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기념 파티』
요즘은 소설 쓰는 사람이나 소설을 읽으니까. 수녕은 쓸쓸한 기분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요즘 붓과 물감으로 미술 하는 사람이 어딨나. 요즘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는 사람이 어딨나. 모두 지난 세기의 유물이야. 이런저런 트집을 잡다가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끼리끼리 모이는 거지.
---「출간기념 파티」중에서
책장을 주워 남자에게 내밀었다. 흠, 하고 책장을 받아 든 남자는 옆에 준비된 풀을 발라 벽에 붙였다. 풀을 바르기 전 잠깐 손을 멈추는 걸 보았다. 양면에 활자가 가득 인쇄된 책장의 어느 면이 뒷면이 되어야 마땅한가, 같은 별것 아니지만 진지한 고민이 느껴졌다.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중에서
나는 나미의 책이 집에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장을 뒤졌다. 책 먼지를 양껏 들이마신 후 나는 나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혐오를 느꼈다.
---「이것은 소설인가」중에서
애나는 시집일 거라 확신했다. 방에 그걸 가져다놓고 잠들기 전에 한 번씩 꺼내 보았다. 언젠가 한글을 알게 되면 읽기도 하고 외우기도 해야지. 월급을 받아 갈피 사이사이 돈을 끼우며, 어쩌면 그리움에 관한 시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애나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아니 그런 것이길 바랐다. 그런데 이건 그런 게 아니다. 이런 걸 책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설탕공장이 있던 자리」중에서
잘못된 약속. 남자는 그 약속 때문에 일이 꼬여갈 때마다 자신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약속이 고약한 우연과 겹칠 때 인생은 우리에게 혹독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걸 그는 알지 못한 것이다.
---「우스운 사랑들」중에서
들어주고 받아주고, 쓸어 담아야 할 것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면서도 저녁마다, 밤마다 쌓이는 외로움이 아픔인지 고통인지 몰라 헤매며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털어놓고 있었다.
---「편지의 시절」중에서
사람들은 느리고 무거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느리고 무거운 시간 속에 파묻혀, 느리고 무겁게 책을 읽었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립 도서관의 이면」중에서
혼자는 태어나도 혼자는 죽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버려진 삶을 구하는 이들은 있어도 버려진 죽음을 맡으려는 이들은 없어 보였다. 가족이란 건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돕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정식 레시피―이별하는 밥」중에서
걸음을 뗄 때마다 물러나는 지평선에 다가가는 심정으로 평을 바라보며, 병은 처음으로 마음이라는 부위의 위치를 감각했다. 숨이 턱 막힐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다.
---「ㅂ의 유실」중에서
저는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당신이 저를 바라보는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해보려는 사람은 반드시 저를 찾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직 저만이 줄 수 있는 충만함이 그리웠을 겁니다. 환영합니다. 당신에게 제가 품고 있는 무수히 많은 키(key)를 내어드리겠습니다. 만족스러운 순간도 남겨드리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이」중에서
시간에 대해 말하자면 무력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수현이 존재했던 시간과 가까워질 수 없다. 그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어떤 가능들에 대해 떠올리는 순간조차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까.
---「시간유영담」중에서
“얼음 세상은 너무 싫어. 따뜻한 세상이 올 거야. 언젠가 언젠가 그날이 올 때까지, 꽁꽁 얼지 말고 버텨요. 우리 모두 그때까지 반드시 버텨요.”
---「도서관의 괴물」중에서
남자는 옹녀와 관계를 가지면 당연히 죽었고, 피부 접촉만 있어도 죽었고, 심지어 옷자락을 스치기만 해도 죽었다. 몇 년 동안 너무 많은 남자가 죽어 반경 120킬로미터 안에 성인 남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변강쇠가 해설」중에서
『판타스틱 북월드』
위성 지도는 고향집 뒤편 부모님의 밭 사진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파종하기 전인 가지런한 밭고랑은 누가 보아도 거대한 원고지였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그 원고지 위에 매년 새로운 이야기를 심고 가꾸셨던 것이다. 거의 평생 동안.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문학 공부를 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는 걸 깨닫자 비로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신들이 바로 나의 큰 바위 얼굴이었다.
--- p.14
몸으로 느리게 작업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책이 내게 무엇이었는지가 명확해졌다. 급하게 속도를 낸 독서는, 아니 독서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급하게 속도를 냈던 것은 내 것이 되지 못한 채 연기처럼 내 손에서 빠져 날아가버렸다. 그건 그저 탐닉이었을 뿐, 사랑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또 이내 깨닫는다. 사랑에 이끌려 잡았던 손을 수십 년 놓지 않을 수 있게 해준 힘이 책에서 나왔다는 것을. 사랑하는 이와 길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걸어갈 힘을 책 읽기에서 얻었다는 것을 말이다.
--- pp.32~33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날, 포로처럼 묶인 『한어대사전』을 카트에 싣고 세관을 나오는데 직원이 수상쩍은 눈초리로 훑어보다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책인데요.”
“똑같은 책을 왜 이렇게 많이 샀어요?”
“네? 똑같다니요?”
“제목이 다 똑같잖아요? 장사하시는 거예요?”
이런 제길~
“거참! 자세히 보세요. 사전인데 한 질이 열세 권이잖아요!”
하긴 뭐 당시 인천항 국제여객선터미널엔 99%가 보따리장수였으니 세관 직원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책 보따리장수는 첨 봤으니 이상하기도 했겠다!
