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이는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고 실제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반대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중이다. 누구는 인간의 범죄에 시달릴 수도 있으며, 반대로 누구는 범죄를 일으키는 도중이기도 하다. 죄의 속성은 인간이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것일 수도 있으며, 인간을 제외한 자연과 모든 유무형의 사물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도 죽음을 이루는 것도 죄이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기물파손이나 상해죄가 어떤 누구와 무엇을 대상으로 했는가에 따라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죄의 처벌 수위가 달라진다는 점과 어떤 자세로 범죄를 보는가에 따라서 이해의 관계가 분명해지기도 하며 불명확해지기도 한다. 유무형의 범죄가 일어나고 그것을 막으려 하고 그러는 와중에 피해가 생기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기며 죄가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위가 만연한 것은 전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화라는 이름하에서 해결되어야 할 부분들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때로는 사회적, 종교적인 이유로 전쟁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어떻게 하면 평화를 불러보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를 이어줄까.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은 ‘내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연결되어 있다.
--- p.50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고 계속해서 육체와 정신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도 모두 내놓아야지만 가능한 것은 아닐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너에게 짐이 되지 않고 하나의 날개가 되어 황홀하게 비상하게 할 수 있는 힘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만남을 그만두고 마음을 남겨 놓고 몸은 떠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한 영혼이 다른 한 영혼을 소유하는 행위는 그만두어야 한다. 소유는 없다. 그것은 착각이다. 인간의 정신은 고유하게 한 인간의 것이며 한 인간의 영혼은 오로지 그 사람만의 영혼이다. 그 순결한 영혼과 정신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인간은 보다 나은 생각과 삶을 이루어야 한다. 물질적인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인 것이 중요하다. 물질이 정신을 소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신은 물질을 소유할 근거가 된다.
인간을 사랑하는 행위에는 육체적인 요소가 빠질 수 없다. 온몸과 온 정신으로 성행위를 하는 것은 인간 행복의 근원일 수도 있다. 육체적인 만족감이 없이 정신적인 만족으로 사랑의 감정을 대신하기란 보통으로서는 힘이 든다. 그러나 정신적인 만족감이 육체의 욕망을 이겨내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정신성은 무시하기 힘들다. 이왕이면 육체와 정신이 모두 충족되는 사랑을 하면 좋겠지만 그러기란 쉽지 않다. 육체는 육체를 갈구하고, 정신은 정신을 갈구하기도 한다. 그 어떤 사랑이라고 해도 자신이 선택한 사랑 앞에서는 당당해지길 바란다. 굴욕 없이 일어서는 굳셈도 사랑에는 필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 p.100
인간은 사상의 자유를 가진다. 민주주의를 원하든, 공산주의를 원하든, 사회주의를 원하든 인간은 사상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자본을 앞세운 세력권 안에 살지만, 그 생각의 자유는 공부를 위해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당연하게 억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 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심지어 죄를 만들어 국민의 정신성을 어지럽힌다. 이러한 법은 법이 아니다. 악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국가 보안법은 사라질, 사라져야만 할 법이다. 지금 이 시대에 지하철을 타면 언제나 나오는 국정원 111번 전화번호는 결코 유익하지 않다. 안내원의 권위적인 대응은 신고의 의미를 부정하게 한다. 국가정보원은 과거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들을 해왔다. 사상의 자유가 아닌 사상의 빨갱이를 만들어 고문하고 억압했다. 누가 견디겠는가?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은 국가 보안법에서 시작된다. 물론 휴전 상태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사이를 교란시키는 상황은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탄압의 근원이 될 소지가 있는 국가 보안법을 가지고 국민의 사상을 억제한다면 이미 진 전쟁이다.
보다 철저하게 냉철하게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알 권리를 찾아주고, 실제로 배우게 할 터를 만들어 주면 미래는 밝아진다. 숨기고 억압할 계제는 아니다. 믿어라 국가는 결코 개인을 살리지 못한다. 김선일 씨를 기억하라. 그렇게 좋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김선일 씨를 살리지는 못했다.
