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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켜서 피는 꽃

누가 시켜서 피는 꽃

파란시선-0149이동
이서화 | 파란 | 2024년 10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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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37쪽 | 128*208*20mm
ISBN13 9791191897883
ISBN10 1191897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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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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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우주 공간에
몸을 매어 두고 있다

너무 멀어서 어쩔 수 없는 그쯤
현재라는 시간으로 버려져 있다
멀리 빛나는 두 개의 별 사이에
내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별이 늘 한자리에 머무는 것은
줄다리기할 때처럼
어쩔 수 없는 두 개의 힘

저 별빛은
아득한 먼 곳에서 온다
먼 곳의 빛 그 끝이나 처음쯤에서
가깝게 혹은 또 멀게 서 있다
멀리멀리 가면서 사라지는
별의 일생
도착도 돌아갈 곳도 없는 빛의 일생이라면
그런 별빛의 종착을
자처하고 싶지만
내가 서 있는 이곳에 내려서지 않는
빛은 내가 살아서는 닿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두 개의 별 사이
그곳은 가만히
서 있기 딱 좋은 곳이다
---「두 개의 별 사이」중에서

중간은 쉽게 도출된다
쉽게 뭉쳐지고 흩어진다
각자 끌고 온 거리를 버리는 일은
늘 중간에서 일어난다

다 같이 달려온 곳이
중간이라면
그보다 더 긍정적일 수 없다

우리는 모여서
앞과 뒤를 이야기했다
소리에도 중간이 있다면 고요가 앞일 것이다
누구는 옆으로 끼어들었지만
금방 앞이나 뒤가 되었다
누구는 앞을 목전에 두고
또 누구는 뒤에 퇴로를 두고 있지만
뒤쪽에 중간을 숨겨 놓고 있다

우리는 모여서 중간을 나누었지만
깜빡하고 중간을 두고 간 사람과
제 것인 양 들고 간 사람을 흉보기에 바빴다

앞으로 달려온 중간에서 각자 뒤돌아갔다
그곳 또한 각자에겐 앞이었다
앞은 어디를 향해도 앞이었고
또 어디에도 있다
---「중간이라는 말」중에서

여름 속은 대부분
신맛이 난다
그곳엔 신맛을 견디는 씨앗이 있다

씨앗에선 풍덩, 물이 놀라 튀는
소리가 날 때가 있지만
빗방울은 알아채지 못한다
비는 대부분 여름의 껍질에서 밍밍해진다
언니 배 속에선 이제 막
신맛을 벗어나는 발이 생기고 있었다
태어나는 아이 중엔
여름을 흉내 내는 울음소리
바람이 묻은 어리둥절한 울음도 있지만
자두가 여름에게 바람을 물으면
꼭지라고 대답한다

자두나 살구는 씨앗이 독자들이다
수박에 씨앗을 물으면
풋풋 소리를 내뱉는다
언니는 오므린 입술로 여름을 뱉는다
으앙으앙 동그란 울음소리가
조금씩 묻어났다
---「여름 속에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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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화 시인의 시를 읽으면 우리의 생이 아주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안도와 위안을 새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든 자신만의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일상적이고 가깝지만 가려지고 소외되어 쓸쓸한 곳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자연과 사물, 그리고 우리 삶의 모습들은 때로는 견딤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제 몫의 생을 묵묵하게 감당하고 있다. 시인은 그것을 정직하게 바라본다. 작고 아픈 것들에게 스스로 맨살이 되어 고스란히 그 말을 듣고 닿으려 한다. 그런 시인의 시선은 섬세하고 무심한 듯 따뜻하다. 그리하여 시인이 말하는 “서로 같은 처지를 곁에 두고/희끗희끗 위로하고/위로받”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 준다(「세상의 군락지」). 또한 중간은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아니라 “그곳 또한 각자에겐 앞”이라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 주고 있으며(「중간이라는 말」), “맑고 흐린 날/그 속의 바탕은 다르지 않다”는 발견에 이르기까지(「별일」) 시인은 선하고 따뜻한 마음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떤 끝이든 그것은 “다시 시작되는 날들이란/어느 날짜의 끝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무심하게 보여 준다(「곰팡이의 날」). 사람마다 시의 본령을 다르게 말하지만 이서화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것이 진심 가득한 이해와 ‘위로’에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 이승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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