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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 아키히토와 헤이세이 일본사

: 냉전 후 30년, ‘상징’천황이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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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494g | 153*224*18mm
ISBN13 9788964622018
ISBN10 89646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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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과 천황제 문제는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 특히 한국 시민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 이 책에서도, 취임한 아키히토 천황이 가장 먼저 직면했던 문제는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의 만찬에서 ‘말씀’에 어느 정도의 ‘사죄’ 문구를 담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대국으로서 아시아 진출을 노리는 일본 정부와 외무성은 그 앞에 놓인 ‘가시’인 사죄 문제를 끝내고 싶다는 한국 측의 요구에 ‘배려’를 담은 문구를 넣고 천황도 동의했지만, 외무성안이 알려지자 자민당 내에서는 “언제까지 무릎을 꿇어야 하느냐”는 반발이 등장했습니다.
--- p.5

이 책은 1989년 1월 쇼와 천황의 서거 후 천황에 취임한 아키히토가 2019년에 ‘퇴위’하고 나루히토로 교체되기까지의 30년을, 처음에는 “여러분과 함께 일본국헌법을 지키고 이에 따라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하며 등장한 아키히토가 점차 군주로서의 자신감을 키워가며 헌법의 이념으로부터 이탈해가는 역사로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것입니다. 아키히토 천황에 대해서는 재임 중일 때부터 수많은 책이 출판되었지만, 그 대부분이 아키히토의 업적을 ‘헤이세이류’라며 예찬하는 내용이었으므로, 이 책은 그 점에서는 드문 책입니다.
--- p.6

이러한 방향을 추구하는 새 천황의 등장은 대국화의 장애물 극복으로 머리가 아팠던 지배층 주류에게 둘도 없는 행운으로 비쳤다. 첫째, 자위대 파병, 대국화를 전전 일본으로의 복고와 연결하여 경계하는 시민들의 분위기에 대해 ‘헌법’을 강조하는 아키히토 천황은 그 경계심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둘째, 대외적으로 일본이 지향하는 대국화 노선의 용인을 압박하는 ‘특사’로서, 직접적으로 전쟁을 알지 못하는, 게다가 전쟁에 집착하면서 그러한 국가들에 대한 방문에도 의욕을 보이는 듯한 아키히토 천황은 매우 적절한 인물로 보였다. 이리하여 쇼와 천황에게는 기대할 수 없었던 커다란 정치적 가치가 아키히토 천황에게 기대되었다.
--- p.32

하지만 궁내청은 ‘애당초론(論)’을 내세워 반대했다. 애당초, 천황은 헌법에 따라 ‘국정에 관한 권능’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한 사죄를 하는 것은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 부문-내각의 책임이고, 천황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 의례적인 발언밖에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포드와 덩샤오핑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말씀’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에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1994년 9월 6일 궁중에서 열린 만찬회 자리에서 천황의 ‘말씀’은 결국 “이러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 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고,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색다른 일이 발생했다. 다음날 7일 수상이 주최하는 환영오찬회에서 나카소네 수상이 전날의 ‘말씀’에 보족 발언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귀국 및 귀국 국민에게 다대한 고난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정부와 국민이 이 잘못에 대해 깊은 유감의 염을 가짐과 동시에 장래에 이런 일이 없도록 굳게 결의하고 있음을 표명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확인해둘 것은 천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부와 외무성의 의도에 대해 궁내청이 헌법상의 입장을 견지하여 저항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 헌법상 지극히 정상적으로, 천황의 발언은 종래 관행의 선에 그치고, 본래 국민을 대표하는 수상이 더 진일보한 사죄의 의사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때 궁내청이 취한 태도는 훗날 천황 아키히토 시대의 궁내청이 취한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 p.42

‘황실 때리기’에서 천황 비판의 초점은 ‘열린 황실’론으로, 1989년에 품기 시작한 의구심이 이제 철저한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라고 그들은 말을 잇는다. 혈통에 의해 그 지위에 오르는 ”천황은 태어날 때부터 황족이며, 국민 일반과 신분적으로 구별된다. 즉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이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지적대로이다. 그들은, 그렇기에 “천황은 그러한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헌법 같은 것은 결국 일시적인 약속”, 민주주의도 “당분간은 유용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런 것을 신경 쓰지 말고 역사의 연속성을 지켜가는 것이야말로 천황의 역할이다, 라고 덧붙이고 있다
--- p.68~69

천황 아키히토가 ‘진지’하게 헌법이 지향하는 천황상에서 멀어져간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아키히토가 생각하는 ‘상징’이란 무엇인지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키히토 본인은 퇴위를 시사했던 2016년 8월 8일 ‘말씀’에서도 “즉위 이래 저는 국사행위를 행함과 동시에 일본국헌법 아래에서 상징이라 규정된 천황의 바람직한 존재 방식을 줄곧 모색하면서 지내왔습니다”라고 단언하고 있듯이, ‘상징’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계속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아키히토가 생각하는 ‘상징’상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한편으로는 일본국헌법 제1조에 규정된 것이라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오랫동안 이어진 천황제의 전통적 존재 방식에 다름 아니라는 점이 두 기둥으로 병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 p.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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