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문제에 대해 시축(時軸)과 지도를 폭넓게 살펴보는 일, 다시 말해 다양한 시공간을 유연하게 검토하는 일은 곧 역사를 수행하는(do history) 일이기도 합니다. 혹은 어떤 주제를 역사화하는(historicize) 시도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의 유용성을 ‘우물 안의 개구리’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이라는 ‘지금, 여기’는 우리의 ‘우물’입니다. 이 우물 안에서 동물을 더 잘 사랑하고 보호할 비전을 ‘우물 밖’에서 찾아보자는 것이 이 책의 요지입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을 주로 18~20세기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19세기 독일, 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중국 상하이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물 밖’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동물과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었을까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동물사(animal history)’입니다.
--- p.11
당연한 사랑도 당연한 혐오도 없습니다. 사랑과 혐오를 실천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런던, 파리, 뉴욕의 개 도살자들과 그 동조자들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이, 과거의 누군가에게 ‘혐오’와 ‘인도주의’는 양립 가능할 수도 있었고, ‘사랑’ 안에 ‘죽임’이 포함될 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이라고 완전히 다를까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차이는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의 역사적 조합과 배치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 당위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상(理想)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 p.56
그럼에도 ‘구별 짓기’는 지속되어야 했습니다. 내가 가진 고급 강아지의 실제 족보가 없다면, 다시 말해 유구한 역사성을 보장해 줄 문헌적 근거가 빈약하다면, 다른 증거를 찾아내거나 만들어 내면 될 일입니다. 배회견 때와 비슷하게, 다시 한번 과학이 막중한 책무를 떠맡게 되었습니다. 19세기의 생물학자들과 동물학자들은 특정한 견종이 다른 종에 비해 ‘과학적’으로 왜 더 우월한지 진화론을 빌려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순종견과 잡종견의 사회적 격차도 더욱 커졌습니다. 권위 있는 과학자가 고안한 온갖 견종 계보학과 분류법이 새로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역사적 증거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른바 ‘만들어진 전통’이었습니다.
--- p.64~65
제법 규모가 있는 화물 마차가 도시의 거리를 널리 통행했습니다. 이 마차는 우유 배달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화물 마차보다 더 일반적이었던 것은 옴니버스(omnibus)라고 불린 승합마차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거의 매일 사용하고 있는 버스(bus)라는 말은 이 옴니버스의 줄임말입니다. 옴니버스는 ‘모든 사람을 위한 탈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중세 이래의 전통적인 마차(stagecouch)로부터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 바로 옴니버스였습니다. ‘버스’란 애초에 내연기관이 일반화되기 이전 말의 근력으로 움직이는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 p.76
도심 젖소 공장 내부의 외양간은 1미터도 안 되는 매우 협소한 공간이었습니다. 젖소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커녕 몸을 돌리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불편하게 방치된 젖소들은 금세 스스로 다리를 가누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운동 부족으로 온몸의 근육은 수축되었습니다. 종국에는 스스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고 자주 자신이 배설한 똥오줌 위로 자빠졌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인간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외양간 천장에 도르래를 설치했습니다. 도르래에 연결된 단단한 끈으로 젖소를 꽁꽁 묶은 후 지면 위로 일정 높이만큼 들어 올렸습니다. 사지가 축 처진 상태로 주렁주렁 매달린 젖소의 무기력함은 그 밑에서 신나게 젖을 짜는 인간들의 맹렬함과 대비되었습니다. 인간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젖소가 이미 숨을 거둔 뒤에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우유를 짜내는 경우마저 있었습니다.
--- p.95~97
‘혐오스러운 동물’과 ‘해충’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20세기 시카고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유해 동물’을 열심히 미워하고 돈을 써서 최선을 다해 죽이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좋든 싫든 도시라는 우리의 터전은 동시에 다른 동물들의 생활 공간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쥐보다 모든 면에서 더 ‘우월’한 존재인지 저 개인적으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쥐는 할 수 없고 인간은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아마도 인간과 쥐의 적절한 공존을 그리고 계획하고 실현해 내는 일이 아닐까요?
--- p.114
그러나 하겐베크 동물원이 동물들에게 진정으로 낙원이 되었을까요? 동물원의 동물들이 원치 않게 낯선 환경에 끌려와 갇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철창 대신 해자, 나무 등 더 자연적으로 보이는 가림막들이 존재했을 따름입니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동물들을 원래의 서식지로부터 분리시키고 포획하는 극한의 폭력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20세기를 거치며 이 과정이 식민주의·제국주의의 ‘비정상적인’ 착취로부터 돈을 주고받아 진행되는 ‘정상적인’ 거래로 치환되었다고 해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크지 않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습니다. 동물원에는 시민 교육과 동물 보호 등의 순기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원의 역사 이면에 어른거리는 제국주의의 그림자 또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 p.139~140
우리나라에도 개고기 문화가 존재합니다. 과거 프랑스의 국민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가 개고기 문화를 이유로 한국을 ‘야만국’으로 규정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오늘날 한국인 중에도 개를 먹는 행위에 반감을 갖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고기 문화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과, 개고기 문화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윤리적으로 마음껏 재단하며 ‘계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후자는 인종주의적·식민주의적 발상입니다. 이러한 과오를 저질렀던 것이 비단 바르도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식민지 필리핀의 소수민족을 ‘야만화’했던 미국이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동물 보호와 제국주의는 얼마든지 연동될 수 있었습니다.
---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