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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억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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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34g | 116*186*15mm
ISBN13 9788932043005
ISBN10 89320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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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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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었지만 명호가 무얼 배신한 거냐고 묻는다면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뚜렷하지는 않아도 명호에게 의탁했던 무언가를 돌려받고 싶었다. 수가 준 적 없으나 명호가 가져가버렸고 명호가 가져가지 않았음에도 수가 건네준 적 있는 그걸.
--- p.28~29 「기찻길을 달리는 자전거」중에서

시간이 흐른 뒤 많은 이들이 말했다. 동서에 대한 원한이 아무리 깊다 해도 출상하는 날 꼭 그런 식으로 악담을 해야 성이 풀리겠냐고. 참으로 욕쟁이 할머니답다고. 그러나 수는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는 이들은 미워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믿었다.
--- p.49 「기찻길을 달리는 자전거」중에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준은 그날을 잊지 못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날. 다시 태어났다기보다 방금 태어난 것처럼 혼란스럽고, 그냥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깊은 슬픔이 무엇인지 알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던 날. 내 것인데도 내 것인 줄 몰랐던 감정이 내 것임을 알게 된 날이었다. 적어도 그때부터……
--- p.69 「어느 날 대숲에서」중에서

아버지는 겁쟁이다. 연탄공장 사장에겐 굽신거리고 어머니에게만 고함을 치니까. 그것도 술기운을 빌려야만 하니까. 술에 기대고 싶었다면 어머니가 아니라 연탄공장 사장에게 대들어야지. 그러지는 못하고 어머니만 윽박지르니까. 기타도 못 치고 노래도 못 부르니까. 어머니에게 다정하지 않고 예의 바르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아버지라니. 아버지라니.
--- p.83 「어느 날 대숲에서」중에서

영이 몰랐던 적은 없었다.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인정하기를 유예한 거였다. 삶은 신비로 가득하므로 섣부르게 인정했다가 후회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굴지 않고 삶의 신비가 다가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허락하기. 삶이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 슬픔을 미루고 미룰 뿐. 삶은 미루어둔 슬픔이었다, 영에게는.
--- pp.150~151 「가난한 이야기」중에서

무슨 말이든 해봐. 밤이 새도록 해가 떴다가 다시 지도록 바람이 불었다가 그치도록 계절이 바뀌었다가 되돌아오도록 언제까지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대도 이대로 곁에 머물면서 네가 들려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테니 무슨 말이든 해주렴. 그래 그렇게……
--- pp.194~195 「소가 오지 않는 저녁」중에서

손은 눈물을 쥐기 좋게 생겼다. 눈물이 차오른 눈을 감고 두 손바닥으로 지그시 눈두덩이를 누르면 손바닥에 눈물이 고이고 그 손바닥을 떼면 손금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요한이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희는 깨달았다. 손바닥이 왜 그런 모양인지를.
--- p.228 「손금」중에서

수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였다. 여닝도 그리움으로 읽을 수 있지만 진짜 그리움은 명사가 아니라는 걸. 그리움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고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감정이어서 언제나 동사라는 걸. 그러기에 그리움에 가장 가까운 영어 단어는 동사인 미스miss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워하는 건 잃어버린 것이고 아직은 아니라 해도 결국 잃게 될 것을 가리키므로.
--- p.229 「손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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