--- p.151
그녀들의 표정에는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낯선 사람을 따라서 이동을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들이 보였다. 전 세계의 섹스 산업에서 우위를 지키는 도쿄의 위상을 미리 본 것은 아닐까 싶다. 한국에 있을 때 부산역에서 댄서를 하던 러시아인 마리아(나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과 제법 친분이 있었다. 콜롬비아 태생의 마리아, 브라질 태생의 마리아 등등.)라는 여성이 겹쳐 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학을 다녔고, 돈을 벌러 한국에 입국했다는 그녀…….
친구인 호세가 울산대 교수를 하던 시절 교직원용 아파트에 놀러 갔을 때, 전화가 와서 곧 고향으로 떠나는데 만날 수 있냐는 뉘앙스로 물어보던 마리아에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나는 만날 수 없다고 했던 것이 가슴에 미안함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회상을 잠시 하다가 나는 시부야로 가는 전철을 타고 요코하마에 산다는 모리모토라는 일본인 부부와 대화를 나누면서 일본인의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한반도의 역사에 크나큰 획을 그었던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 당시 나로서는 막연하게만 느껴졌었고 좀 더 자세하게 일본인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그들의 삶에 뛰어 들어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쨌든 중국 여행을 했었다는 모리모토상은 나에게 스카프를 선물로 주었고, 그것을 받아든 나는 그들의 주소를 물어보았고, 순수히 부부는 나에게 그들의 사는 곳을 적어 주었다.
--- p.200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정신을 차리고 인간을 일하는 기계로 볼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자신들과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의 이윤 정신은 자본주의의 무서운 습관이다. 또한 아이들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공부에만 매달리게 할 것이 아니라 인류애가 무엇인지, 인간이라는 것이 왜 인간인지, 신이 왜 존재하는지, 기도를 드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대화해야 한다. 더불어서 인권 교육과 인간이 모여 산다는 것이 왜 필요한지, 인류 사랑에 대한 교육을 학교에서 시행해야 한다. 아이들을 돈으로 보는 교육 기관들이 사라질 수 있도록 어른들의 정신세계가 바뀌어야지 그렇지 않고 혼자만 잘살면 된다는 현재의 교육으로서는 미래는 없다.
--- p.250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어디에 두시고요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냥 교회에 성금을 잘 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교회당은 규모가 꽤 컸었고 낮은 자를 위한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직접 교회당 안에 들어가서
십자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평화를 기원했다
인간들의 평화
그러자 경비원이 와서 나를 끌어 내렸다
목회자만이 설 수 있는 자리에서 기도를 한 것이다
눈물을 닦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모든 것들이 침묵하고 있었고 바람도 잠잠했다
나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때 하늘이 환해지더니 십자가가 빛을 내며 떠 있고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서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주님
무엇을 보시나이까
너의 마음을 보고 있다
까맣게 타들어 가던 가슴이 뻥 뚫리면서 갑자기 공기가 살아났다
주마등처럼 과거가 흘러갔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모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인간인 그대여
--- p.300
태양을 걷는 소년
밤의 이슬이 흐르고 난 후 태양이 뜨지요
활활 타는 붉은 입술의 그대
나는 태양을 걷는 소년이에요
뜨거운 햇볕이 드는 바닷가에서 땀을 흘리며
바닷물에 풍덩 빠지지요
나는 태양을 걷는 소년이에요
어두운 생각 그늘진 정신을 모두 햇살에 말리는
나는 태양을 걷는 소년이에요
열기가 가득한 거리에서 사람들의
열정이 더욱 빛나는 오전에도
햇살은 저마다의 이마를 비추지요
나는 태양을 걷는 소년이에요
왼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빛 조각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나는 태양을 걷는 소년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맑게 떠오르는 오후
나는 태양을 걷는 소년이에요.
--- p.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