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일어난 상당수의 변화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며, 심지어 짜릿하기까지 하다. ‘현대’는 여전히 화려한 매혹, 욕망, 야심 찬 열망의 상태를 암시하는 단어다. ……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대의 도래는 비극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새로운 자유는 무척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다. 집단적 광기 혹은 행성 차원의 절멸에 이렇게 가까이 접근한 적이 없었다. 현대성은 우리의 내면과 외면의 풍경을 사정없이 황폐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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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우리를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막대한 정서적 통행료도 함께 부과했다. 우리를 소외시켰고, 시기심을 키웠으며, 수치심을 증식시켰다. 서로 갈라놓았으며,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진실하지 않은 억지웃음을 짓게 했으며, 성마르고 화가 가득한 사람이 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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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응을 요구하는 교묘하게 설계된 압박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만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우리는 돈을 벌겠다는 열망에 대해서라면 알 만큼 알고, 인생의 대부분을 돈을 버는 데 헌신한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지금껏 제대로 언급된 적 없는 쇼핑이라는 활동을 중심으로 그에 상응하는 야심을 키우는 것이다. 쇼핑은 현대의 사회경제적 현실 전체의 기초가 되는, 소소하다고 할 수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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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생활이 상충하는 것은 우리의 무능이나 의욕 부족 때문이 아니다. 단지 두 가지 거대한 상반되는 주제가 충돌하는 역사의 한 시기에 살고 있을 뿐이다. 가족을 돌보고 양육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일, 효율, 이익 및 경쟁을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한 통찰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서로를 배척한다. 우리는 크나큰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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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재산과 연봉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이 관심의 기반은 ‘물질주의’가 아니다. 그저 특정한 물질적 재화를 소유하는 것이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갈망하는 정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물건이나 직함이 아니다. 참으로 가슴 아프게도,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물질적 수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주목받는’ 느낌과 ‘인기 있는’ 느낌이다.
--- p.185
우리가 이미 겪은 일과 본 것에서 고유의 가치를 끌어내는 법을 안다면 그렇게까지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 끊임없이 움직이려는 우리의 충동은 내심 경험을 온전히 처리할 수 없다는 무능력에 대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미 겪은 일들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p.196
바쁜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과업을 회피한다. 그들은 벌떼처럼 분주하게 활동하지만, 실상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갖는 진짜 감정을 숙고할 시간은 내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가 가는 방향에 대한 조사를 한없이 미루며, 삶의 목적을 이해하는 데 게으르다. 그들의 바쁨은 미묘하지만 강력한 형태의 산만함이며, 사실 일종의 나태함이다.
--- p.204
완벽주의자의 세상에서는 가장 평범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무능하고 굴욕적인 기분이 든다. 결함, 강박, 실수, 불합리함으로 가득 찬 우리는 어느 저주받은 밤에 쉼 없이 자신의 결점을 곱씹으면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유일한 가능성임을 상기하는 것이다. 비틀거리고, 실수하고, 후회하고, 뒤늦게 깨닫는 것이야말로 불완전하게 진화한 대부분의 미욱한 동물들의 고유한 특성임을 되새겨야 한다.
--- p.231
우리는 결코 ‘나’였던 적이 없다. 우주의 일부를 잠시 빌렸을 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의 가치를 지닌 다른 것이 되어갈 것이다.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별의 파편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초신성 사이를 여행해 왔다. 우리는 우주만큼이나 오래된 존재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단계일 뿐이다. 지구가 우리에게 빌려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생명을 다시 움직이게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에 당혹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과학적 현실은 어떤 책이나 기도보다 훨씬 더 위안이 되는 철학적 사고를 고취시킬 수 있다. 우리는 삶을 그렇게 꽉 움켜쥐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결코 온전한 존재가 아니며, 조만간 다시 작은 조각들로 돌아갈 것이다.
--- p.256
우리는 고통받는 현대의 동료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선택할 수 있지만 잘못 선택하는 것, 움직일 수 있지만 움찔하는 것조차 두려운 것, 커다란 가설이 틀렸음을 알지만 대안을 떠올릴 용기나 정신력이 부족한 것,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걸 알지만 그들이 우리를 어찌 생각하는지에 대해 과도한 걱정에 빠지는 것, 이것은 우리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다.
--- p.285
현대만의 특별한 고뇌는 더 나은 미래의 형태가 보인다는 데서, 고통이 필수 불가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데서, 수평선 위 구조선을 발견했지만 구조대가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죽어 있으리라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 온다.
--- p.294
현대는 혼란의 시기일지 모르나, 필연적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은 분명하다. 쳇바퀴처럼 주기적으로 돌고 도는 상황 속에서 계속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고도의 잠재력에 맞추어 보다 섬세한 방식으로 근본적인 어둠을 조금씩 밝히고, 현대의 위험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