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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큰글자도서)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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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210*294*13mm
ISBN13 9791172131227
ISBN10 117213122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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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렇게 두 눈으로 글을 읽고 있다. 그것은 진짜로 일어나는 행위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당신의 머릿속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상상력은 과연 진짜일까? 당신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은 진짜다. 꿈속에서도 비명을 지르고 동시에 침대에서도 비명을 지른다면 그것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어디쯤 될까? 픽션과 논픽션은 어떻게 정확하게 나뉠 수 있을까? 지금 당신이 꾸는 악몽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 p.10

눈이 다시 스르르 감긴다. 나는 어디로 가는 중이었더라? 행선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어느 역에서 지하철을 탔지? 그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잠에서 금방 깨어난 탓일지도 몰라. 나는 머리를 흔든다. 뭔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지금쯤 모든 기억이 돌아와야 하는데……. 잠을 깨우던 덜컹거리는 소음은 더 이상 내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감은 눈꺼풀 위로 휙휙하며 지나가는 오후의 햇살이 느껴질 뿐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눈을 더 세게 감는다. 내가 왜 지하철에 앉아 있는지 알아내려고 힘을 써본다. 어둠 속에서 단서를 끄집어내고 싶지만 더욱 깊은 어둠뿐이다.
--- p.16

당신이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잠시, 라고 생각할 때 시간은 멈춰주지 않는다. 그 잠시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뀔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일 뿐이다.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막연한 미래를 기대하며 잠시 다른 일을 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하지만 당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당신은 잠깐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그런 사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당신에겐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는다. 버스는 떠났다. 기차도 택시도 오토바이도 모두 떠났다. 인생에 시간표 따위는 없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멈추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 pp.50~51

어떻게 한 사람의 말만 믿고 인생을 바꾸게 되었냐고? 당신은 대학교 전공을 어떻게 선택했는가? 직장은 어떻게 선택했는가? 아내는 어떻게 만났나? 인생은 생각보다 사소한 기회로 뒤바뀐다. 당신은 그것이 운명이었다고 믿겠지만, 단지 우연일 뿐이다. 당신의 인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
--- pp.106~107

“사실, 모든 것을 새롭게 출발하려고도 해봤지만 도무지 안 돼. 몸만 살짝 빠져나가서 그의 집에서 살고 싶은 생각도 하는데, 절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아. 나는 악몽 속을 거니는 것처럼 점점 엷어져가는데 도무지 안 돼. 꿈을 꾸다 아침에 눈을 뜰 때엔 새로운 집에서 깨어나고 싶은데 그게 안 돼. 당장 짐을 싸서 우리나라로 돌아갈 수도 없어. 과연 내가 새로 출발할 수 있을까? 반대로 당신은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까? 내가 이곳에서 진정으로 바랐던 건 뭐지? 과연 뭘까?”
--- p.162

스무 개 정도의 방이 트랙을 중심으로 양쪽에 완성되자 난쟁이는 그곳에 살 사람들을 한 명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뉴욕을 배회하는 수많은 홈리스 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사람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한 명씩 데려와 방으로 인도했다. 언더그라운드에 도착한 사람들은 한 명씩 한 명씩 늘어났지만 결코 스무 명을 넘는 일은 없었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고 어느 날 아침 비어 있는 방에 새로 온 사람도 있었다.
--- pp.193~194

당신이 하는 일은 당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다. 당신이 아는 것이란 고작 거대한 톱니바퀴의 찌든 때에 불과하다. 당신은 찌든 때에 관해선 도사다. 언제 어떤 식으로 닦아야 하는지, 잘 먹는 세제가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당신이 지킬 수 있는 모든 것은 찌든 때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맑고 화창한 어느 날, 당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회사에서 잘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의 상사도 그랬고, 당신의 친구도 그랬고, 당신의 부하도 그럴 것이다.
--- pp.217~218

