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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는 어디에서 오는가

: 도덕을 상실한 시대의 톨스토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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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00g | 140*205*20mm
ISBN13 9791171712892
ISBN10 117171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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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나쁜 것인가. 안나와 브론스키 커플이 불륜을 저지른 일이 나쁜 것인가, 아니면 그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한 일이 나쁜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은 더 지저분한 일을 밥 먹듯이 저지르면서 불륜 남녀를 심판하는 사교계가 나쁜 것인가.
도덕가 톨스토이는 불륜 커플도 나쁘고 사교계도 나쁘다고 대답한다. 사교계의 위선은 추악하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역시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그들은 허위에 찬 사회와 맞서 싸우는 비련의 주인공들이 아니다. 그들은 나쁜 사회에서 ‘나쁜 사랑’을 저지르다가 고약한 파멸을 맞이할 뿐이다.
--- 「나쁜 사랑」 중에서

거짓된 말의 대표적인 예가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의 소설에는 진실하지 못한 사랑을 하는 연인들만이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이 지껄여댄다. 앞에서 읽었던 브론스키의 애정 고백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진부하게 들리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가정의 행복』의 주인공은 연인끼리 주고받는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 노골적인 혐오감을 내보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는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기만하고 있는 것인데, 그건 더욱 악질이라 볼 수 있지요.”
--- 「좋은 결혼」 중에서

톨스토이는 궁극적으로 육식의 중단을 득도의 차원으로 연장시킨다. 육식이 정욕을 자극한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육식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수난과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것은 인간이 자기 내부에 있는 최고로 거룩한 정신적 능력, 즉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불필요하게 억눌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내부에는 살생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박혀 있는데 고기를 먹기 위해 그것을 억눌러야 하는 것은 지극한 모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육식은 ‘자연에 거슬리는 행동’인 것이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인간이 절식을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 즉 절식의 ‘첫걸음’은 육식의 중단이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한다. 이 점을 독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톨스토이는 「첫걸음」에 도축장 체험을 집어넣었다. 도축 장면을 묘사한 이 부분은 너무 실감 나게 끔찍하다. 어떤 사람은 이 부분에서 중년의 위기 이후 억눌려 있던 대문호의 천재적인 문체가 일시에 되살아났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왜 스스로를 마취시킬까」도 음주의 해악을 추적한다. 이 에세이에서 톨스토이는 술, 담배, 마약이 전쟁과 전염병보다 더 많은 인명을 파괴했다고 전제하면서 ‘도대체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실까’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고는 이 문제에 대한 술꾼들의 예상 답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왜라니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모두들 마시잖아요. 즐겁자고 마시는 거죠.” 그러나 톨스토이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오로지 “양심을 뒤덮기 위해서”라고 단언한다. 마음속에 있는 양심을 눈멀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마취 물질을 이용해 뇌를 독살한다는 것이다. “아편과 해시시와 포도주와 담배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취향이나 쾌락이나 방탕이나 유쾌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양심의 경고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다.”
--- 「육식과 채식」 중에서

톨스토이는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사색보다 행동을 중시했다. 그는 햄릿처럼 생각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저술은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저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쓴 것이었다. 그는 철학이나 형이상학이나 종교가 아닌 실생활의 영역을 위해 글을 썼다. 그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어떻게 제대로 살 것인가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야말로 실용의 원조다.
--- 「도시와 시골」 중에서

결국 ‘톨스토이교’, 혹은 톨스토이즘의 본질은 죽음의 자각과 맞물린다. 톨스토이가 중년의 위기 이후 도덕, 도덕 하며 큰 소리로 외치게 된 것은 모두 죽음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죽음 앞에서 대문호는 완전한 허무를 체험했다. 그러나 그는 그 허무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했다. 살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 이 두 가지 모두를 그는 도덕에서 찾아냈다. 그의 도덕은 지극히 실용적인 정신과 여러 종교에 대한 학습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육체에 대한 혐오감이 합쳐져 나온 결과물이었다
--- 「죽음을 기억하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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