--- pp.50~51
세창서관에 찾아가서 샀던 그 『옥루몽』은 지금도 내 서가에 꽂혀 있다. 이 책에는 어릴 적 연필로 낙서한 흔적이며, 내가 세창서관에서 샀다고 메모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후에도 헌책방에서 귀한 책을 구했던 감격스러운 순간을 수차례 맞이했지만, 역시 『옥루몽』을 구했던 세창서관 안 어둑한 공간에서의 감격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 책은 여전히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때의 어린 학생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옥루몽』을 가슴에 품은 초로의 연구자가 그 책을 바라보고 있다.
--- pp.59~60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 같은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 이상한 메모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책장을 넘길수록 암호 같은 낙서가 사라지고 그의 밑줄도 점점 사라졌다. 뒤로 갈수록 그가 책을 읽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득 궁금해진다. 15년 전 내게 『제2의 성』을 빌려 읽었던 친구는 내가 책의 본문 앞에 길게 적어놓은 글을 읽었을까.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두 차례에 걸쳐 적은 글이 있다. 지금 다시 그 글을 보면 내 생각이 다소 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의 내 생각은 꾸준히 변해왔다. 친구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발 안 읽었길 바랄 뿐이다.
--- p.109
따지고 보면 책은 B의 이야기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 없이 어떻게 글을 쓰겠는가. 따뜻한 책이다. 그래서 교유당의 신정민 대표는 책을 빵이라고 하나보다. 따뜻한 빵이 오늘도 출판사에서 맛있게 구워진다. 그러면 나는 단팥빵 같은 달고 든든한 책을 내기 위해 오늘도 적당히 부풀어오를 것이다.
--- p.133
우리에게는 진실에 대한 감각이 있고, 이 감각은 당연히 우리가 글을 읽을 때도 그것을 다른 언어로 떠올려볼 때도 변함없이 작동한다. 우리가 글을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관련 자료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진실에 대한 감각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긋남도 이 감각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어긋남은 마주침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애초에 우리를 그 마주침으로 밀어넣는 것은 진실에 대한 감각이니 말이다.
--- pp.148~149
돌이켜보니 2015년 도쿄경제대학 방문학자 시절이야말로 그 이후 『화산도』와의 뜨거운 만남을 가능케 한 원체험이지 싶다. 그 이후 지금에 이르는 10년 가까운 세월은 무엇보다 『화산도』를 이해하고 탐구하기 위한 도정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화산도』에 푹 빠져 지냈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에 대한 자발적인 공부야말로 어떤 놀이 이상의 행복한 체험이 아닌가.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계속 『화산도』에 대해 공부하고 『화산도』에 대한 글을 매만지고 싶다. 이야말로 한 권의 책(작품)이 만든 운명이 아니겠는가.
--- p.169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동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조르주 페렉은 어떤 사람이야?”
동생은 소리 내 웃었다.
“여기 없는 사람.”
페렉은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죽었다. 바로 이곳.
“그럼 페렉은 어디 있어?”
동생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페르 라셰즈.”
--- p.183
옛날 옛적 사람들은 사전을 먹기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내 눈으로 직접 그런 부류를 목격한 적은 없지만,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다. 그분께선 오래전 나이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영어 공부 열심히 해라. 예전에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콘사이스 사전』을 하루에 한 장씩 통째로 다 암기하고 그걸 뜯어서 자근자근 씹어 삼키는 친구도 있었다. 영어는 아주 잘했다.” 나는 아주 당황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무슨 허기가 졌기에 사전을 먹어? 그것도 하루에 한 장씩? 어떻게 사전을 모조리 외우고 그걸 꼴딱 삼키기까지 한단 말인가.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 p.185
편집자에서 물러나 삶을 다시 쓰기로 한 이후, 지금까지 난 하루도 책을 읽지 않은 적이 없다. 덕분에 삶의 행복도가 올라갔다. 물론, 때로 책을 만들고 자주 글도 쓴다. 그러나 주로 읽어서, 읽으려고, 읽는 일을 한 차례 더 하려고 그 일을 한다. 이렇게 죽는 날까지 읽으면서 살고 싶다. 그러면 벌레들에게 던져질 인생 위 묘비명에 “읽기 위해 살다” 한 줄이 새겨지지 않을까.
--- p.206
결국 우리는 모든 텍스트가 역사적인 산물이며, 그만큼 텍스트의 속살과 맥락과 구성까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이유를 알게 된다. 윤동주만이 누리고 있는 기억 전승의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집 또한 역사적 변형을 많이 치른 텍스트임을 강조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 역사성의 한복판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세 권이 험난한 역사를 증언하면서 가파르게 놓여 있다.
--- p.274
2003년 겨울을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매일같이 『맹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문을 배우기 위해 들어간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는 1학년 과정의 마무리로 『맹자』의 배송(背誦, 책을 보지 않고 소리 내어 외어 읽음)을 요구했다. 책을 다 외기 위해선 꼼짝없이 방에 틀어박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시험을 통과하기에 급급했던 당시는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기 바빠 정작 맹자가 한 말의 속뜻을 새겨볼 여유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 덕에 『맹자』가 내 생각의 힘줄과 근육 속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되었음은 틀림없다. 번역이건 글쓰기건 연구건 이후에 조금이라도 긴 호흡이 필요한 작업을 위해 발휘했던 내 지적 지구력의 한 자락엔 오래전 전국시대를 살다 간 저 위대한 사상가의 말들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 pp.284~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