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수백의 말, 비웃음, 조롱, 하나의 생만 살아온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실타래처럼 많은 기억, 바닥까지 짓밟힌 인간성, 빼앗긴 존엄, 처참한 모멸, 쏟아지는 멸시.
“닥쳐!”
마호라가가 일갈했다.
“여기 네가 멸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수호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사람은 모두 태초부터 살아왔어. 태초부터 생명을 이어 왔어! 수천 수백 번을 살고, 죽고, 다시 태어났어! 모두가 역사의 증인이었고, 주인이었고, 신화였고, 전설이었어! 그런데 네가 감히 그 위대한 존엄을 무시하고, 비웃고, 폄하하는 것으로 네 몸집을 불리고, 먹이로 삼았어! 너는, 내가!”
마호라가는 마음에 쏟아지는 모든 모멸을 태워 없애려는 듯 소리를 높였다.
“내가 반드시 없애버리고 말겠어!”
눈에 눈물이 맺혔다. 붉은 눈이 타듯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가 지금 죽는다 해도! 다음 생에라도! 그다음이라도!”
--- pp.137~138 「사바삼사라 서 1」중에서
“사소한 일로 자기가 맞아도 싸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너는 똑같이 사소한 일로 남을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
“네가 사소한 일로 자신을 쓰레기라고 믿게 되는 순간, 너는 사소한 일로 남을 쓰레기라고 부르게 될 거야.”
“…….”
“네가 사소한 일로 모욕당하고 조롱당하고 멸시당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는 똑같이 사소한 일로 남을 조롱하게 될 거야. 그게 두억시니가 세를 넓히는 방법이야. 우리를 도울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서 마음에서 그 생각을 치워.”
수호가 얼떨떨해 있는 사이 진은 생각을 뽑아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마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그거 네 생각 아니야. 두억시니가 하는 말이야. 아직 정신 오염의 여파가 남아 있어서 그래. 괜찮아질 거야.”
--- pp.149~150 「사바삼사라 서 1」중에서
“자기 상상을 과신하지 마. 현실에서 할 수 없으면 상상도 막혀. 상상도 지식과 훈련에서 나오는 거야.”
--- p.240 「사바삼사라 서 1」중에서
“이번 생의 너에게 너를 한정 짓지 마.”
“나에게 한정 짓지 말라고……?”
“너는 과거에 네가 아닌 무엇이었어. 지금과 달랐을 때가 있었어. 무한한 힘을 갖고, 지금 네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했을 때도 있었지.”
“…….”
“네 유전자는 태고의 바다에서부터 온 거야. 너는 모든 진화를 거치고 모든 생명을 다 거쳤어. 지구의 역사와 함께해왔어. 태고의 영혼이 모두 네 몸에 남아 있어. 그때부터 살아온 전체가 다 너야. 자신을 함부로 하찮게 여기지 마.”
아난타는 턱으로 수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호는 문득 아난타가 진보다 제멋대로고 다혈질일지언정 진의 마음의 일부라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말, 비슷한 태도.
「세상에 하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 p.257 「사바삼사라 서 1」중에서
“분열은 민주주의가 지켜온 가치야, 금강. 민주주의가 우리가 선택한 종착지고. 통합이야말로 마구니의 속임수다. 마구니는 통합이라는 속임수로 전체주의를 강요한다.”
마호라가가 답했다.
“가장 거대한 악이 통합이라는 달콤한 언어로 포장되어 왔다. 사람의 마음은 같을 수 없고, 같게 만들기 위한 거의 모든 것이 끔찍한 폭력이야.”
--- p.468 「사바삼사라 서 1」중에서
“누가 내게 다리가 필요하다고 말하거나 내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건 자신들의 형상에 나를 끼워 맞추려 함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의 형상에도 내 모습을 끼워 맞출 필요가 없다. 나는 다리가 하나인 채로 온전하다.”
“…….”
“나는 나로서 온전하다.”
마호라가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귀에 울렸다.
“너는 검을 만드는 것이 아니야. 그 검이 너다. 네 무기는 바로 너다.”
마호라가가 수호의 어깨를 뜨겁게 쥐었다.
“그건 처음부터 너였다.”
--- p.484 「사바삼사라 서 1」중에서
“만약 내가 정의라면 나와 다른 사람은 불의가 된다. 세상에 그만한 불의가 어디 있을까.”
“……?!”
“만약 내가 옳다면 나와 다른 사람은 틀린 것이 된다. 세상에 그만큼 틀린 일이 어디 있을까.”
“……뭐?”
“내 옳음을 확신하는 만큼 타인의 틀림을 확신하게 되니, 모든 훌륭한 사람이 망가질 때가 그때더라.”
수호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싸워?”
“싸우는 데에 뭐가 그리 많이 필요해. 살아 있으면 싸우게 돼.”
--- p.718 「사바삼사라 서 1」중에서
“왜냐하면 네가 정의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타인을 불의라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정의가 된다.”
--- p.719 「사바삼사라 서 1」중에서
“우리의 눈은 세상을 다 보지만 오직 자기 자신만은 볼 수 없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맹점이다.”
“…….”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은 보이지 않아.”
“…….”
“수호, 그러니 만약 네가 네 마음에서 어둠을 보았다면,”
마호라가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 어둠은 네가 아니다.”
“…….”
수호는 입을 다물고 마호라가의 붉은 눈을 보았다.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 태양에 물든 노을처럼, 새빨갛게 빛을 발한다. 격렬하게 타는 마음의 불길이 눈동자라는 이름의 창을 비춰주고 있는 듯하다.
눈부시리만치 아름답다.
이처럼 찬연하게 아름다운 것을 이전에 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 p.253 「사바삼사라 서 2」중에서
“수호, 너는 결과가 아니야.”
‘아아, 또 이해할 수 없는 소리.’
“사람은 제 삶을 인과로 엮으려고 해. 안 그러면 이 엉망진창인 삶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몰라, 그런 것…….’
“내가 무엇 때문에 이 모양이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어서, 계속, 계속 이유를 찾는다.”
‘무슨 소리야……?’
“아마도 누구에게 미움받아서, 괴롭힘당해서, 누가 나한테 나쁜 짓을 해서, 누가 내 것을 빼앗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 삶에는 인과도 없고 맥락도 없어. 우리의 존재는 우연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인과가 있다면 네가 시작이다. 지금 네가 네 앞날의 이유며, 원인이며, 처음이다.”
마호라가의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네가 처음이다, 수호. 부디…… 끊어내라.”
--- pp.627~628 「사바삼사라 서 2」중에서
죽음을 동경하는 사람은 실은 정말로 죽음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이 온전히 자기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 전체를 자기 것으로 하고, 그 삶을 전부 통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저변에는 다른 소망이 있다. 그 반대의 소망, 문득 수호의 마음속에 영상이 떠올랐다.
--- pp.763~764 「사바삼사라 서 2」중에서
고백하자면 데뷔 후 가장 큰 만족감으로 집필한 소설입니다. 저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훨씬 더 서브컬처에 기반을 둔 사람이지요. 출간 소설은 제 기준에서는 더 문예스럽다고 할까. 간혹 상상이 떠올라도 출간 소설에 맞지 않다 싶어 취향을 자제하기도 해요.
이 소설은 제가 너무나 좋아하지만 그동안 쓰지 못했던 것들을 아낌없이 들이부었어요. 마음껏, 후련하도록 썼고, 좋아하는 인물상을 원 없이 만들었고, 계획한 전개를 흔들림 없이 끌고 가서 가장 만족스러운 결말로 끝냈어요. 쓰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 pp.50~51 「스페셜 가이드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