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가졌던 재활과 작업치료에 대한 인상은 특별했다. 우리 가족 모두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기댈 수 있었던 곳,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곳, 참아내고 더욱 움직여야 한다고 일으켜 세워주던 곳. 그들의 열정과 손길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던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렇게 세브란스병원에서 초기 재활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양·한방 통합병원에서 재활을 이어갔다. 할머니는 현재의 이론적 지식으로 보았을 때 ‘최소 도움, 안전을 위한 감독’이 필요한 수준의 일상생활 독립을 이루어 마침내 가정으로 복귀하였다. 그 이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작업치료사’를 만나보지 못했다. 심지어 ‘작업치료’라는 단어조차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인구와 인프라가 가장 집중된 도시에 살면서 우연히라도 듣고 볼 수 없던 그들은 당시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같은 시기에 물리치료는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동네의 크고 작은 정형외과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던 직종이었다.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경미한 질환들, 예를 들면 염좌 및 골절이 의심될 때 병원에서 치료를 해주던 친숙한 존재였다. 반면, 작업치료는 당시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다. ‘재활’이라는 단어 자체도 흔히 사용되지 않던 시절이니, 그 안의 전문 분야인 작업치료는 아마도 지금보다 더욱 낮은 인지도를 가지고 그 필요성을 알리던 때였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큰 병에 걸려 대형병원에 가야만 만날 수 있었던 소수 직군이었다.
--- pp.17-18
보건의료인 중에서도 작업치료사는 사람 중심의 보건의료복지를 실현하는 전문직으로 환자와 오랜 시간 동안 대면하며,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통한 치료, 안전 및 비밀보장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직무 자체가 윤리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작업치료사만의 고유한 직업윤리가 요구되며, 임상 현장에서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윤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작업치료 전공자들은 학부 때부터 의료윤리에 대한 인식의 사고를 확장하고, 이에 필요한 보건의료와 사회, 생명, 윤리, 법 등의 지식도 함께 쌓는 노력이 필요하다.
--- p.50
사전적 정의에서 ‘작업치료’는 일상생활활동 훈련, 감각 운동, 소근육 훈련, 인지재활, 삼킴치료, 시·지각치료 영역을 다루며, 물리치료는 신체적, 신경학적 재활 영역을 다룬다. 치료적 중점 측면에서 물리치료사는 주로 환자의 신체기능 및 운동 능력을 회복하고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들의 업무에는 근·골격계 및 신경계 장애, 부상 회복, 만성 통증 관리 등이 포함된다. 또한 환자의 신체적 장애를 평가하고 운동요법, 수기요법, 근력 강화 운동, 통증 관리 기술 등을 통해 환자가 신체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작업치료사는 환자의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의 역할은 환자가 일상생활, 업무 및 여가활동에 필요한 기능을 회복하고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작업치료는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상태를 고려하여 일상생활(예: 개인위생, 가사, 업무 관련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맞춤형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또한 환자가 자신의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술을 가르치고, 적응형 보조 도구와 기술을 사용하여 환자의 자립을 돕는다.
--- pp.77-78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줄곧 익숙해지면 뇌 속에 새로운 신경망이 생성되어 최소한의 에너지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그 새로움이 더 이상 힘겹지 않고 편안해지며, 그 편안함이 유지되면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편안함 속에서도 내가 가야 할 방향과 그곳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의 플랜 B, 플랜 C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허우적대지 않고 멘탈을 잘 잡을 수 있다. 대비 없이 마주하는 불확실한 미래는 재앙과도 같다. 내가 원치 않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은 자신의 성적표와 같다. 그곳은 내게 잘못한 것이 없다. 원래 그런 곳이었고, 그런 곳이 아니라고 내게 말한 적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꿈의 크기와 비례하게 노력하고, 빠르게 준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 pp.122-123
신입 치료사는 모든 면에서 서툰 것이 당연하다. 타인에게 부족한 부분을 지적받는 것에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상대하며 본래 자신의 자리였던 것처럼 능숙하게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직장에 적응하는 시간만큼 직장(시스템, 사람)도 나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가 적응하는 시기에 상처받고 섣불리 지금의 자리를 내려놓는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란다. 새로운 자리에 어울리는 치료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초기 아이템을 장착하는 시기는 최소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학부 시절부터의 오랜 노력으로 지금 이 자리에 당신이 있는 것이다. 이 자리가 바로 당신의 자리라는 뜻이다. 시간과 노력의 힘을 믿고,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래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아직 본 무대에 오르지도 않았다.
--- pp.153-154
치매환자를 위한 작업치료사의 역할은 근무하는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크게 병원(종합병원,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과 센터(중앙, 광역, 치매안심센터)로 나눌 수 있다. 기관에 따라 하는 일과 역할은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병원 작업치료사의 역할부터 살펴보자. 치매가 의심되는 환자들은 병원의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그리고 재활의학과를 방문하게 된다. 치매 환자들이 주로 약물치료를 받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재활치료’에는 생소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최근 치매치료의 방향은 약물치료와 비약물치료를 병행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경도의 치매환자가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재활치료가 주목받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환자들을 위한 재활의학과의 역할은 치매로 발생하는 인지 및 기억력의 장애를 평가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능적 어려움에 대한 적절한 치료 및 교육, 보호자 교육을 제공하여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 p.239
우리나라에 재활의학이 도입되고 그 중요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과거를 상상해보았다. 당시 한국의 재활의학은 현재 엘살바도르처럼 관련 지식과 인프라가 매우 부족했고, 이론과 시스템을 교육할 만한 전 문가도 드물었을 것이다. 선진 의료 시스템을 갖춘 나라의 공조를 받아 차근차근 발전의 초석을 다졌던 그때의 한국처럼, 엘살바도르에 재활 의학이 뿌리내리는 이 현장에 내가 함께하고 기여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는 것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나의 조국과 나의 직업인 작업치료사가 자랑스럽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 p.263
우린 어떤 성장에 있어 꾸준함의 힘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도 결과가 만들어지기 전에 중단했거나, 자신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점검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10대의 꾸준한 학업은 20대 때 내세울 만한 학벌로 일정 부분 보상받는다. 만족스럽지 못한 20대를 보냈더라도 그 시절의 꾸준한 노력의 결과는 역시 30대 이후에야 나타난다. 보통 우리는 짧은 노력으로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중단하거나 노선을 바꾸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세상의 대부분 가치 있는 성과는 임계점을 넘어서야 비로소 결과가 보이기 시작한다. 즉, 누적된 꾸준한 노력이 100%까지 쌓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인의 공간에는 중간, 기말고사가 없기에 누적된 자신의 점수가 몇 점인지는 주어진 경험을 통해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꾸준한 노력을 쌓아 올려 그 지점을 넘어설 때, 비로소 느끼지 못했던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 pp.275-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