당신은 중독자다. 하루에 자판기 커피 다섯 잔.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마셔댄다. 장에 싸구려 지방이 쌓이고 위는 헐기 시작한다. 궁금하지 않은 인터넷 뉴스를 짬이 날 때마다 클릭한다. 댓글을 읽는 것도 잊지 않는다. 누가 썼는지 궁금한 치사한 댓글일수록 당신은 열광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당신은 중독자다. 당신이 그것들에 의지하는 동안 당신의 인생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인정하지 못한다.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 pp.2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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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기억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조감하고 있다. 상실된 기억의 공간에 들어차는 것은 선조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무정형의 편린들뿐이다. 되감기와 빨리감기를 통해 추적하는 과거의 원형들은 우리가 사실이라고 호명하는 것들의 불완전함을 보여주기 충분하다. 서진은 과감한 스타일리스트이자 근본적 회의주의자이다.
- 강유정 (문학평론가)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의 미덕은 작가가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목소리가 도발적이고 발칙한 점이 더욱 매혹적이다. 그런 목소리로 가장 원초적인 인간애를 이야기하다니, 그 불협화음적인 충돌에서 기이한 감동이 증폭된다.
- 김형경 (소설가)
합리성의 명분에 따른 정교하고 잔인한 세계 구조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세대의 글쓰기 방식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인 뉴욕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기계론적 현대 문명의 게임판과 같다. 그래서 ‘언더그라운드’는 공소하고 쓸쓸한 현대인의 이면이며 동시에 잃어버린 꿈의 무덤이라 할 수 있다. 언뜻 보면 낯설지만 지상의 세계보다 오히려 인간적이다.
- 박범신 (소설가)
언젠가 ‘구락부의 문학사’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멀게는 최인훈의 ‘그레이 구락부’가 있었고, 가깝게는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 있었으며, 더 가깝게는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있었다. 서진은 다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총체적 불확실성의 시대에 절묘하게 조응하는 다인종 구락부 ‘언더그라운드’를 문학사에 새로이 등재한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이 소설은 파퓰러하다. 앞의 것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하기 어렵고 뒤의 것은 아주 적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야심만만한 이야기꾼의 출사표가 얼얼하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
이 소설에서 우리는 위험사회로부터 배제되는 동시에 도주하는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세계에서 작가는 희망도 없고 절망도 없는, 연옥 같은 삶의 생존 방식을 제시한다. 끝없는 이동과 전진만이 가능한 세계. 그것이 언더그라운드다. 빠른 속도로 기억과 사건들을 배치하는 작가의 기교가 능란하다.
- 이명원 (문학평론가)
한국 소설의 무대가 확장되어 뉴욕에 이르렀다. 뉴욕은 발견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상징과 해석의 공간이다. 작가는 이 시대를 재구성하고 우리의 존재 조건을 탐색하기 위해 일극체제 자본주의의 ‘메카’ 뉴욕을 세트장으로 삼고, 그 무대에 ‘글로벌 시대의 난민들’을 불러 세웠다. 근래에 우리 시대의 비극을 이렇듯 통 크게 보여준 소설도 드물 것이다.
- 전성태 (소설가)
때론 삶이 악몽보다 잔인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우는 작품.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구성, 탄탄하고 날렵한 문장을 가진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당신은 슬프고 낯선 환상의 늪에 서서히 빠져들 것이다. 자, 서진식으로 카운트다운해보자. 하나, 둘, 호흡을 가다듬고, 셋!
- 정이현 (소설가)
아마 이 작가는 지하철 차창 너머의 음산한 어둠을 유심히 바라보았던 것 같다. 악몽과 생시를 간결하게 넘나드는 이 지하 세계 이야기에는 덜컹거리는 객차 같은 속도감과 리듬이 있다.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가는 힘이 느껴진다.
- 한강 (소설가)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박진감 있는 서사의 전개와 정교한 구성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지상의 빛 밝은 세계와 대비되는 지하의 어두운 세계는 다양하고 중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끌어안고 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범속한 삶에서 낙오한 사람들의 세계이지만, 어떻게 살아도 희망 없는 이 삶의 비밀을 일찌감치 알아버린 사람들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깊은 심연의 허방다리 위에서 영위되는 모든 삶의 뛰어난 알레고리가 된다.
- 황현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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