. 그리고 스승의 아내입니다. 낭만파에게 육욕은 하위의 개념이지요. 물론 인간인 이상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겠지만, 넘어서는 안 될 선은 서로가 지켰다고 확신합니다.”
--- p.437~439 〈“한번 쳐보시죠.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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